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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6 [법률신문] [26년간 멈춘 사형집행, 어떻게 되나] 사형수 59명, 살인 피해자 207명
작성일
2023.11.06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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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째 멈춘 사형 집행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신림역 묻지마 살인’ 등 흉악-증오 범죄가 잇따르자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사형 집행 시설을 점검하라고 지시하면서다. 한국에서 사형집행은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 30일 23명을 끝으로 멈췄다. 그 후로 사형은 선고하되 집행은 하지 않는다. 사형 집행을 통해 흉악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과 사형수의 교화(敎化), 불분명한 범죄 억지 효과, 오판의 가능성 등을 감안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법률신문은 사형 집행과 관련해 특별취재를 통해 ‘사형수’ 사건의 내막과 사형 집행을 둘러싼 찬반 논쟁, 형벌의 목적, 가해자와 피해자 등 여러 당사자의 입장, 우려 등 다양한 논란을 3회에 걸쳐 보도한다.

 

① ‘살인의 추억’… 사형수 판결 55건 추적 분석

② 살인 그 후… 피해자 사연과 유족 목소리

③ 사형집행 찬반논란과 우려


미집행 사형수 59명에 의해 목숨을 잃은 피해자 수가 207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형수 1명이 평균 3명 이상을 살해한 것이다. 이 중에는 20명을 연쇄살인한 유영철과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강호순, 강도살해를 반복해온 정두영 등이 포함돼 있다.


법률신문은 현재 생존한 사형수 59명 중 55명에 대한 판결문을 확보해 전수조사했다. 이들이 살해한 피해자의 수는 188명으로 나타났다. 판결문이 확인되지 않은 나머지 4명의 사형수가 저지른 살인 사건을 개별 취재한 결과 피해자 수는 207명으로 늘어났다.


확보된 판결문을 중심으로 사형수가 사형을 선고받게 된 경위를 살펴봤다. 재판부는 대개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힌 점, 흉악범을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할 필요성이 있는 점" 등을 들어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수들은 평균 3.5명을 살해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만든 사형수는 20명을 살해한 유영철이다. 2005년 전까지는 1명을 살해한 범죄자도 간혹 사형을 선고받은 사례가 있다. 다만 이미 살인으로 인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후 가석방된 이력이 있거나, 미성년자를 살해하는 등 중형이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경우였다.

 

범행동기가 명확한 사건은 많지 않았다. 2000년 초반까지는 경제적 이유로 범행하는 사례가 상당했지만, 그 이후부터 사이코패스 유형 등 동기가 불분명한 범행이 늘었다. 사형수들은 피해자를 살해한 동기로 '소리를 질러서', '기분이 우울해서' 등 아주 단순한 이유를 들었다.

3명을 살해한 김해선은 12세의 초등학생이 소리를 질렀다는 이유로 살해했다. 2000년 8월 11세 초등학생을 성폭행 후 살해했고, 그로부터 2개월 뒤 노끈과 칼을 준비해 귀가하는 여학생을 성폭행하려 했다.해당 여학생을 놓치자 집으로 가던 17세(여)와 12세 남매를 붙잡아 남동생을 노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고, 고등학생인 누나를 성폭행하고 칼로 찔러 살해했다.


“기분이 우울해서” 

“소리를 질러서” 

범행동기는 단순 

 

'5번의 강도살인으로 9명 살해'…범행동기는 단순
"엄청난 범행을 저지른 것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피해자들 및 그 유족이 입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매우 큰 점 등 피고인의 불우한 성장과정 등을 참작한다 하더라도 피고인을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5번의 강도살인을 통해 9명의 목숨을 잃게 한 정두영의 판결문에는 이 같은 내용의 판시가 담겼다.

 

정 씨는 1998년 8월경부터 주택에 침입해 사람이 없으면 절도 범행을 저질렀고, 자신의 얼굴을 보거나 "강도야"라고 소리를 지르면 곧바로 살해했다. 피해자들은 대낮에 혼자 집에 있던 42세의 가사도우미부터 71세의 노인 등 물리적으로 저항이 어려운 약자들이었다. 정 씨는 자신의 범행동기를 “행복한 가정을 가지고자 돈을 마련하기 위해 그랬다”고 말했다.

