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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3/11/08 [법률신문] 트랜스젠더 법원 판결에 ‘미묘한 변화’
작성일
2023.11.08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日최고재판소 “성별 바꿀 때 성전환 수술 요구 법률은 위헌”
한국 법원 “성전환수술 필수 아니다” 하급심 판결 이어져
법학계 “법률 제정 신속히 이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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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가 트랜스젠더에게 성별 정정 시 성전환 수술을 요구하는 법률은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트랜스젠더가 성전환 수술 없이도 성별을 바꾸는 것에 대한 법률 개정 논의가 이뤄지게 됐다. 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성전환 수술이 성별정정의 필수 요건이지만, 이를 규율할 법률은 미비한 상황이다. 최근 하급심에서 성전환 수술이 성별 전환에 필수가 아니라는 판단이 나오는 등 법원 판결에 변화가 일고 있는 상황에서 법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日 최고재판소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에 성전환 수술 필수 요구 법률은 위헌"
일본 최고재판소는 25일 트랜스젠더 등 '성 정체성 장애'를 가진 사람이 호적상 성별을 바꾸기 위해 '생식 능력'을 없애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현행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2019년에는 같은 법을 합헌이라 판단했지만 이번에는 재판관 15명 만장일치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일 의회는 관련 법률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 법이 개정되면 일본에서 트랜스젠더가 성전환 수술 없이도 호적상 성별을 바꿀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본 법원은 '성 정체성 장애 특례법'에 따라 △18세 이상 △결혼하지 않은 상태 △미성년자 자녀가 없는 상태 등 5개 요건을 충족하는 이들에 한정해 호적상 성별을 바꿀 수 있도록 한다.


이날 최고재판소는 △‘생식선 혹은 생식기능이 없을 것’이란 조항에 대해 위헌 판단을 내렸는데, 이를 충족시키려면 수술이 불가피하다. 최고재판소는 "국가가 국민에게 수술을 강제하는 건 '신체를 손상시키지 않을 자유' 등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변경 후 해당 성별의 성기와 비슷한 외관을 갖출 것'이라는 요건도 심판 대상이었으나 이에 대해선 고등재판소(고등법원)가 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냈다. 현재 생식 능력을 없애는 수술 없이 성별 정정이 가능한 나라는 아르헨티나·덴마크·헝가리 등 최소 17개국이라고 NHK는 전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최고재판소가 특례법에 위헌 판단을 내린 건 이번이 최초다. 법률에 대한 위헌 판단은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12번째다. 
 

 

한국 법원 하급심에서도 수술 안한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 허가
한국은 '성전환증' 환자 진단서와 성전환 수술 여부 등을 참고해 성별 정정 사건을 심리하고 있다. 대법원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 예규는 성별 정정 신청인이 정정 신청 시 성전환수술을 받아 △현재 생물학적인 성과 반대되는 신체의 성기와 흡사한 외관을 갖고 있고 △생식능력이 없음을 확인하는 의사 소견서를 제출하도록 한다. 2006년과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성전환자가 출생 시와 다른 성으로 법적인 인정을 받기 위해선 수술을 받고 현재 성별과 반대되는 성별의 외부 성기를 갖춰야 한다고 결정(2004스42, 2009스117)했다.


하지만 최근 하급심에서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에 대해 성별 정정을 허가한 판례가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서울서부지법 민사2-3부(당시 재판장 우인성 부장판사)는 트랜스젠더 A 씨의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별정정을 허가했다(2022브2). 재판부는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전환수술 강제가 개인의 존엄을 침해하므로, 수술이 아닌 다른 요건에 의해 성 정체성 판단이 가능하다면 그에 의해 성 정체성을 판단하면 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정신적 요소가 정체성 판단의 근본적 기준이며, 생물학적, 사회적 요소보다 우위에 두어 판단해야 한다"며 "외부 성기가 어떠한가는 성 정체성 판단을 위한 평가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2017년 2월 청주지법 영동지원도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별 정정 시 외부 성기의 형성 없이도 허용된다고 결정했다(2015호기302).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별 정정을 하는 경우에 성전환수술을 요구하지 않는 판례들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21년 10월 수원가정법원은 자궁적출술 등 생식능력 제거 수술을 하지 않아도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별 정정을 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법학계에서는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시 성전환 수술 요건이 사실상 법원 해석으로 규율되는 상황인 만큼 법률 제정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진수(68·사법연수원 9기) 서울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현재 불가피하게 대법원 지침에 따라 법원 판단으로 성별 정정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제는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관련 권리를 법률로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2010년대 유럽인권재판소,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에서 생식능력 제거를 요구하는 것은 개인의 신체적 완결성에 대한 권리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바 있는데, 일본도 이 같은 국제적 흐름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