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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2/11/9 [뉴스1] 난민·트랜스젠더·언어 '3중 소수자' 향해…정부 "왜 한국 왔나"
작성일
2022.11.09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난민·트랜스젠더·언어 '3중 소수자' 향해…정부 "왜 한국 왔나"



서울고법, 1심 뒤집고 트랜스젠더 '난민 인정'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상고…대법원 판단 남아



"난민뿐 아니라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왜 한국에 와 난민 신청을 하는 것인지…."

트랜스젠더 여성인 말레이시아인 A씨(48)는 한국에서 삼중(三重)의 소수자로 살고 있다. 지위(난민신청자), 성 정체성(트랜스젠더)에 잘 통하지 않는 언어까지 '소수자 중의 소수자'다. 난민 심사 업무를 담당하는 서울출입국·외국인청(서울청)의 법률 대리인이 "왜 한국에 왔냐"고 쏘아붙일 정도로 그를 향한 한국 사회의 시선은 곱지 못하다.


난민 신청자는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국내 취업이 허용된다. 출입당국 측이 A씨의 난민 신청 사유를 의심한 이유도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난민 신청 후 5년 동안 직장을 구하려는 A씨의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외국인 트랜스젠더 여성'임이 드러나는 외형 때문이었다. 

A씨는 현재 이태원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청소 일을 하며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한국에 온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한국어는 여전히 미숙하다. 법률대리인인 전수연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는 "사람 만날 일 없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청소만 하는 등 고립돼 있으니 한국어가 서툴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A씨가 한국에 온 이유는 분명했다. A씨는 1심 법정에서 "안전하게 살 곳을 찾아 왔다"고 강조했다. 40년 넘게 살아온 삶의 터전이자 고국인 말레이시아에서 그는 왜 안전하지 못했을까.

A씨는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열살 무렵 여성으로서의 성 정체성이 형성됐다. 이후 여성호르몬제를 투약하고 여성의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등 자신의 정체성을 좇아 살아왔다.

그러다 2014년 지인의 파티에서 '크로스드레싱(cross-dressing·생물학적 성과 다른 성별의 복장을 하는 행위)' 혐의로 체포돼 950링깃(약 29만원) 벌금형과 구금 7일형을 선고받았다. 이슬람교가 국교인 말레이시아는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형법과 무슬림에게만 적용되는 샤리아 형법이 있는데 샤리아 형법은 남성간 성관계와 크로스드레스 등에 징역과 태형(채찍질), 벌금형 등을 내린다. 


이 일로 말레이시아를 떠나기로 한 A씨는 호주행을 시도했으나 서류 미비 등으로 실패했고 결국 2016년 한국을 찾았다. 여행 삼아 찾은 한국에서 난민 제도에 대해 알게 된 그는 2017년 고국에서 성 정체성을 지키고 살면 박해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난민 신청을 했다. 하지만 2019년 서울청이 거부하자 불복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말레이시아에서 신분증에 여성스러운 얼굴을 한 사진을 사용해도 문제를 겪지 않았던 점, 여성복을 입고 화장한 채 취업해 직장생활을 했던 점 등을 고려해 "말레이시아로 돌아가도 박해받을 우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를 뒤집은 건 항소심 재판부였다. 서울고법 행정1-2부(부장판사 김종호 이승한 심준보)는 지난달 18일 1심 판결을 뒤집고 A씨가 받은 난민 불인정처분을 취소했다. 유엔난민기구 난민협약의 해석 지침을 참고하면 A씨도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엔난민기구의 성 정체성 기반 난민지위 신청 해석 지침은 "국가는 어떤 사람이 어떤 국가에서 성 정체성을 근거로 고문, 박해, 비인도적·굴욕적 대우와 처벌에 대한 근거 있는 두려움을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면 해당 국가로 이주, 추방, 인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다. 

2심 재판부는 "원고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고 자신이 처한 위협에서 보호해주길 국가에 요청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닌 것이 명백하다"면서 "이는 부당한 사회적 제약을 넘어 신체 또는 자유에 대한 위협,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차별이 발생한 경우이며 박해"라고 판시했다. 

다만 이 판결로 A씨가 최종적으로 난민 인정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판결에 불복한 서울청이 지난 7일 상고장을 제출해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데 성 정체성을 이유로 난민 신청을 한 이집트인 동성애자에게 승소 선고한 원심을 깨고 파기 환송한 과거 대법원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대법원은 동성애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려면 성소수자라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며 이를 이유로 본국에서 구체적 박해를 받았거나 송환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성정체성이 외부로 공개될 경우 가족이나 이웃, 대중으로부터 받을 반감과 비난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성적지향을 숨기기로 결심하는 것은 부당한 사회적 제약일 수 있지만 난민협약이 말하는 박해는 아니다"고 판시했다. 

익명을 요구한 난민법 전문 변호사는 "국내 난민법은 장래의 박해 가능성을 명시하는데 대법원 판결의 취지는 과거 박해 사실이 있어야 난민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거기서부터 애초에 오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성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인권침해이고 박해에 해당한다는 유엔난민기구 해석과 외국 법원의 판단이 있는데 한국 대법원이 너무 보수적으로 판단한 것 같다"면서 "난민의 박해 사유가 끊임없이 진화하기 때문에 난민법 개정에 의존하기보단 법원이 진전된 해석을 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