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뉴 닫기
 
 

아카이브

제목
2022/10/12 [법조신문] [지금, 여기 - 모두의 변호사]한센인 인권변호단 활동과 변호사 공익활동의 가치
작성일
2022.10.12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2022.05.30] [지금, 여기 - 모두의 변호사]한센인 인권변호단 활동과 변호사 공익활동의 가치


지난 4월 26일 한국 국회와 일본 중의원 회관에서 ‘일본 정부의 한국 한센인 가족들에 대한 보상 결정에 따른 한·일 공동기자회견’이 개최됐습니다. 최근 몇 년간 한일관계가 과거사 문제로 경색되어온 점을 고려하면, 갈등으로 점철되어온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뜻깊은 행사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2004년 이후 지금까지 한센인 인권을 위해 노력해온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한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한센인 인권을 위한 한국 변호사의 공익활동 역사는 짧지 않지만 많은 선후배 법조인들이 잘 모르시는 경우도 많아 이 기회에 새삼 소개를 해보고자 합니다. 한센인 인권을 위한 공익활동은 일본에서 한센인 인권침해에 대한 소송을 하던 일본 변호사들이 2003년에 소록도를 찾아오면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일본 변호사들과의 연대활동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에서 주도적으로 결합하다가, 소송의 범위가 커지면서 2004년 5월 당시 대한변협 인권위원회차원에서 한센병 인권소위원회가 결성되어 보다 많은 변호사가 결합하게 됐던 것으로 압니다. 당시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한센병 소록도 보상청구소송’은 일본 정부의 한센인을 대상으로 한 강제격리수용정책의 불법성을 다투는 것이었는데, 많은 준비 끝에 소송에 임했지만 2005년 10월 도쿄지방재판소는 기각졀정을 내렸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있었던 ‘나예방법’ 등에서 비롯된 한센인 강제격리수용정책이 ‘외지’인 조선까지 미치는 것을 확언할 수 없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동경지방재판소의 다른 재판부에서는 대만 낙생원에서 벌어진 강제격리수용정책에 대해서는 불법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면서 문제가 크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한일 시민사회의 강력한 연대와 저항에 힘입어 일본 정부는 2006년 한센보상법의 보상범위를 ‘외지’까지 확장했고, 1945년까지 소록도 등에서 강제수용된 한센인들의 보상이 가능해졌습니다. 일본 한센보상법 개정 이후 한국 변호사들은 전국 각지에 있는 한센인 정착촌을 찾아가 진술서 작업을 비롯해 증거자료 등을 수집하며 각계 전문가들과 연대했고 일본 변호사들과 공동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한센인 인권변호단의 성실한 활동에 힘입어 2016년 5월까지 총 590명의 보상결정을 일본 후생노동성으로부터 이끌어 내는 성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한편 한센인 인권옹호를 위한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은 당시 활동의 독립성 등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대한변협이 아닌 별도의 임의단체로서 ‘한센인 인권변호단’이 2006년 창립돼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한센병 소록도 보상청구소송을 계기로 한센인 인권 문제는 한국사회에서도 공론화가 시작됐습니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가 이뤄졌고, 2007년에는 국회에서 한센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으며, 동법에 기초해 2008년에는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기도 했습니다.


한센인 인권변호단은 국회에서 만들어진 한센피해자법의 부족한 내용을 실천적으로 비판하면서, 한센인 인권 옹호 및 권리보장을 위한 사법적 구제의 방법을 도모했습니다. 소록도병원 등에서 1945년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한센인에 대한 강제단종 및 낙태시술을 1980년대까지 불법적으로 자행한 사실에 대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2011년에 제기한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단종·낙태소송에서도, 변호단은 540여 명의 모든 원고들을 경향각지로 직접 찾아가서 진술서 작업을 일일이 수행하면서 성실히 변론활동을 수행했으나, 정부가 대법원까지 무리한 항소를 거듭하는 바람에 결국 대법원 판결을 받은 것은 2017년이었습니다. 길고 긴 소송과정에서 적지 않은 원고분들이 고인이 되셨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한편 일본정부는 2019년 한센인보상법을 개정하면서 강제수용격리정책의 당사자 뿐 아니라, 배우자·자녀·형제자매까지 보상 범위를 확대하였습니다. 이 역시 일본 변호사들의 공익소송이 승소한 것에 터 잡아서 생겨난 변화였습니다. 다시 한센인권변호단의 변호사들 중 일부가 ‘한센가족보상청구변호단’(단장 조영선 변호사)을 만들어 현재 130여 명의 한센인 가족들을 대리해 일본 정부에 보상을 신청한 상태이며 2002년 5월 현재 13명 정도가 보상결정을 받은 상태입니다. 앞으로도 한센인 인권을 위해서 변호사들의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셈입니다.


필자가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대리인으로 이름을 올린 사건이 한센인 강제단종·낙태 소송이었습니다. 그런데 2013년 처음 시작한 활동을 변호사 10년차인 지금까지도 지속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저에게는 참 큰 행운이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변호단의 10년째 막내인 제가 이러한데, 2004년에 처음 활동을 시작했던 선배 변호사님들은 훨씬 더 큰 의미로 각인되어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센인권변호단에 결합한 이들 모두 결코 짧지 않은 활동 기간을 힘들어하기보다는 활동을 통해서 변호사로서 직업적 자부심이 더 커졌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변호사의 공익활동이 위축되어온 것도 사실이고, 갈수록 어려워지는 법조환경 속에서 변호사법 제1조의 가치가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세태를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공익전담 변호사처럼 많은 공익활동을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한 분야에서의 공익활동·공익소송을 지속적으로 펼친다면 재무적 의미와는 다른 궤에서 삶의 만족감과 보상도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적어도 한 번쯤은 무언가 기억에 남을만한 공익활동을 만들어 가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준우 변호사

법무법인 덕수

출처 : 법조신문(http://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