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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2/10/12 [법조신문] "두 명이서 못 들어갑니다. 투표 못하세요"… 장애인 '참정권 침해' 현주소
작성일
2022.10.12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2022.04.20] [장애인의 날 특집] "두 명이서 못 들어갑니다. 투표 못하세요"… 장애인 '참정권 침해' 현주소


7개 장애인단체, 지방선거 앞두고 13일 '참정권 침해 규탄' 기자회견

투쟁 끝 법원서 '투표보조' 권리 받아냈지만 실제 현장에선 가로막혀

보조원 동반 내용 담은 선거법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 소위서 잠들어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1972년부터 1980년까지는 민간 단체가 '재활의 날'로 지정해 행사를 개최해오다 1981년 정부에서 '장애인의 날'로 정했다. 1991년부터는 법정 기념일로 공식 지정됐다. 장애인은 오랜 시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수많은 사회적 차별들과 맞서 싸웠다. 마침내 2007년 4월 10일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이듬해 4월 11일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법에서 '차별금지'를 명시했음에도 많은 장애인들은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다. 본보는 2022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참정권 조차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현실에 대해 되짚어봤다. <편집자주>

지난 3월 치러진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36.93%로 역대 최고 사전 투표율을 기록했다. 최종 투표율도 77.1%를 기록해 직선제 도입 후 치러진 대선 중 5번째로 높은 수치다. 온 국민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지만, 이 가운데서도 소외된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기본권 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한 이들은 바로 장애인들이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를 비롯한 7개 단체는 지난 1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있는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장애인 참정권 침해 규탄 및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재발방지 요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최 측은 "대선 투표 당일, 발달장애인 가족에 대한 투표 보조가 거부돼 장애인 유권자의 표가 사표가 된 사례까지 발생했다"며 "시각 및 신체 장애를 가진 당사자에 대한 투표 보조가 제대로 지원되지 않고 있으며, 법과 지침을 형해화시키는 차별행위가 만연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약 한 달 정도 남았은데, 이대로 지방선거가 실시된다면 장애인의 참정권은 또다시 훼손될 것이 분명하다"며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장애인연대 등에 따르면 지난 대선 당시 발달장애인들이 투표 보조를 제대로 받지 못해 참정권을 행사하지 못한 사례가 속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6년 중앙선관위는 국회의원선거 투표관리매뉴얼에 투표를 보조받을 수 있는 신체장애 대상에 '지적·자폐성 장애'를 포함시켜 발달장애인도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2020년 4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관위는 돌연 이같은 지침을 삭제했다.

그러자 장애인단체는 지난해 11월 법원에 '발달장애인 투표보조 지원에 관한 임시조치'를 신청했다. 넉달 뒤인 올해 2월, 서울중앙지법은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발달장애인에 대한 투표 보조를 인정하라는 취지의 결정을 했다. 

법원 결정으로 발달장애인들은 대선에서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3월 4~5일 양일간 치러진 사전투표는 물론이고 본투표에서조차 이들에 대한 투표 보조가 거부됐다. 선거사무관 등은 투표 보조에 관한 지침을 전달받은 적이 없으며, 동반 투표는 불가하다며 발달장애인의 투표권 행사를 막았다.

시각장애인 유권자의 상황도 비슷했다. 원칙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은 '점자형 투표보조용구'를 활용해 기표하도록 돼 있다. 보조용구에는 정당명과 후보자 이름이 적힌 곳에 사각형 홈이 파여 있고, 시각장애인 유권자들은 이를 통해 기표할 수 있지만, 도장이 제대로 찍혔는지까지 확인할 수는 없다. 선관위는 유권자가 원할 경우 가족 중 한 명을 지명하거나 선거사무원이 기표소에 함께 들어가 시각장애인 유권자를 보조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 때에는 불확실한 지침 등으로 인해 시각장애인들이 투표보조인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등 곳곳에서 혼선이 빚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선거사무관이 코로나19 확산 방지 등을 이유로 투표보조인과 동행할 수 없도록 해 결국 일부 유권자가 투표를 포기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선거 때마다 이같은 장애인 참정권 침해 문제가 불거지자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장애인의 참정권을 투텁게 보장하고, 누구나 어려움 없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는 투표용지에 소속 정당을 상징하는 마크나 심벌표시와 후보자 사진을 표시하도록 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또 혼자서 기표하기 어려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유권자는 가족 또는 공적 보조원을 동반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도 △점자형 선거공보를 책자형 선거공보와 동일한 내용으로 작성‧제출 의무화, 인쇄물 접근성 바코드 표시 △선거운동을 위한 방송광고,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대담‧토론회 등 수어와 자막 방영 의무화 △후보자 공개장소 연설‧대담 등에 수어와 자막 제공 의무화 △투표소를 건물 1층 또는 승강기 등 편의시설 설치 의무화 등을 규정했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은 아직까지 소위원회에서 계류 중이어서 언제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당장 지방선거를 코 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장애인들은 지난 대선과 같은 참정권 침해 상황과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지난 대선 사전투표 때 부실선거가 문제 됐고, 급기야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까지 불거졌다.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을 맡았던 상황에서 장애인 참정권 침해 논란까지 빚어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 달 남은 지방선거 때에는 제대로 된 지침이 내려와 같은 참정권 침해 논란이 발생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공익 변호사는 "투표보조 관련 문제 뿐만 아니라 점자형 선거공보, 승강기 설치 문제 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계속 문제가 되어 왔고 장애인단체 등에서 개선해달라고 요청해왔지만 몇 년이 지나도록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며 "장애인도 헌법에 의해 기본권을 보장받는 유권자다. 이번 국회에서는 개선이 필요한 사항들을 법에 의무화 해 모든 유권자의 참정권을 제대로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가언 기자

출처 : 법조신문(http://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