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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2/11/30 [법률신문] 사회적 약자들에겐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법’
작성일
2022.11.30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사회적 약자들에겐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법’

A는 예술계에 종사하는 20대 청년으로서 제작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상당한 기간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였으나 약속한 지급기일이 한참 지나도록 약정금을 받지 못하였다. A가 어렵사리 약정금 지급을 요청하였지만 제작사는 이런저런 핑계로 계속 미루고 있었다. A의 고민을 알게 된 친구(같은 업종의 예술인) B는 평소 알고 지내던 변호사에게 A의 사정을 상담하였다. 변호사는 ‘해당 건은 약정금을 받을 수 있는 경우인 만큼 무료 상담을 해줄 수 있고, 나아가 착수금 없이 소송대리도 해줄 수 있다’고 하였다. B는 A에게 변호사의 상담 내용을 전달하였으나, A는 ‘약정금지급소송을 하게 되면 제작사는 “A가 금전 문제로 물의를 일으켰다”고 하거나 “약정금 지급을 안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마치 불량회사로 이미지 훼손을 했다”는 이유로 A를 관련 업계에서 퇴출시킬 수 있다’고 하면서 절대 소송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변호사는 ‘약정금을 지급하지 않은 제작사가 나쁜 것인데 겁부터 먹을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소송이 부담스럽다면 변호사가 대리로 내용증명을 보내 약정금 지급을 독촉할 수 있다’고 하였으나, A는 내용증명도 같은 이유로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변호사는 안타까운 마음에 ‘본인 의사가 그렇다면 무리하게 법적 조치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당장 소송이나 내용증명 발송을 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유사 사례에서 어떠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알 필요가 있고, 같은 일을 반복하여 당하지 않도록 무료 법률상담을 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A는 그조차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제작사가 약정금을 알아서 줄 때까지 기다릴 것이고, 만약 안 주면 그 약정금을 포기하고 제작사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겠다’고 하였다(이러한 상담 과정도 B가 A를 위해 대신 문의한 것이다).


무료 법률상담이라도 받아 나중에 억울한 일을 똑같이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겠다고 하는데도, 당사자는 ‘당해 사안이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보복당하는 것이 두렵다’면서 법적 보호를 아예 포기하였다. 그냥 ‘법’ 자체가 무섭다고 하였다. 너무나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도와줄 변호사를 찾지 못하여 소송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변호사가 있어도 아예 스스로 법적 구제를 포기하는 것을 보고 아직도 어떤 이들에게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법’이라는 사실에 매우 슬프고 곤혹스러웠다.


‘최후의 보루는 사법제도’
확신할 수 있어야

위 사례는 많은 사회적 약자가 처한 ‘사법 진공상태’를 보여준다. 또 수년 전 미투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졌지만, 지금도 유사한 일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다른 예로, 갑질 피해 기업이 공정거래법위반 신고를 하여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조치를 받아 냈지만, 그 이후 손해배상을 받기는커녕 다른 방식으로 더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었고, 또다시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는 하소연을 듣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사회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사법적 해결이라는 말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며, 오히려 자신을 더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한다’고 답답한 심정과 좌절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형사고소나 민사소송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고 법률만능주의도 경계해야 할 일이긴 하나, 법률에 의한 보호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면 사법 제도는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법 제도가 확립되어 있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가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사법 제도”라는 점을 확신’하는 데에 있다. 사실적 실력행사보다 법률에 의한 보호가 우선하는 사회가 진정한 사법정의가 구현되는 법치국가라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