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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43: 사피엔스, 행동적 현대화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9-03-19


침팬지에게 물감을 주면 형형색깔을 사용하여 무엇인가를 그립니다. 그리고 이내 자기가 그린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동료에게 자랑하기는커녕 내버려 두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냥 장난친 것입니다. 사람은 보이는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간직하고 그려내어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아름다움을 말하고, 묘사하고, 또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했을까요?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고 만들고 의미를 부여했을까요?


1980년대 인류학자들은 두뇌의 ‘형태적 현대화’를 이룬 AMH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비약적인 ‘행동적 현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당시까지의 화석 증거를 보면, 아프리카 동부와 남부에서 발견된 20만년 전 및 16만년 전 사피엔스 유골은 우리와 비슷한 골상을 가지고 있지만, 유골터에서 함께 나타나는 도구를 보면 이렉투스가 쓰던 아슐리안 도구를 개량한 정도였습니다. 이후 별다른 화석이 발견되지 않다가 5만년 전 이후 들어서면서 도구의 모양, 재질, 용도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장신구를 포함 상징물과 예술품도 나타납니다. 4만년 전 이후에는 피카소 저리가라 할 벽화도 나타납니다. '총균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Diamond)는 5만-4만년 전 사이에 사피엔스에게 인지혁명이 일어났고, 이 시기를 소위 ‘위대한 도약(a great leap forward)’의 시기라고 말합니다. 역사학자들은 인간혁명(human revolution)의 시기라고도 말합니다.


1990년대 발견되는 새로운 증거들을 보면, 사피엔스의 행동적 현대화는 5만년 전보다 한참 전에 있었습니다. 2007년 남아프리카 해변 산기슭 피너클 포인트((Pinnacle point)에 16만년 전에서 4만년 전까지 사피엔스가 살았던 동굴이 있습니다. 사피엔스가 16만년 전에 사바나를 벗어나 해변가로 진출하여 생활터전을 마련한 것이죠. 바닷가에서 먹거리를 얻기 위한 새로운 도구들이 나타납니다. 그중에는 불로 담금질한 석기도 보입니다. 특히 블롬보스 동굴(Blombos cave)에서 기하학적 줄무늬가 새겨진 작은 황토색 오커(ocher) 돌조각이 나옵니다. 7만7천년 전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인류 최초의 예술품으로 봅니다. 그전10만년 전의 동굴터에서도 붉은 오커 조각이 무더기로 발견됩니다. 아마도 동굴 거주자는 이 오커를 분필로 사용해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은 기술혁신과 상징표현의 증거들은 16만-8만년 전 사이 간헐적으로 나타납니다. 많은 학자들은 본격적인 증거가 나타나는 5만년 전까지 상당한 시간적 간격, 그 사이에 사피엔스 뇌의 형태와 구성이 달라졌을 것으로 봅니다.


