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뉴 닫기
 
 

아카이브

제목
2024/06/02 [중앙일보] [단독] 만취상태서 타워크레인 조종했는데 "음주운전 아니다"…왜
작성일
2024.06.03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지난해 서울의 한 주택재건축현장에 세워진 타워크레인 모습.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스1

지난해 서울의 한 주택재건축현장에 세워진 타워크레인 모습.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스1



술을 마시고 공사현장에 설치돼 있는 타워크레인을 조종한 것을 ‘음주운전’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검사와 판사의 의견이 갈렸다.

타워크레인 기사 A씨는 지난해 8월의 어느 날 경기도의 한 공사현장에서 오전 6시부터 8시 30분까지 타워크레인을 조종한 일로 재판을 받게 됐다.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275%의 술에 취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A씨의 공소장엔 건설기계관리법 위반과 도로교통법 위반 두 가지가 적혔다. 하나의 행위가 두 개의 죄가 된다고 인정되는 경우 둘 중 더 무거운 형을 적용하는데, A씨는 2022년에 음주운전으로 실형을 살고 나온지라 재차 음주운전이 인정된다면 형은 훨씬 무거워진다. 건설기계관리법상 술에 취해 건설기계를 조종했다 징역을 살게 되는 경우엔 1년 이하지만,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누범은 1년부터 시작이다. A씨처럼 혈중알코올농도 0.2%이상이라면 2년 이상 6년 이하의 징역에 해당한다.


하지만 A씨의 과거 전력과는 별개로 이번에 A씨가 저지른 일이 음주운전인가는 엄격히 따져봐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는  ‘공사현장’에 설치된 ‘발진기능’ 없는 타워크레인을 조종한 것이 ‘도로’ 교통법상 음주 ‘운전’에 해당하는가가 쟁점이 됐다. 도로교통법 44조(술에 취한 상태에서의 운전 금지)를 보면 ‘누구든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등, 노면전차 또는 자전거를 운전해선 안 된다’고 돼 있고 ‘자동차등’에는 ‘건설기계관리법상의 건설기계를 포함한다’고 부연설명 돼 있다. 이런 원칙을 토대로 검찰은 A씨가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죄를 저지른 게 맞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북부지법 임정엽 판사는 A씨의 경우 음주운전을 적용할 순 없다고 봤다. 임 판사는 ‘도로’와 ‘운전’의 의미를 다시 짚었다. 도로교통법상 ‘도로’는 ‘불특정 다수가 통행할 수 있도록 공개된 장소’이고, 대법원 판례상 ‘운전’은 ‘엔진을 시동시켰다는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른바 발진조작의 완료’를 요한다. A씨가 술 취해 움직였다는 타워크레인은 공사현장 내에 고정돼 있었고, 무거운 물건을 상하좌우로 이동시키는 기능은 있었지만 스스로 이동하는 기능은 없었다. 결국 임 판사는 “A씨가 타워크레인을 ‘운전’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잘못이 없단 건 아니다. 임 판사는 A씨에게 건설기계관리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지난 3월). 벌금형도 선고 가능하지만 징역형을 선택했고, 10년 내 전과가 있는 누범이라 처벌을 무겁게 했다. 임 판사는 “A씨가 조종한 타워크레인은 그 규모가 매우 크고, 공사현장에 다른 직원들도 다수 있었는데 술 취한 상태에서 타워크레인을 조종해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에게도 위험을 초래했다”고 했다.


도로교통법 1조는‘이 법은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모든 위험과 장해를 방지하고 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다. 임 판사는 A씨가 공사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위험하게 한 죄(건설기계관리법 위반)는 저질렀지만, 교통상 위험을 초래하거나 원활한 교통을 저해하는 죄(도로교통법 위반)를 저지른 건 아니라 본 것이다. 이 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검사와 A씨 모두 불복해 시작된 항소심은 27일 그 결과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