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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42: 사피엔스, 형태적 현대화(뇌는 왜 커졌는가?)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9-03-17


얼굴에는 시각, 후각, 미각 기관이 몰려 있습니다. 이 감각 기관들은 동물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먹거리 정보를 수신하여 뇌로 보냅니다. 뇌는 정보를 평가한 후에 먹이를 쫓아가고 먹는 행위가 이루어지도록 근육 움직임을 조절합니다. 대부분의 동물은 주둥이 하나로 먹이를 처리하다가 영장류로 진화하면서 손이 주둥이 움직임을 돕습니다. 호미닌으로 진화하면서 손의 사용이 더욱 빈번해지면서 손 움직임과 주둥이 움직임이 하모니를 이룹니다. 이어서 음식을 불로 익혀 먹게 되면서 주둥이에 가해지는 기계적 스트레스가 줄어들었고 영양 흡수율이 높아져 저작 의존도가 줄어듭니다. 이빨과 턱의 축소로 주둥이 부분은 줄어드는 대신에 뇌용량 증가로 머리가 커집니다. 사피엔스에 이르면 뇌의 크기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대비 3배나 늘어납니다. 이마가 돌출되고 넓어져 얼굴이 작아집니다. 여느 동물에 비해 둥글고 높게 솟은 머리와 주둥이없이 입술만 도드라진 사람의 얼굴은 정말 기이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먹는 것에 관한 한 역시 이상합니다. 대체로 대형 동물은 초식인데 사람만이 잡식입니다. 사람은 먹는데 시간을 별로 쓰지 않지만, 침팬지는 깨어있는 시간 중 반은 음식을 씹으면서 보내고 발굽동물은 하루종일 먹으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우리는 먹는 시간 보다는 먹은 음식이나 먹은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뇌는 보고, 듣고, 맛보고, 씹고, 삼키고, 숨쉬고, 냄새맡고, 균형을 유지하고, 체온을 조절합니다. 생각도 말도 하게 합니다. 기계적인 견지에서 생존에 필수적인 이러한 기능들이 뇌 한 곳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진화적인 견지에서 자연선택은 뇌의 다양한 기능 중 무엇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큰 뇌를 가진 사피엔스가 진화할 수 있었는가? 한가지 기능에 초점을 맞추면 다른 기능은 어떻게 될 것인가? 뇌의 기능 중 하나라도 망가지면 그 동물은 죽기 때문에 각 기능들은 부분이지만 동시에 함께 진화해야 합니다. 뇌의 진화는 지적설계론자의 '나누어질 수 없는 복잡성(irreducible complexcity)’의 예로 제시되지만, 복잡난해한(complicated) 기능을 하는 뇌가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각 기능 단위가 모듈화되어 있고 구조적으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누어질 수 없는 복잡성’은 각 모듈이 만들어지고 나중에 조립되는 것을 가정합니다. 그러나 배아 발달과정에서 타이밍에 따라 뇌의 모듈 하나가 조금 변했다 하더라도 상호작용하는 모듈이 유연하게 대처합니다. 설계도에 따라 조립되는 과정이 아닌, 상호작용 표면의 물리화학적 특성과 물리적 제약에 따른 가소성이 개체 발달과정을 뻣뻣하지 않게 하기에 기능의 손상없이 전체적인 크기와 모양이 바뀔 수 있습니다.


뇌의 발달과정을 살펴보면 얼굴도 뇌와 함께 진화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배아를 앞뒤, 등배가 구분되는 원통으로 보면, 등쪽에서 함입이 일어나 원통 안에 가늘고 긴 원통이 생깁니다. 이를 신경관(neural tube)이라 하며, 앞쪽이 방울 방울 부풀어 오르면서 뇌가 만들어집니다. 제일 앞 불룩이 전뇌(prosencephalon), 중간 불룩이 중뇌(mesencephalon), 세번째 불룩이 능뇌(rhombencephalon)가 되고, 이후 긴 튜브는 척추가 됩니다. 전뇌는 계속 부풀면서 앞벽에 부딪치고, 그 맞닿는 면이 머리뼈가 됩니다. 이후 두부 신경관 양옆에서 측면을 타고 이동하는 신경능선세포(neural crest cell)들이 얼굴뼈를 만듭니다. 뇌가 만들어져야 얼굴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뇌 발달의 실패는 얼굴 발달의 실패를 가져옵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뇌가 기준보다 커지면 이마가 불룩해지고 눌리기에 얼굴이 줄어듭니다. 머리뼈를 둥글게, 이마를 나오게, 얼굴을 작게 만든 요인은 뇌용량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요인도 작용합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사피엔스보다 좀 더 큰 뇌를 가졌지만 머리는 길쭉한 타원형이고 이마는 뒤로 밀려있습니다.