막스플랑크 연구소 뉴바우어(Neubauer) 박사팀은 31만년 전의 ‘초기’ 사피엔스로 시작하여 현생 인류에 이르기까지 두개골 형태가 변화한 과정을 정밀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실히 합니다(1). 『30만년 전에 사피엔스의 뇌용량은 이미 커져 있었지만 뇌의 형태는 아니었다. 뇌의 형태는 럭비공 모양에서 축구공 모양으로 서서히 변해갔는데, 이 과정에서 서서히 행동적 현대화도 진행되어 5만-4만년 전에 완성되었다.소위 인간혁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직접적인 화석 증거는 현생인류의 전두엽, 두정엽, 특히 소뇌가 초기 사피엔스 비해 확장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소뇌는 운동을 1차적으로 산출하기 보다는 2차적으로 조율하고 균형을 맞추는 기관입니다. 또 운동을 계획하고 기억하고, 더 나아가 사회적 인지, 집중, 작업기억, 언어를 관장하는 기관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사피엔스는 왜 뇌의 형태를 바꾸어야 했을까요? 당시의 환경은 사피엔스에게 무척 혹독했습니다. 지구의 공전 궤도는 10만년 주기로 원형에서 타원으로 바뀌며, 지구의 자전축 자체가 요동을 치며 도는데(세차운동) 그 주기가 2.3만년 정도입니다. 또 자전축의 기울기가 공전면 수직 기준 최소 21.5도에서 최대 24.5도 사이를 4.1만년 주기로 왔다 갔다 합니다. 이러한 요인들이 지구 태양열 흡수에 주기적인 변화를 주어, 지구에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됩니다. 사피엔스의 행동적 현대화에 중요한 시기인 20만-10만년 전 사이에는 적어도 2번의 아주 심한 빙하기가 있었습니다. 13만년 전에는 말라위 호수물이 말라 1/20 정도만 남았다고 하니까요. 이러한 심한 환경 시련으로 인하여 10만년 전 즈음 사피엔스는 2만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욱 이들은 소수의 집단으로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제 짝을 찾아 후손을 남길 수 있는 유효 인구수는 더 적었습니다. 집단의 구성원이 적을 때 유전적 부동을 겪어 집단에서 발생한 돌연변이가 빠르게 고정될 수 있습니다. 그 변이가 사피엔스 뇌신경망 구성에 조그마한 차이를 주어,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기술을 터득하게 하는 유익한 돌연변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빙하기가 끝나고 8-7만년 전 살기 좋은 시절로 되돌아갑니다. 환경의 시련을 극복한 기술장인들은 수를 불리고 높은 생존력을 발휘합니다. 급격히 늘어나는 인구는 수렵채취인에게 먹거리를 찾아 계속 이동하게 하였고, 결국은 아프리카 이외의 장소를 모색합니다. 지구 곳곳에 퍼지는 과정에서 그들은 점점 똑똑해져 '생존 괴물'이 되어 버립니다. 이후 지금까지 사피엔스는 그들의 의도대로 지구를 마구 바꿉니다. 비단 물리적 환경만이 아닙니다. 생물환경에도 사피엔스의 의도가 적극 반영되어, 현재 육지 척추동물의 생물량(biomass)을 따져보면 사람은 32% 가축이 65%를 차지합니다. 야생동물은 겨우 3% 정도입니다.


그러면 어떤 유전자가 고정되어 두뇌혁명을 이끌었을까? 21세기 인류 유전학자의 최대 관심사로 많은 후보가 등장하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한동안 인간화 혁명의 주인공이라고 여겼던 FOXP2 유전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FOXP2는 말하기 장애를 가진 집안의 유전자를 분석하면서 발견된 유전자로, 소위 '언어 유전자'로 일반 대중에게 소개되었습니다. FOXP2는 전사조절인자로 근육 움직임 특히 혀와 입 근육 움직임을 조절하는 신경망 조성에 관계합니다. 태아의 뇌조직에서 많이 발현되며, 폐와 장에서도 꽤 발현되는 것으로 보아 FOXP2가 말하기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장류는 물론 소리를 내는 모든 동물은 FOXP2를 가지고 있는데, 사람만이 특별한 돌연변이형 FOXP2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르게 복잡하고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고, 이러한 능력이 결국은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했다고 여깁니다. 그 돌연변이는 사피엔스가 형태적 현대화 시점인 20만년 전에 발생했고, 행동적 현대화 과정에서 아주 강하게 양성선택되어, 오늘날 모든 사람이 바로 그 돌연변이형 FOXP2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한층 더 나아가 인간화 혁명은 FOXP2 단일 유전자에 전적으로 의존했다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그러나 이같이 과장된 주장은 터무니 없다는 연구결과가 2018년 셀에 발표됩니다(2). 내용인즉, 『사피엔스의 FOXP2는 20만년 전보다 한참 이전, 즉 인간화 과정 이전에 존재했다. 기존 연구에서 20만년 전 이후 강한 양성선택을 받았다는 결론은, 비아프리카계 사람 위주의 유전체 분석결과의 오류였다. 아프리카 원주민 유전체가 다수 포함된 대규모 유전체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FOXP2가 특별히 양성선택된 증거를 찾을 수 없다.』 FOXP2 유전자 변이는 20만년 전이 아니라 50만년 전 이전에 일어난 것으로, FOXP2가 언어에 관여한다는 증거는 풍부하지만, 인간화 혁명과는 관계없습니다. 그리고 인간화 혁명은 단일 유전자변이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수의 유전자 변이와, 그리고 후성유전이 더 영향을 준다고 봅니다.