 

임동수는 1996년 9월 음주를 한 뒤 울적한 기분이 들어 '무슨 일이라도 저질러야겠다'는 생각에 가방가게에서 과도를 구입한 뒤 인근 주택에 침입했다. 당시 집에 있던 4세와 6세 형제를 살해하고, 이어 집에 들어온 어머니도 살해했다. 임 씨는 치정살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형제의 어머니가 입고 있던 바지를 가위로 절단하고 자신도 상의를 벗고 그 옆에 나란히 누워 경찰이 올 때까지 있기도 했다.


이향열은 2009년 5월 자신과 동거하던 여성의 조카를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 피해자의 손과 발을 묶어 여행용 가방에 넣은 다음 인근 야산에 암매장했다. 1주일 뒤에는 자신의 의붓딸이 설거지를 해놓지 않은 것에 분노해 무자비하게 성폭행을 하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곧이어 자신과 동거하는 여성에게 찾아가 "사랑하기 때문에 죽인다"며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후에도 동거녀의 다른 조카를 데려와 성폭행한 뒤 감금했고, 자신의 친딸 역시 같은 방법으로 위협하고 성폭행했다. 이 씨는 "친딸을 성폭행할 생각은 없었으나 다른 피해자들은 모두 살해하거나 강간했음에도 딸을 내버려둘 경우, 사람들로부터 딸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 걱정돼 어쩔 수 없이 성폭행했다"고 변명했다.


'유영철 재판 보다가 자살' 세상 등지는 피해자 유족
강력 범죄는 한 순간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형수의 범죄로 피해 유족은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유족은 결국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기도 했다. 정부는 피해 유족들에게 심리 치료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가정이 파괴되고 뿔뿔이 흩어진 피해 유족을 찾기가 어려워서다.

 

유영철은 20명을 살해했지만, 정부가 발굴한 피해 유족은 네 가족 뿐이었다. 유영철의 피해자 중 다수가 도우미나 출장안마사 등이었기 때문에 피해자의 사망 이후 가정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유족을 어렵게 발굴해 심리 치료를 지원해도, 끝내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유영철의 범행으로 맏형을 잃은 형제 A 씨와 B 씨는 유영철의 재판 과정을 보다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택했다. 형제 중 유일하게 생존한 C 씨는 아직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C 씨의 지인은 "(C 씨의) 심리 상태가 아직도 과거 상태 그대로 있다"며 "교도소에 가서 유영철을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다닐 정도"라고 전했다.


춘천 부녀자 살인사건 당시 조경민의 범행으로 아내를 잃은 D 씨는 충격을 받고 지병이 악화돼 사망했다.

 

1997년 사형집행 후 사형확정 선고 44건

대법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사례 많아


잔혹 살인범죄에 '무기징역' 선고…'사형 집행' 중단 영향도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 집행 이후 현재까지 나온 사형 확정 선고는 44건으로 파악된다. 가장 최근 사형이 확정된 사건은 2014년 6월 임도빈이 육군 22사단 일반전초(GOP)에서 총기를 난사해 동료 5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임 씨는 2016년 2월 사형 확정판결을 받고 군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전 여자친구의 부모를 살해한 장재진도 최근 사형이 확정됐다. 장 씨는 전 여자친구를 폭행한 일로 부모로부터 꾸지람을 듣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 2014년 5월 배관공으로 위장해 전 여자친구의 집에 들어가 부모를 살해하고 전 여자친구를 성폭행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전 여자친구는 건물 밖으로 뛰어내려 크게 다쳤다. 1, 2심과 대법원 모두 장 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1심에서 사형이 선고돼도 항소심이나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는 사례도 많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 △'진주아파트 방화 살인' 안인득 △'인천 강도 연쇄살인' 권재찬은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대법원에서 확정 받았다.


사형 선고가 줄어든 배경으로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라는 점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사형을 선고해도 집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보니 형 선고의 실효성을 고민하게 된다. 사형보다 무기징역을 선고하게 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박선정·한수현·홍윤지·임현경 기자>

기사 원문: https://www.lawtimes.co.kr/news/192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