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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3/10/06 [조선일보] [법없이도 사는법] ‘깡통전세’ 중개사에 책임 물린 법원 속뜻은
작성일
2023.10.06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빌라 밀집지역의 모습. 2022.8.1/뉴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빌라 밀집지역의 모습. 2022.8.1/뉴스


최근 전세계약을 체결한지 불과 2주만에 집이 경매에 넘어간 사건에서 부동산 공인중개사에게도 배상 책임을 인정한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불과 몇 달 전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깡통전세’사태가 현재진행형임을 보여 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주택이 왜 경매에 넘어갔고 계약 당사자가 아닌 공인중개사까지 배상 책임을 물게 됐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문제의 주택은 충북 청주에 있는 4층 다가구입니다. 다가구는 다세대 주택과는 달리 호실이 여러 개이더라도 소유자가 한 사람이고 1주택으로 취급됩니다.

A씨는 2021년 11월 27일 공인중개사를 통해 이 다가구 한 호실에 대해 전세기간 2년, 보증금 7500만원의 전세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전세금은 그해 12월 9일에 지급했고 확정일자도 같은 날 받았습니다. 이 다가구에는 채권최고액 3억 1200만원의 선순위 근저당권, 보증금 합계 3억 2700만원의 선순위 임차인들이 있었습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자칫 A씨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A씨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당시 계약서의 ‘중개대상물 확인 설명서’에는 선순위보증금이 2억 500만원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별도의 권리관계 및 국세, 지방세 체납사실 없음’이라는 문구도 적혔습니다.

A씨가 확정일자를 받은 날로부터 불과 2주 후인 2021년 12월 24일. 이 다가구에는 강제경매개시결정이 내려집니다. 건물과 부지의 감정가는 6억 7500만원이었는데 유찰을 거쳐 이듬해 10월 5억 2000만원에 매각됐습니다. A씨는 배당요구를 했지만, 선순위 저당권과 임차권에 밀려 한 푼도 배당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집주인에게는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는 동시에 선순위 임차보증금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며 계약에 참여한 공인중개사들과 협회에도 소송을 냈습니다. 임차보증금 7500만원을 집주인과 함께 물어내라고 한 것이지요.


이 사건에선 계약당사자가 아닌 중개사와 협회도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지가 쟁점이 됐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이백규 판사는 선순위보증금을 사실과 다르게 적은 데 대한 중개사의 책임은 인정했습니다. 계약서와 실제 선순위보증금의 차이가 1억 2000만원이 넘기 때문에 보증금이 7500만원인 A씨로서는 계약체결 여부를 결정할 중요한 조건인 만큼 중개업자가 제대로 설명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동산 전문 최광석 변호사는 “선순위세입자 권리금 등 등기부에 나타나지 않는 사항에 대해서도 설명의무를 부과하는 등 공인중개사가 제공해야 하는 정보의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중개사 책임 15%만 인정, 법원 “임차인 스스로 조사해야”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은 ‘책임 인정’ 자체보다 그 비율에 있다고 보입니다. 이 판사는 전체 손해액(7500만원)중 중개사의 책임은 15%에 불과하다고 봤습니다. 사실 선순위보증금이 사실대로 적히지 않은 이유는 임대인의 자료제출 거부 때문이었습니다. 거액의 선순위보증금을 적으면 추가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을까봐 숨긴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중개사들도 ‘임대인이 자료제출을 거부했다’는 점을 계약서에 적었습니다. ‘선순위 권리로 인해 보증금 일부 또는 전부를 반환받지 못할 수도 있음을 확인한다’는 문구도 있습니다. 중개사들도 ‘깡통전세’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고 면책 방안을 마련한 것이지요.


이 판사는 ‘선순위 보증금 액수에 관해 임차인들도 중개사에게만 의존할 게 아니라 임대인에게 임대차계약서 제시를 요구하는 등 자신들의 책임하에 조사·확인했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세입자가 임대인 동의를 받아 주민자치센터와 같은 확정일자 부여 기관에 요청해 직접 선순위보증금 액수를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드러난 선순위담보권+보증금 금액만 해도 5억 1000만원이 넘기 때문에 깡통전세 위험성이 높은 만큼 세입자 스스로 확인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일부나마 중개사의 책임을 인정한 판례는 또 있습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서 17개 호실로 이뤄진 다세대 주택 사례인데 전체 호실을 공동담보로 10억원의 선순위근저당권이 설정된 상태에서 B씨가 1억 5000만원을 보증금으로 하여 전세계약을 체결한 경우입니다. 당시 중개업자가 “선순위근저당권 10억원이 있어도 건물가액이 20억원이라 안전하다”고 설명해 믿고 계약했지만 문제는 이 건물은 ‘다세대’라는 것입니다. 전체가 한 채로 취급되는 ‘다가구’와는 달리 다세대는 호실별로 등기가 따로 이뤄지고 채무 부담비율도 달리 정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01호는 전체를 다 받고 102호는 한 푼도 못받는 일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B씨 또한 보증금 전체가 아닌 절반에 못미치는 7000만원 가량만 배당받았습니다.


이런 다세대 주택의 경우 중개사는 ‘건물값이 20억’이라고만 할 게 아니라 호실별 가격이 얼마인지, 전체 근저당권 채무액 중 어느 정도를 분담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설명했어야 한다는 게 법원 판단입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책임제한은 들어갑니다. 세입자로서도 최소한 등기부등본을 떼 보면 호실별로 별도등기가 이뤄진 다세대라는 사실과 해당 호실의 매매가액을 알 수 있는 만큼 자기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여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세대 주택 사례에서 법원은 중개사의 책임을 30%로 제한했습니다. ‘깡통전세’임이 드러나는 다가구주택 사례보다는 임차인이 책임질 부분이 적다고 본 것입니다.


이처럼 최근 판례는 중개인이 계약시 확인해줘야 할 정보의 수준을 높이면서도 실제 배상액을 정하는 데 있어서는 임차인 스스로 ‘깡통전세’ 위험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습니다. 임차보증금이 전체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거나 대부분인 경우도 있는 만큼 이정도의 주의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타당해 보입니다.


출처 : https://www.chosun.com/national/court_law/2023/10/06/WBFR57VFSJFYBDV6I7E26RRWTQ/?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