초기 사피엔스는 어느 시점에 스스로 ‘자기 길들이기’ 과정에 들어갔기 때문에 형태적 현대화와 함께 행동적 현대화를 이루었다는 가설이 있습니다(self-domestication). 야생동물은 가축화될 때 행동변화와 함께 신체변화가 나타납니다. 가축화 과정에서 동물은 사람으로부터 먹이를 얻기 위해 친밀하게 굴고 기다리며 참습니다. 두려움이 줄어들기에 공격성이 감소됩니다. 이때 신체변화도 같이 일어납니다. 이마가 튀어나오며 얼굴이 작아지고, 이빨도 작아집니다. 외모가 어려지고 암컷화됩니다. 듀크 대학의 헤어(Hare) 박사는 사피엔스 화석을 살펴보면 이러한 변화가 보인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운 가설입니다(3). 헤어 박사는 사피엔스의 경우 친사회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는데 그 과정에서 자기 길들이기 현상이 일어났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이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우호적이지만 자기와 다른 사람에게는 배타적인 습성이 있습니다(in-group out-group bias). 집단과 집단 사이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집단 내부 결속력을 높여야 했고, 구성원들에게 친절해야 했고, 참을성을 키워야 했고, 공격성향을 줄여야 했습니다. 이러한 행동변화가 심리적, 신경학적 변화를, 더 나아가 뇌의 신경망과 구성을 바꾸는 등 형태적 현대화를 유도한다는 주장입니다. 자기 길들이기 가설은 행동이 신체의 변화를 이끈다는 행동가소성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생명의 역사 시리즈에서 여러 번 소개했습니다.


형태가 기능(행동)을 좌우하고, 기능(행동)이 형태를 결정합니다(structure-function relationship). 이 자연과학의 명제에 따르면, 뇌가 형태적 현대화를 이루면 행동적 현대화는 자연히 따라옵니다. 형태는 화석 증거로 남지만 소소한 행동은 증거를 남기지 않습니다. 도구나 예술품같은 대리 증거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인구가 늘어나야 지속적으로 발견됩니다. 사피엔스는 큰 뇌를 가지고 등장했습니다. 뇌의 형태는 30만년을 걸쳐 둥근 형태로 바뀌어 5만-4만년 즈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사피엔스는 스스로 길들여가는 과정에서 행동변화가 있었고, 행동의 변화가 형태변화를 가져왔다는 가설이 개인적으로 더 다가옵니다. 친사회성으로 훈련된 협력 행동은 같은 그룹에서만 유효하고, 개인의 이해에 따라 쉽게 깨지는 것이 문제지만, 사람에게 협력은 기본으로 깔려 있습니다(인간의 본성, human nature). 사실 따져보면, 협력의 동력은 그룹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데에 있으며, 그러한 사회적 스트레스가 우리를 더욱 양순하게 했으며 결국 어린이 모습을 가지게 했습니다. 우리 조상은 열악한 환경에서 먹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뇌를 키웠고, 일단 수가 늘어나 사회관계가 복잡해짐에 따라 자기 성질을 죽여야 했기에 뇌의 배치나 배선을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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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imon Neubauer, Jean-Jacques Hublin, Philipp Gunz. The evolution of modern human brain shape. Science Advances 24 Jan 2018: Vol. 4, no. 1, eaao5961 DOI: 10.1126/sciadv.aao5961

2. Elizabeth Grace Atkinson, et al. No Evidence for Recent Selection at FOXP2 among Diverse Human Populations. Cell. 2018 Sep 6;174(6):1424-1435.e15. doi: 10.1016/j.cell.2018.06.048

3. Robert L. Cieri, Steven E. Churchill, Robert G. Franciscus, Jingzhi Tan and Brian Hare. Craniofacial Feminization, Social Tolerance, and the Origins of Behavioral Modernity Current Anthropology Vol. 55, No. 4 (August 2014), pp. 419-443 DOI: 10.1086/677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