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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4/01/29 [뉴시스] 양승태 '무죄' 선고에도 판결문 곳곳 '부적절' 여지
작성일
2024.02.01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혐의'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 2024.01.26.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혐의'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 2024.01.26.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박현준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 수뇌부의 1심에서 재판부는 전부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 등이 관여했다는 의심을 받는 일부 의혹에 대해서는 혐의가 성립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가령 파견 법관을 통한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 수집 등 파문이 컸던 사건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 등과의 공모 사실이 입증되지 않아 무죄를 선고했지만, 관련자들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 혐의는 성립할 수 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법원의 판단 근거는 직무상 권한이 존재하는지, 이를 남용했는지, 또 남용으로 인해 타인의 권리행사를 방해했는 지에 더해 공모 여부까지도 성립해야 한다는 법리적 관점이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의 1심 판결문에는 사법농단 의혹과 연루된 주요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의 직권남용에 대한 인정 판단이 눈길을 끈다.

먼저 재판부는 양 전 위원장의 직권남용 혐의 중 하나인 통합진보당 관련 소송에 대한 일부 재판 개입 혐의와 관련해 공모자인 임 전 차장과 이 전 상임위원의 혐의에 위법성을 인정했다. 


가령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임 전 차장 등과 공모해 통진당 행정소송에 개입한 혐의에 대해 "서울행정법원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1심 사건 재판장에게 법원행정처에서 검토한 문건 내용을 파악해 법리를 재판부에 전달해달라는 취지로 지시 내지 요청을 한 것은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로서 직무수행 과정에 준수할 원칙, 기준, 절차 등을 위반하도록 한 직권 행사"라며 "이는 직권 남용"이라고 판단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을 와해시키기 위해 일부 직권을 부적절하게 행사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임 전 차장의 행위는 유죄로 인정하는 대목을 남겼다. 

재판부는 관련 보고서 내용을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도 실무 담당자들이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했다고 보고 "보고서 작성 지시 자체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며 "법관 표현의 자유 및 연구 자유를 침해하는 내용의 대응방안을 검토하도록 한 것은 위법·부당한 지시"라고 판시했다. 

파견 법관을 통해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기 위한 내부 정보를 수집했다는 의혹 역시 재판부가 직권남용을 인정한 부분 중 하나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혐의' 1심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오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4.01.26.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혐의' 1심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오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4.01.26. photocdj@newsis.com

재판부는 파견 법관들이 헌재 연구보고서, 사전심사보고서, 헌법연구관의 보고 의견과 평의 의견 및 결과를 전달한 부분에 대해 "기준과 절차를 위반해 의무 없는 일을 했다"며 이 같은 정보 제공을 요청한 행위 자체가 직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헌법재판소 심리 사건에 관한 담당 헌법연구관, 선임부장 연구관의 재판관에 대한 보고 결론,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헌재 재판관의 서면 심리 또는 평의 기초자료 내용을 전달하는 것으로 그 자체로 헌재 심리사건에 관한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내용을 포함하거나 기초 자료에 해당한다"며 "이를 전달하는 것은 직무수행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원칙이나 기준, 절차 등을 위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재판부는 사법농단의 핵심 의혹인 재판 개입에 대해서도 일부 사건에 대해서는 실체가 존재했다고 판단했다. 


일례로 2016년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이 부산고법 판사의 비위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재판부는 "부적절한 재판 개입을 요청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는 당시 관련 사건 항소심을 진행 중이던 부산고법원 원장에게 고 전 대법관이 전화를 걸어 선고 관련 요청을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일부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양승태 수뇌부가 해당 혐의에 공모·가담했다는 직접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재판부의 일관된 근거다. 


앞서 사법농단으로 재판을 거쳤던 주요 피고인들에게 적용된 법리로, '직권남용'이 성립하기 위한 범죄 구성 요건 모두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다. 


형법 123조는 직권남용과 관련해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시키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경우에 성립한다고 규정한다. 


 즉 범죄 혐의가 성립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직권이 존재하는지, 이를 행사했는지, 이를 직권 남용으로 볼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했는지 모두를 따진 후 이를 충족시켜야 혐의 자체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판결문에는 서론 약 60페이지에 걸쳐 이 같은 법리가 담기기도 했다. 이 사건 1심 판결문은 A4용지 기준 3160쪽, 두께만 34.5cm로 사법부 역사상 최대 분량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hummingbird@newsis.com, parkhj@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