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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2/12/28 [법률신문] [법신논단] 공익사건의 소송비용
작성일
2022.12.28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법신논단] 공익사건의 소송비용

어렴풋이 개념이 잡히면서도 명료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용어가 ‘공익’이다. 사전에서는 ‘사회 전체의 이익’이라고 풀이하지만, 생각과 가치가 제각각인 개인들이 모인 사회집단에서, 단일하고 통일된 이익을 상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다수를 우선시하는 공리주의적 이익이 공익이라고 평가할 수도 없다. 오히려 소수를 위한 이익이 대표적인 공익으로 꼽힌다. 2005년 사법개혁위원회는 공익소송에 관하여 ‘약자 및 소수자의 인권보호, 국가권력으로부터 침해된 시민의 권리구제 등을 통하여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개선하고, 권력의 남용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송’이라고 설명하였다. 실제 장애인, 이주민, 난민 등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하여 활동하는 변호사를 공익변호사라고 칭하고 있다.


공익소송을 제기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소송비용 패소자부담의 원칙이다. 소송에서 진 사람은 애당초 스스로 잘못된 소송을 제기했거나 상대방이 어쩔 수 없이 소송을 제기하도록 만들었기에, 소송비용을 전부 떠안아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원칙을 관철할 때 불필요한 소송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깔려있다.


그러나 구체적 사건을 들여다보면, 패소자에게 소송비용을 부담시키는 결과책임론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최근 버스 탑승을 거부하는 운수회사와 관할 지자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장애인이 운수회사에는 승소, 지자체에는 패소하여, 지자체에 소송비용을 물어줄 처지에 있다고 보도되었다. 지자체의 법적 관리책임 유무를 제대로 따져보지 못했다고 원고에게 소송비용을 부담시키며 탓할 일일까. 소송 결과 다른 장애인들의 버스 탑승도 편리해진 공익적 성과를 얻었음에도, 장애인 보호가 본래 국가와 지자체의 소임임에도 말이다.


공익사건에서 소송비용 패소자부담주의의 예외를 두자는 논의가 무성하지만, 가장 먼저 부딪히는 반론은 공익소송의 개념을 정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하지만 법률에서 얼마나 많은 추상적 개념과 불확정 개념을 두고 있는가. 규범적 지침을 제공하기 위하여, 최대한 구체적으로 유형화하고 예시를 제시하는 등의 입법기술을 활용하면 된다.


‘인권의 보호와 향상, 국민의 건강과 안전, 소비자보호 등을 예시하고, 소송당사자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 소송의 성격 및 경위 등을 고려하여 패소자의 소송비용을 감면한다’는 예외조항을 법률에서 규정한 다음, 구체적인 사항을 대법원규칙에 위임하면 충분하다. 이러한 취지의 여러 입법안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공익소송의 개념이 불명확하다든가 남소가 우려된다는 반론에, 혹은 입법형식이나 입법안의 미시적 차이 때문에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공익과 사익은 중첩되는 경우가 많아 구체적 사안에서 공익소송의 범주가 애매할 수 있지만, 그렇기에 재판과 판례의 축적이 해결책이다. 남소를 걱정한다지만, 남소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법관이 공익소송을 너무 넓게 인정하여 사법적 부담을 만들 리 없다. 오히려 입법이 되더라도 패소자부담주의의 예외를 너무 소극적으로 인정할까 걱정될 뿐이다.


다양한 반론의 배경에는 공익소송 자체를 마땅치 않아 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내심이 감춰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익을 내세우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고, 공익을 포장한 무리한 소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소수자, 약자가 사회적 공존이나 권익확보를 위하여 소송을 제기하는 행위는 가장 평화로운 수단이다. 소송에서는 졌지만, 그 소송이 사회발전의 계기가 되는 빛나는 패소 사례도 여럿 존재한다.


패소자부담주의가 아닌 각자부담주의를 취하는 미국과 같은 입법례도 있는 마당에, 극히 일부 사건에서 패소자부담주의의 예외를 두자는 외침에 유난히 까다롭게 구는 것은 아닐까. 사회의 주류와 다수가 지나치게 힘을 과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홍기태 원장 (사법정책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