사피엔스의 크고 불룩해진 이마는 대뇌피질, 그중 전두엽 확장에 따른 결과이며, 척추를 통해 몸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받아 온 몸근육으로 명령을 내보내는 뉴런이 몰려있습니다. 거기에는 얼굴로 향하는 뉴런이 높은 비율을 차지합니다. 기본적으로 얼굴에는 두개골에 붙어 있는 근육이 있어 눈코입을 벌리고 닫을 수 있습니다. 이 심층근육은 모든 척추동물 공통입니다. 한편 포유류는 표면에 더 가깝게 위치한 또 다른 근육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안면근육입니다. 이들은 눈과 입술, 눈썹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하여 표정을 만듭니다. 특히 포유류만이 가진 입술근육은 젖을 빨고 음식물을 처리하는 기능을 하다가, 영장류에서는 감정표현 기능을 가지게 됩니다. 사람의 얼굴에는 21개의 근육이 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쌍을 이루고, 두 개만 빼고 나머지는 피부의 진피에 붙어있습니다. 하나 더, 이마는 나오고 입은 들어가면서 얼굴은 수직으로 놓이고, 후두가 목구멍 깊이 자리 잡습니다. 후두 위에는 인두가 있고 거기서 구강이 직각으로 꺾여 공간이 만들어집니다. 그 공간이 있어 성대에서 나오는 소리의 공명이 좋아지고 다양한 소리를 입을 통해 내보낼 수 있게 됩니다. 전두엽은 단어를 조합하여 말이 만들어지도록 발성기관 근육과 입 근육을 조절합니다. 사람은 다양한 표정을 지으면서 의사소통을 하고, 동시에 자유자재로 단어를 구성하여 자신의 의미를 말로 전달합니다. 뇌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몸 크기에 비해 너무 큰 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체 혈류량 15%를, 전체 에너지 20%-25%를 뇌로 공급합니다. 사람이 쉴 때에는 근육에 에너지 공급을 차단하면서 절약하지만 뇌에는 여전히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뇌는 비용이 많이 드는 기관으로, 사람이 여느 동물에 비해 성장이 느린 이유는 어릴 적 뇌의 성장과 발달에 비용을 많이 치르기 때문입니다. 뇌 발달을 위해 번식을 늦추는 것입니다. 사실 큰 뇌를 유지한다는 것은 일종의 맞교환입니다. 만약 번식이나 큰 몸집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큰 뇌를 가질 수 없습니다. 진화는 에너지를 잡아먹는 뇌를 선호했습니다. 도대체 왜?


