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뉴 닫기
 
Community

커뮤니티

"우리들의 60년"

제목
내 인생의 밑그림을 그려준 곳 (94 안정은) (2009.02.27)
작성일
2023.03.06
작성자
영문과수업관리조교
게시글 내용


내 인생의 밑그림을 그려준 곳


94 안정은




94년도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합격한 것을 확인한 후 부모님과 얼싸안으며 뛰면서 기뻐했던 기억이 아직 선명한 데 벌써 대학에 입학한 지 12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렸습니다. 우리가 대학을 다닐 당시만 해도 우리 세대는 세계적으로 “X-세대”라 하여 정말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겠지만 주로 ‘이기적’이니 ‘물질만능적’이니 ‘충동적’이란 수식어가 붙어서 조금은 철이 없는 세대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 철없던 세대들이 지금은 부모가 되어 있고 각자의 맡은 임무를 사회에서 잘 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돌이켜보면 4년의 대학 생활은 그 당시 화제가 되었던 만큼 내 인생에 있어서도 황금기였고 많은 것을 깨닫고 체험할 수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대학시절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이상 영문과 내에서의 추억을 빼고는 대학 생활을 이야기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보라색입니다. 한국에서는 보라색에 대한 인식이 참 부정적인 경우가 많은데 전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보라색이 너무 좋습니다. 보라색 빛에 대한 개념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각자 보라색을 그려라 하면 각기 다른 색이 나올 것입니다. 보라색은 파란색과 빨강색을 섞어야 만들 수 있고 그 비율에 따라서 좀 더 붉은 빛이 돌 수도 있고 더 파란 빛이 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의 영문과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인 보라색이 떠오릅니다. 나의 영문과에 대한 추억은 정열을 상징하는 빨강과 이성과 냉철함을 상징하는 파란색의 적절한 조화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학은 정말 정열이 없으면 공부할 수 없다고 봅니다. 시나 소설, 그리고 극에 푹 빠져서 주인공과 같이 호흡하는 그런 정열이 그 당시에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항상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정말 피땀 흘린 노력 없이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도 영문과에서 깨달은 것 중 하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절제와 이성, 냉철함도 요구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저는 신입생들에게 실용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런지 몰라도 연세대와 영어하면 누구에게나 떠오르는 문구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The Show Must Go On입니다. 연세대학교 신입생이라면 누구나 교양영어시간에 가장 먼저 배우는 Essay였습니다. 타 학교에서도 다 알 정도로 그 당시에는 상징적인 Essay였습니다. 사실 그 본문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저한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어느 코미디언이 부모가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어 남을 웃기는 본업에 충실해 공연을 무사히 마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직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이 내용이 제 가슴속에 남아서 감정적인 소용돌이가 있을 때마다 맡은 바 책임감을 다할 수 있는 저력을 저한테 심어 준 것 같습니다. 지금의 신입생들은 보다 실용적인 영어를 배우고 있고 반마다 각각 다른 교재로 배우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먼 훗날까지 대화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부분이 없다는 것이 가르치는 저로써도 조금은 아쉽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당시 학교에 다녔던 사람들을 만나면 The Show Must Go On을 가르치냐는 질문을 받곤 하니까요.


영문과 시절을 떠올리면 무엇보다도 생각나는 것은 벽돌책 두 권과 스가나렐 연극입니다. 노튼 책, 일명 벽돌책은 내용을 공부하는 것도 물론 힘들었었지만 들고 다니는 것도 만만치 않아 그것을 들고 다니면서 팔에 근육이 많이 생긴 것 같습니다. 지금 13kg의 남자 아이를 번쩍번쩍 잘 드는 것도 그때 단련된 근육 때문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 책들은 아직도 서재에 간직하고 있는데 비록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은 정말 힘든 과정이었지만 가슴 벅찬 감동일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시가 아름다운 단어들의 나열에 불구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상을 담고 개인과 민족, 또는 시대의 아픔을 표현하는 분출구가 된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고 얼마나 나 자신이 아는 것이 부족하며 배워야 할 것이 많은가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문과 동기들이 모이면 아직도 회자되는 추억은 스가나렐이라는 연극을 직접 연출하고 연기한 것입니다. 저는 그 당시 우리 조에 남자가 부족해 남자 역을 맡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무대에 서는 것도, 대사 외우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그때는 나름대로 참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우리 조는 조장이 잘 이끌어주어서 배역도 적절하게 배치되고 연습도 효율적으로 잘 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연극이 다 끝난 후에 교수님과 맥주 한 잔 같이 마시면서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교수님과 대화할 수 있었던 기회도 참 값진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각자 살아가기 바쁜 동기들이지만 그때 한 마음 한 뜻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땀 흘렸던 추억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물론 이런 소중한 추억의 한 켠에 있어서 영문과에서의 4년이 더욱 더 저한테 중요한 것은 제 인생계획의 밑그림을 그려준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부모님의 학업 때문에 정말 운 좋게 미국에서 4년간 살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중학교 1학년이었고 이 이후 중학교, 고등학교 영어수업을 직접 체험하면서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재수까지 한 끝에 우리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고 영문과 내에서 들은 어학수업들은 저한테는 너무나 흥미로웠고 또 그 방면으로 계속 공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오히려 지금 돌이켜봤을 때 후회스러운 것은 교직이수 때문에 졸업학점 채우는 데에만 급급해 좀더 깊이 있는 전공과목을 더 많이 듣지 못한 것입니다.


소위 “신세대” 또는 “X-세대”라 불리는 90년대 학번은 외부에서 평가하는 것처럼 이기적이고 충동적이고 물질만능적인 대학생활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십 수 년 후 지금의 동기들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면 자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동기가 없습니다. 각자 주어진 삶에 정말 최선을 다하고 어디에서든 두각을 나타내며 오히려 부정적일 수 있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독립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으로 승화된 것 같습니다.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동기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대하며 끝으로 Robert Frost의 시 The Road Not Taken에서처럼 대학시절에는 한 곳에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다양한 길을 선택해 무한질주하고 있는 동기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모두 후회 없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전글
돌아온 영문과 (92 이경랑) (2009.02.27)
다음글
다음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