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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2/12/01 [경향신문] “국가 인권침해, 소멸시효 적용 안 돼…‘유서대필 누명’ 강기훈에 배상해야”
작성일
2022.12.01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유서대필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강기훈씨가 국가와 검사, 필적 감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했다. 신빙성 없는 필적 감정에 대해서만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과 달리 수사 과정의 개별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가가 인권을 침해한 사건에선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30일 강씨와 가족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강씨는 ‘유서대필 조작사건’으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1991년 5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던 김기설씨(당시 25세)가 분신하자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강씨가 김씨의 자살을 방조했다며 강씨를 기소했다. 검찰은 강씨를 김씨 사망의 배후로 지목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도 김씨 유서와 강씨 진술서의 필적이 같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강씨는 징역 3년과 자격정지 1년6개월형을 확정받았다.


그러나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유서의 필체가 김씨의 것으로 보인다고 결정했다. 대법원도 사건 당시 국과수 감정인이 위증한 점 등을 근거로 재심을 개시해 강씨의 무죄를 확정했다. 그러자 강씨는 수사 검사와 국과수 감정인, 국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주된 쟁점은 인권침해 등을 이유로 한 국가 상대 손배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적용되는지 여부였다.


1심과 2심은 소멸시효를 적용할 수 있다고 봤다. 1심은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개별 불법행위에 대해선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수사 검사와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신빙성 없는 필적 감정’에 대해선 국가와 국과수 감정인 모두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2심은 ‘신빙성 없는 필적 감정’에 대한 국과수 감정인의 배상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신빙성 없는 필적 감정’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만 인정했다. 국과수 감정인에 대한 배상 청구권 소멸시효는 지났다고 봤다.


대법원은 ‘수사 과정의 개별 불법행위’에 대해 ‘소멸시효가 지나 국가의 배상책임이 없다’고 본 원심 판단은 잘못됐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수사 과정의 개별 불법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부분은 과거사정리법 위헌 결정에 따라 효력이 없게 된 ‘장기 소멸시효’ 규정을 적용한 잘못이 있으므로 파기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법원은 검사와 국과수 감정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했다. 전반적인 수사와 기소 자체가 위법이라는 강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2심 판단도 그대로 유지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유서대필 조작사건 손해배상 소송 대리인단’은 대법원 선고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대법원은 끝내 수사 전반과 기소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조작사건이라는 이 사건의 본질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