큰 뇌의 진화를 이해하려면 설계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설계도를 읽어보는 것입니다. 즉, 자연선택이 무엇을 대상으로 작동했는가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세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첫째, 에너지 획득에 중점을 둔 환경극복 가설로, 먹거리 찾거나 사냥, 식용 및 조리 정보를 위해 큰 뇌가 필요했다. 둘째, 협력이냐 경쟁이냐의 기로에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 큰 뇌가 필요했다는 사회적 필요성. 셋째, 문화적인 것으로 지식 축적과 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큰뇌가 필요했다.』 과학자들은 이들 셋 모두 자연선택의 대상이지만 ‘무엇이 먼저냐? 혹은 무엇이 더 중요하냐?’를 알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각 요인들이 혼합되어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자연선택이 협동에 치중한다면 큰 뇌를 가질 필요가 없어집니다. 다른 사람의 뇌를 이용한다면 굳이 내가 부담스런 뇌를 키울 필요가 없습니다. 사회적 곤충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협동의 모범이고 이상이지만 그들은 큰 뇌를 진화시키지 않았습니다. 또한, 선택압력이 조금 다르게 작동해도 다른 경로를 따를 것입니다. 에너지 할당을 몸집 키우는데 치중했다면 뇌는 지금 정도로 커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요인이 보다 중요했을까? 지금까지는 여러 다른 종의 뇌크기를 비교하고 거기에서 나타나는 행동의 차이를 분석하고, 큰 뇌와의 연계성으로 추론하였지만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검증 가능한 실험이 불가능할 때 인과관계는 상관성(correlation)으로 귀납추리를 하지만, 언제나 ‘지금 상태로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 더 연구를 해야 한다’로 말을 맺습니다. 이를 대치하는 방법이 수학적 모델링으로, 영국 세인트 앤드류 대학 곤잘레스 포레로(González-Forero)와 가드너(Gardner)는 어떤 선택압력이 호미닌의 뇌를 키우는데 작용했는가에 답을 구해 2018년 네이처에 발표합니다(1). 모델을 설정할 때 조건이 중요한데, 자연선택 압력이 에너지 취득에 있다는 가정과 다른 하나는 사회적 소통에 있다는 가정, 양 극단을 설정하고, 큰 뇌를 가지는 것과 큰 몸집을 가지는 것에 대해 대사적 비용과 이득을 분석했습니다. 또 둘 사이를 일정 비율로 혼합하여 비교하였습니다. 결론은 에너지 획득을 위한 환경에 대한 도전이 큰 뇌를 가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사바나의 급변하는 환경압력이 사회적 스트레스보다 더 크게 작동했다고 주장합니다. 사바나가 아닌 다른 어려운 환경에 있었던 동물은 왜 큰 뇌를 가지지 못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생기지만 연구자들은 문화가 작동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소통에 대한 압력 역시 부인하지 않습니다. 모델링은 실체를 단순화시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의미는 가지고 있지만 확실히 결론 내리는 것은 금물이며 실체는 한참 복잡하고 여러 요인들은 되먹임 조절을 받기 때문에 풀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최근 진화 관련 난제에 이만큼 명료하게 결론이 도출된 모델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먹는 문제가 사회적 소통이나 문화보다 우선한다는 우리의 본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 봅니다. 우리 조상은 먹거리 부족을 가져다주는 환경압력을 도구로 극복합니다. 도구는 초식위주의 삶에서 육식을 가능하게 했고 보다 큰 뇌를 허용했습니다. 소통의 장이 열리고 뇌발달을 촉진해 지능이 높아집니다. 높아진 지능은 도구의 혁신을 가져옵니다. 이는 다시 음식의 다변화와 함께 협동 사냥을 가능하게 합니다. 뇌의 용량은 더욱 커지고 사회적 지능이 높아집니다. 여러 복잡난해한 요인들이 얽혀있기에 우리의 지능도 복잡하게 얻어진 것입니다.


왜 뇌가 커졌는가? 실체는 여전히 모르지만 모델링이 말한 대로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임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동물과 특별히 다르다고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뇌를 커지게 했던 유전자를 찾고 그 유전자가 어떻게 유래되었으며 왜 선택되었는지를 알게 되면, 우리가 왜 지금 여기에 와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풀릴 것입니다. 2000년 우리의 유전체를 파악하고 난 후에 많은 과학자들은 침팬지의 유전체를 알고 싶어 했고 즉시 읽었습니다. 이유는 침팬지 유전체와 비교함으로써 사람을 사람답게 한 유전적 차이 혹은 변이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대만큼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뇌를 커지게 했던 유전자를 찾고자하는 과학자의 노력과 그 성과는 형태적 현대화를 이룬 사피엔스가 언제 사람다운 행동적 현대화를 갖추었는가를 알아본 후에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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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auricio González-Forero & Andy Gardner. Inference of ecological and social drivers of human brain-size evolution. Nature 557, 554–557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