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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3/11/07 [세계일보] 손자 사망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제조사 책임 인정 판결 나올까
작성일
2023.11.07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부장판사 박재형)는 오는 28일 ‘강릉 급발진 사건’의 차량 운전자 측이 제조사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 세 번째 변론기일을 진행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BMW 급발진’ 사건에 이어 제조사 책임을 인정한 두 번째 민사소송 판결이 나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 손자를 잃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된 60대 할머니가 지난 3월 20일 첫 경찰조사를 마치고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경찰서를 떠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자동차 급발진이 의심되는 사고가 발생해 차량을 운전한 60대 여성 A씨가 크게 다치고, 차량에 타고 있던 이도현(사망 당시 12세)군이 사망했다. 경찰은 A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처음 입건했다가 지난달 17일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없음’으로 불송치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차량에 기계적 결함이 없다는 분석을 내놓았지만, 경찰은 국과수의 검사는 기계의 오작동을 검증하지 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국과수 감정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사건을 종결했다.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경찰이 국과수 감정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건 처음이다.

 

운전자인 A씨 등 유가족은 제조사의 책임을 묻겠다면서 7억6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과거 사례를 보면 형사재판에서는 종종 급발진 가능성이 고려돼 사고 차량 운전자에게 무죄가 선고된 전례가 있다. 하지만 통상 민사재판에서는 급발진을 인정받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6일 세계일보가 대법원 인터넷판결서열람시스템을 통해 최근 5년간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가능성을 판단한 1심 판결문을 살펴본 결과, 형사재판은 31건 중 4건에 “급발진이 의심된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반면 민사재판에서는 원고 급발진을 주장한 17건 모두 재판부가 청구를 기각했다. 지난 5년간 1심 재판부가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을 인정한 형사재판 비율은 13%인 반면 민사재판은 0%였던 셈이다. 다만 2018년 발생한 ‘BMW 급발진 사건’ 운전자 유가족이 제조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1심 패소 후 2심에서 승소해 최초의 민사소송 승소 사례가 됐다.

급발진 사건에서 형사재판과 민사재판 판단이 상이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급발진을 입증하는 ‘주체’와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형사재판은 ‘검사’가 피고인이 주의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민사재판은 ‘급발진으로 주장하는 사람이’ 급발진으로 사고가 났을 ‘개연성’을 입증해야 한다. 이때 개연성은 가능성보다 인과관계가 명확한 개념이다. 형사재판과 비교하면 차량 결함으로 급발진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더욱 명확하게 증명해야 하는 데다 이를 일반 소비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점에서 증거 수집에 한계를 겪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년간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리콜센터에 접수된 자동차 급발진 의심 신고 151건 중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이에 급발진 입증 책임을 소비자가 아닌 제조사로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경일 교통전문 변호사는 “운전자와 차량 제조사 모두 급발진을 입증하긴 쉽지 않다”며 “결국 운전자와 제조사 중 누가 급발진의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지의 문제인데, 제조사가 가져가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그는 “운전자는 (급발진이 인정되지 않으면) 형사처벌까지 받고 인생이 파탄나는데, 제조사는 (급발진이 인정돼도) 여러 가지 물건 중 하나의 불량품을 잃게 될 뿐이고 이런 위험을 비용에 반영해 차량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기사 원문 https://www.segye.com/newsView/20231106522540?OutUrl=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