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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3/11/01 [천지일보] ‘법보다 주먹’ 못 막네… 적용 모호·처벌 어려운 국제법
작성일
2023.11.01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28일(현지시간) 가자시키 건물들이 이스라엘군의 지속적인 공습으로 파괴됐다. (출처: 뉴시스)
28일(현지시간) 가자시키 건물들이 이스라엘군의 지속적인 공습으로 파괴됐다. (출처: 뉴시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분쟁이 3주를 넘어서는 가운데 양측은 모두 국제법을 어겼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 가자지구 병원 폭격 참사 이후 이런 비난은 더 커졌으며 사실상 지상전에 돌입한 이스라엘에게 국제사회는 국제법을 준수하라고 촉구했다. 이스라엘의 동맹인 미국은 특히 분쟁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에 국제법을 지킬 것을 당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5일에도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시민들 뒤에 숨어있다고 지적하면서도 “그렇다고해서 전쟁에 대한 국제법에 따라 작전을 수행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일주일 전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방문해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분노를 느끼더라도 분노에 잠식돼선 안 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며 전쟁법을 지켜야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처럼 이스라엘에게 국제법 준수를 상기시키는 이유가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법적 근거에 따른 것이란 점을 국제사회에 명확히 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바이든 대통령이 강조한 ‘국제법’은 무엇일까. 법을 어겼다는 기준은 무엇이며 어긴 주체는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 걸까.


◆핵심은 전쟁권과 국제인도법

전쟁에 대한 국제법의 기원은 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8년 부전조약은 대부분의 전쟁을 불법으로 간주했다. 이후 침략 전쟁을 명확히 금지한 1945년 유엔 헌장, 1949년과 1977년 제네바협약, 2002년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으로 이어졌다.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에게 요구하는 국제법은 제네바협약과 로마규정을 비롯해 이른바 ‘전쟁법’으로 불리는 국제인도법 체계다. 다만 이에 앞서 무력 사용에 대한 국제법도 중요하다. 바로 전쟁권(Jus ad bellum, 라틴어로 정당방위)이다. 즉 전쟁의 ‘이유(전쟁권)’와 ‘방법(국제인도법)’이 관련 국제법의 핵심이다.


원칙적으로 국가간 무력의 사용 및 위협은 유엔헌장 제2조 4항에 위배된다. 무력 사용이 정당화될 수 있을 때는 51조에 따른 자위권의 행사 또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허가에 의해서다. 이 전쟁권은 국가관계에서 적용되는 법규라는 점이 이번 분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하마스가 아무리 팔레스타인 국민에게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해도 국제사회에서는 국가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법상 하마스를 국가가 아닌 단체로 정의한다면 양측 모두 헌장 2조 4항을 위배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변수는 이란이다. 만약 이번 하마스의 공격에 이란의 역할이 있었고 더 나아가 이란이 하마스를 이스라엘에 파견했다는 일각의 의심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다. 지상전 국면으로 전환되며 국제사회는 국제인도법(jus in bello)를 위반하는지 감시할 예정이다. 이는 무력 사용의 합법적 근거가 있는지 여부는 관계없이 전쟁 자체에 적용된다. 국제인도법은 민간인 사상자가 무력 충돌로 인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민간인) 구분과 비례성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핵심 원칙은 민간인이 군사적 목적의 표적이 되거나 수단으로 과도한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군사작전 중 민간인 사살은 불법이 아니지만 민간인을 표적 삼는 것은 불법이다. 상대가 먼저 이 법을 위반했어도 모든 전쟁 주체에게 적용된다.


지난 24일(현지시간) 가자시티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주민들이 파괴된 집 잔해 아래에서 발견된 아이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24일(현지시간) 가자시티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주민들이 파괴된 집 잔해 아래에서 발견된 아이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출처: 뉴시스)


◆양측 모두 국제법 위반 혐의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모두 국제법 위반 의혹을 받고 있다. 하마스는 이미 많은 국제법과 국제 규약을 위반했다. 대표적으로는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살해하고 150여명의 민간인 인질을 잡은 행위다. 조직적인 살인 및 인질 납치는 제네바협약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며 국제 형법에 따른 범죄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도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 포위령을 발표하면서 200만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는 장소에 전기, 식량, 물, 연료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생존에 필수적인 물품을 박탈해 민간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포위 공격은 국제인도법에 따라 금지됐다고 지적했다.


지상전에서는 ‘비례성의 원칙’을 지켰는지가 관건이다. 비례성의 원칙은 ‘예상되는 민간의 피해’가 ‘얻을 수 있는 군사적 이익’에 비례하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원칙은 분명하지만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 전쟁 지역에서는 순수한 민간 시설과 적의 군사적 사용으로 의심되는 시설을 확실하게 구분하기 어렵고, 민간인 사상자가 군사적 목표에 비례하는 정도를 계산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제네바협약에 나오는 ‘결백한 민간인’이나 ‘무고한 민간인’을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는지도 불명확하다. 지난 7일부터 가장 큰 국제법 위반은 아직 배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가자지구 병원 공격이다. 500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숨을 거둔 데다가 의료시설에 대한 공격을 제한하는 국제인도법도 위반해 명백한 전쟁범죄 행위였다. 시리아 내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에 이어 다시 의료시설이 폭격을 받는 사태가 버젓이 일어나자 국제법의 실효성에 실망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다시 쏟아졌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CC).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종이호랑이 ICC… 강제력 수단 없어

국제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로는 형사 책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현실도 있다. 전쟁법을 집행하는 주체는 일차적으로 국가 자체에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국제법을 위반한 적이 없다는 입장으로, 자체적인 사법처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러시아 역시 국제법을 준수했다고 주장 중이다. 


이처럼 각국의 사법 시스템이 중대한 범죄 혐의를 받는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거나 묻지 않을 때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기소할 수 있는 유일한 국제사법기관이다. 그러나 ICC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하마스는 물론이고 이스라엘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ICC에 속해 있지 않다. 러시아, 중국, 인도 등 많은 강대국들도 ICC의 회원국이 아니다. 다만 이스라엘 내 하마스의 공격과 가자지구에서의 이스라엘군의 행동은 ICC 관할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ICC에 소속돼 있으며 2021년 분쟁 당시 ICC는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등의 전쟁범죄 혐의를 수사한다고 밝혔으나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2002년 설립 이후 ICC에서 유죄판결은 10건에 불과했다.


유엔 조사위원회는 분쟁 양측의 전쟁범죄 증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밝혔지만, 강제력이 없으며 안보리의 동의 없이는 제재나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없다. 그런데 안보리 동의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과 러시아 등 상임이사국들이 각각의 이익에 따라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지지하고 있어 전쟁 규탄 선언문 하나도 합의하지 못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솜 기자. som@newscj.com

기사원문: https://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3076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