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뉴 닫기
 
 

아카이브

제목
2022/11/16 [매일경제] "국제형사정의 전제돼야 평화·인권 실현"
작성일
2022.11.16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국제형사정의 전제돼야 평화·인권 실현"

민병대에게 코가 잘린 콩고 소녀가 성형수술을 받고 새 얼굴을 얻었다. 성폭행으로 생긴 트라우마는 심리치료를 받고 일부 호전됐다. 팔다리를 잃은 소년들은 의수와 의족을 받았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운영하는 피해자신탁기금을 통해서다.

ICC의 신탁기금 사업은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80·사진)가 2009년 ICC의 수장인 소장에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송 전 소장이 회원국에서 기금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사업 규모와 영역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김용덕 전 대법관 등 송 전 소장의 서울대 법대 제자들은 최근 송상현국제정의평화인권재단을 설립했다. 한국인 최초로 국제사법기구의 수장을 맡으며 국제사회의 정의와 평화, 인권에 기여한 송 전 소장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다. ICC는 집단 살해, 전쟁 범죄,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는 기관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90년대까지 보스니아 인종청소 등 전쟁 범죄가 잇따르자 국제형사법 체계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모여 출범했다. 송 전 소장은 2003년 ICC 재판관이 된 뒤 2009년 소장으로 취임해 2015년 퇴임했다.


송 전 소장이 재판과 처벌 외에 신탁기금 사업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국제사회의 의지가 모여 어렵게 탄생한 ICC를 모범적 기구로 정착시키기 위해서였다. 중대 반인도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는 상설 국제재판소의 필요성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계속 제기됐으나 냉전 등 국제사회의 분열로 인해 실제로 ICC가 출범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렸다. 송 전 소장은 "전 세계 모든 법원이 범죄자를 처벌하는 '응보적 정의'에만 집중하지 범죄 피해자의 회복을 돕는 곳은 없다"며 "ICC를 희생자의 상처까지 치유하는 '회복적 정의'를 실현하는 기관으로 만들려 했다"고 말했다. ICC 신탁기금 사업은 범죄 피해 회복 외에도 자립 지원을 돕는 소액 대출, 분쟁 방지를 위한 평화 교육을 실시한다. 희생자를 돕기 위해 사전·사후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는 셈이다.

송 전 소장은 분쟁 지역인 아프리카에 3차례 방문하는 등 ICC의 성공을 위해 몸 바쳐 일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ICC 직원 4명이 리비아 정부에 구금됐을 때는 직접 방문해 구출했다. 비행기가 추락하고, 총격을 받아 경호원이 중상을 입은 적도 있다. 송 전 소장은 "총리·장관 제의를 수차례 거절하고 평생 교수로 일관했지만 ICC에서 일할 기회가 왔을 때는 일생의 마지막 봉사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며 "ICC가 실패하면 인류에게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명예회장인 송 전 소장은 자선 활동에도 힘을 기울였다.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을 세웠고, 베트남전쟁 파병 군인과 현지인 사이에서 태어난 청년(라이따이한)을 위한 직업 훈련소도 만들었다. 유니세프에서는 한국위원회 부회장과 회장을 맡으며 30여 년간 일했다. 소외계층의 인권 향상을 위해서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 셈이다. 송 전 소장은 "인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북돋는 것이고 평화는 인류가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가치"라며 "인권과 평화는 정의를 통해 이룩되고 ICC의 '국제형사정의' 확립은 인권과 평화를 위한 전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