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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졸업앨범을 보면서 (77 이은지) (2008.06.28)
작성일
2023.01.02
작성자
영어영문학과
게시글 내용


졸업앨범을 보면서


77 이은지




25년 전 대학 때의 추억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고 정말 오래간만에 졸업앨범을 펼쳐 보았다. 감회가 새롭다. 어느새 25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그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지 지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첫 장에 학교전경이 나와 있다. 본관까지 쭉 뻗은 백양로 길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정말 일품이다. 가을이면 지금도 노란 은행잎으로 장관을 이루겠지. 백양로에서 대한뉴우스 카메라에 찍힌 일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강의실에서는 바로 옆에서 클로즈업되어 찍혔다. 5·18데모로 한창 시끄럽고 강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연일 데모를 하는 대학 캠퍼스의 모습을 찍고 싶었나 보다.


그 다음 장에는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본관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있다. 원래 문과대학 학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거기서 강의 받던 때가 생각난다. 정말 오래되어 때로 얼룩진 마룻바닥에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키 낮은 다락방인 문과대 도서관에서 공부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거야 말로 정말 상아탑의 모습, 원천 문과대학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정말 낭만적인… 장을 넘기면서 자주 드나들던 학생회관, 중앙도서관과 독수리상, 주로 일학년 때 채플로 갔던 대강당, 종합관 등이 보이며 그때그때의 일이 스멀스멀 생각난다.


드디어 스승 분들의 모습이 보인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이 이봉국 선생님이시다. 영미 단편소설시간인가 싶다. 강의하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셨다. 그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어 선생님을 뚫어지게 응시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의 그 소녀 같은 감성에 놀라며. 나는 과연 저 나이가 되었을 때 그 같은 감성을 지닐 수 있을까 생각하고 선생님이 무척 부러웠었다. 이상섭 선생님의 셰익스피어 시간, 전형국 선생님의 가발, 옆집 할아버지 같으셨던 유영 선생님, 영문법시간에 “넥서스”란 말을 되풀이하시던 김태성 선생님 등이 생각난다. 그리고 다른 과에서도, 시인이신 박두진 선생님, 고등학교 때 전교 채플시간 때 오셔서 말씀 주셨던 김형석 선생님 등 유명하신 선생님들의 얼굴을 뵈니, 그때 그분들 옆에 같이 있게 된 것이 많이 뿌듯했었다. 대학 때, 시인 윤동주는 나에게 예수님 같은 존재가 되었고, 그의 시 「서시」는 바이블 같은 말씀이 되었다. 종합관 올라가는 길옆에 조그맣게 서있던 그의 시비를 보며, 내가 그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가슴 벅차 했었다.


그리고, 잊고 있던 우리 동기들의 얼굴이 보인다. 정말 반갑다. 다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간 몇 번 만나거나, 간간이 소식이 들리던 친구들도 있지만, 소식을 전혀 모르는 친구들이 꽤 있다. 몸이 허약하고, 내성적인 데다, 대학을 한 6년 늦게 들어갔기 때문에 동기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 친구들이 나한테 정답게 대해준 걸로 기억한다. 특히, 윤진일이는 정이 많은 친구 같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음담패설을 들려주던 정해원, 이름이 대도라 웃었던 강대도, 새침했던 김윤옥, 뭔가 의미 있는 것을 항상 말하고 싶어 했던 것 같은 김정숙, 여성스러웠던 고부응, 세련되게 보였던 노혜란, 좀 드센 것 같던 조혜자, 깍쟁이 같았던 이진아, 상냥했던 이혜경, 덜덜했던 임순희 등이 생각난다. 돌이켜 보면 다들 정겨운 친구들이다.


그밖에도 5월 축제, 연고전 등이 생각난다. 대학 축제 때 처음으로 나는 판소리, 창 등 우리 고유의 음악에 매료되었었다. 1학년 땐지 2학년 땐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연고전 농구시합을 보고 응원하려고 몇몇 동기들과 함께 이미 꽉 차버려 문이 닫힌 장충체육관의 그 높은 벽을 용감하게, 나이도 잊고 뛰어내렸던 일, 시합이 끝난 후 장충동에서 광화문 네거리까지 피곤한 줄도 모르고 거리행진하고, 네거리에서 ‘아카라카’ 외치고 헤어졌던 일 등이 엊그제 같다. 대학 들어가기 전 병으로 죽음 직전까지 간 적이 있던 나는 그때 헤어져 집으로 돌아갈 때, 지칠 줄 모르는 동기들과 함께 끝까지 어울려 놀았다는 데 대해 감사했었다.


대학 졸업 즈음인지 대학원 졸업 즈음인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한번은 꿈을 꾸었다. 커다란 구렁이가 큰 고목을 감고 움직이고 있었고, 그 옆에 동굴 같은 것이 있어 들어가 보니, 동굴 벽과 천장, 바닥이 온통 코발트색이었고, 공기는 마치 비온 뒤 갠 날 이른 아침같이 너무나 상쾌했고, 어느 한 곳에 이르니 천장에서 맑은 물이 똑똑 떨어지는 데 바닥에 그릇같이 생긴 것이 있어 그 물을 받아 넘치고 있었다. 그 동굴에서 나와 보니, 그 옆에 좀 낡은 아파트가 있는데, 그 앞면에는 크고 긴 연세대 마크가 있는 짙은 청색천이 드리워 내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아파트는 연세대 교수아파트고, 내가 거기에 산단다. 나는 원래 꿈을 잘 안 꾸는데, 그 꿈을 깨고 나서 크고 좋은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꿈 이후, 나는 공부를 계속하기로 결정했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하나님께서 박사까지 받는 은혜를 주셨다. 한국에 돌아와 모교에서 시간강사를 하는 동안에도 그때 그 꿈이 항상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연세대에 재직 중이시던 한 분 스승의 은근한 언질에 고무되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으로 갈수록 모교로 돌아올 때가 빨리 올 것 같아 지금의 대학에 재직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 꿈은 내 가슴에 있고, 나의 하나님이 그의 기쁘신 뜻이면 나의 그 소중한 꿈을 실현시켜 주시리라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