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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듣고 싶은 낮고 친근한 그 목소리 (77 윤민우) (2008.06.28)
작성일
2023.01.02
작성자
영어영문학과
게시글 내용


듣고 싶은 낮고 친근한 그 목소리


77 윤민우




이때쯤 되면 스승님들을 뇌리에 그려본다. 세상에 계시지 않은 분들에 대한 기억은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오늘은 유영 선생님의 기억이 새롭다. 이년 전쯤 타계하셨을 때, 빈소에 가 뵌 것이 마지막이다.


선생님은 조용하면서도 조금은 드라이한 유머를 가지신 분으로서, 학생들을 편안하게 대해 주셨다. 선생님은 요란하고 강렬하게 급변하는 도회지의 색감과는 거리가 있으시다. 친숙하고 한결같으시며, 약간은 짓궂은 유머를 정겹게 인사 대신 나누실 시골 고향집 이웃어른 같은 정서와 이미지를 갖고 계셨다.


입학식을 며칠 앞두고 시골에서 올라 온 필자는 영문과가 있는 학관(현재의 본관) 건물에 올라가 보았다. 연구실이 줄지어 있는 어두운 복도를 지나는데, 낯익은 성함이 눈에 띄었다. 유영 교수님의 명패였다. 나는 『세계명작전집』에서 존 밀튼의 『실락원』과 『타고르 전집』의 역자로 선생님의 함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 분에게 앞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몹시 흥분되었고 자랑스러웠다.


필자는 선생님의 낭만주의 영시와 세계문학 과목을 수강했었다. 꽤 두꺼운 영시선집에서 블레이크, 워즈워드, 키츠의 시를 읽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호머의 『일리어드』도 읽었다. 선생님은 등사 프린트한 시험지에 영시 세 구절을 인용하시고, 번역과 감상을 적도록 하셨다. 시험지 아래 부분에는 중요한 어구를 설명하는 문제가 있었다.


한번은 선생님께서 학기초에 필자를 불러, 장학금 증서를 주시면서 “시골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부모님의 노고를 잘 아는 덕에 열심히 공부한단 말이야.”라고 하셨다.


시인이기도 하셨던 선생님은 우리에게 한글사전을 들고 다니면서, 예쁘고 낮선 우리 낱말을 익혀, 시를 적어보라고 하시기도 했다. 또한, 윤동주 시인과 함께 연희문과를 다니셨던 선생님께서는 당시 학생 기숙사였던 핀슨홀에서의 윤동주의 추억을 말해주면서, “송몽규(윤동주의 고종사촌)는 동주에 가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간다.”며 안타까워 하셨다.


선생님은 소탈한 분이셨다. 소박하지만 단아한 복장이셨고, 머리카락은 짧고 단정하게 다듬으셨다. 목소리도 높지 않으셨으며, 흥분하시지 않는 성품이셨다. 그래서 선생님들을 무섭지 않고 친숙하게 느끼는 모양이다.


당시에는 학생 시위가 뜨거웠고 휴강이 장기간 계속되는 때가 잦았다. 선생님께 단테의 『신곡』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음은 유감이다. 지난 학기 필자가 『신곡』을 학생들과 함께 읽고 있었을 때, 선생님 생각이 더 간절했었다. 선생님은 장수하셨으나, 더 이상 뵈올 수 없다. 필자는 어둑어둑해지는 백양로를 걸어 나오며, 학관에서 퇴근하시어 연희동 자택을 향해 서문 쪽의 언덕을 넘으시던 스승의 모습을 기억한다. 할 수 있다면, 스승께서 가르치시던 학관의 그 방에 가서 앉아 있고 싶다. 땔감을 난로에 넣으며, 영시 번역을 해주시던 선생님의 나지막하면서도 친근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 이젠 필자도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뭔가 부족한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스승은 우리 곁에 늘 함께 계시지는 않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