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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2/10/12 [뉴스원] [복지 위기가구] ⑥'2억 성공' 다훈씨도 당했다…자립청년 노리는 사기·도박
작성일
2022.10.12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복지 위기가구] ⑥'2억 성공' 다훈씨도 당했다…자립청년 노리는 사기·도박

매년 2100명 독립…최대 1000만원 정착금, 월35만원 5년 지원
경제관념 없이 순식간에 범죄 먹잇감으로…멘토 시스템 절실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2년이 지났지만 삶을 포기하려 했던 절망의 순간을 떠올리자 정다훈씨(22)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2020년 1월 코로나19 팬데믹 시작과 함께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이 된 정씨가 5000만원의 절망을 겪은 것은 보육원에서 퇴소한 지 불과 7개월 만의 일이다.

여느 자립준비청년들과 달리 정씨는 독립 초반 승승장구했다. 고교 시절부터 일하며 모은 돈과 자립정착금 500만원 등을 보태 가게를 차렸고, 운이 좋게도 두 달 뒤 2억원의 권리금을 받고 가게를 넘겼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정씨는 주변 사람 말만 듣고 더 큰 사업인 ‘슈퍼카 리셀’을 위해 5000만원의 사채를 더해 외제차를 구매했다. 기다리던 외제차는 오지 않았고 돈과 함께 삶의 의지도, 꿈도 사라진 스무 살의 그가 향한 곳은 한강이었다.

다행히 정씨는 삶의 마지막 순간 친구들의 만류로 극단적인 선택은 피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 혼자가 될 수밖에 없는 보호종료아동들의 현실에 변한 것은 없다.

정씨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실패했을때 일으켜세워주는 사람도 내 주위에는 없었다"며 "운좋게 성공해도 혼자서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 "돈 관리 배울 곳 없어…갑자기 생긴 지원금, 사기·불법 노출 쉬워"

정씨처럼 갑자기 혼자가 된 자립준비청년들은 홀로서기를 하기에는 불완전한 상태로 사회에 나오게 된다. 

연간 시설 밖으로 나오는 자립준비청년들은 210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자립을 하게 되면서 500만~1000만원의 자립정착금과 5년간 월 35만원씩 자립지원수당을 받는다.

그러나 지원금 규모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지원금을 충분히 받는다 하더라도 이를 관리하고 소비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으면 금방 다 써버릴 뿐만 아니라 정씨처럼 사기의 위험에 노출되거나 불법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립준비청년 3년차인 강민호(가명·22)씨는 자립을 시작한 후 도박에 빠져 불법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시설에서 한 달에 몇 만원씩 용돈을 받다가 갑자기 500만원이 생기면 당연히 관리를 잘 못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도박이나 토토 같은 곳으로 빠져서 돈을 벌려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목돈을 관리하는 법에 대해 배운 적이 없고, 상대적으로 학력이 낮아 고소득 직종을 구하기도 어려운 자립준비청년들로서는 당장 혼자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절박함에 쉽게 돈을 벌기 위해 불법에 빠져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강씨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금전적 지원만 해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각종 수당 등으로 큰돈을 쥐어주는 것이 오히려 자립에 독이 된다"고 지적했다.


◇ "자립준비청년들에게는 물고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이 절실"

자립준비청년들은 물고기보다 물고기를 잡는 법이 더 절실하다고 토로한다. 지원금의 종류와 사용법 같은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목돈 관리법, 현실에서 마주하는 경제적 문제 상황에 대한 정보 등이 필요하지만 정씨가 보호시설에서 받은 경제 관련 교육은 "적금해서 목돈을 마련하라"는 것뿐이었다. 

정씨는 "밖에 나와서 보니 돈 관리 같은 건 그 안에서 알던 거랑 너무 달랐다"며 "단돈 100만원도 가져본 적 없는데 큰돈이 생기니 금방 써버리거나 혼란이 오고, 일을 할 생각이 안 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돈을 어떻게 쓸지, 앞으로 돈을 어떻게 벌어서 살지에 대한 전반적 파악이 필요하다"며 지원금 지급에 앞서 기본적인 경제적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청년들이 겪을 수 있는 채무 연체나 파산 등 경제적 어려움의 극복을 돕는 것 또한 필요하다. 한순간에 2억5000만원을 잃고 한 달 뒤 극단적 선택을 하기 위해 한강을 찾은 정씨를 막은 것은 위치 추척 애플리케이션으로 그를 찾아 말려준 친구들이었다. 이후 그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통해 빚을 모두 갚고, 현재는 구청을 통해 연계 받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순간에 구해줄 친구들이 모두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씨와 달리 강씨가 보호시설에서 알던 형은 도박에서 큰돈을 잃고 난 후 도움을 구할 곳이 없는 상태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정씨는 자립한 청년들을 중심으로 더욱 현실적인 경제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설에 있을 때도 (경제적 자립에 대한) 강의는 많지만 이미 나이가 많고 경제적 기반을 다진 사람들"이었다며 "당장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관건인데 동떨어진 얘기를 해서 안 와닿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자립준비청년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통장에 1165만원 남았는데…"정말 필요한 건 사회적 자본"

실제 자립준비청년들이 혼자가 됐을 때 겪는 어려움은 우울감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9~11월 보호종료아동 310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인 1552명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지난 8월 광주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자립준비청년 A군의 통장에도 찾지 않은 지원금이 1165만원 남짓 남아 있었다. 돈이 있지만 극단적 선택을 한 A군의 사례가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이유를 다시 되짚어봐야 하는 이유다.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자립준비청년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나 기술 훈련 등은 이미 많이 있다"며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회적 자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립준비청년들이 독립 후 겪는 문제는 초기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별로 나타난다"며 "중장기적 관점에서 아이들에게 경제관념을 키워주고 사기 대처법도 알려주면서 이들이 독립 이후의 삶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