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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3/06/30 [법률신문] ‘불법 파견’ 판결의 나비효과… 협력사 도산위기
작성일
2023.07.07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포스코 협력사인 제조업체 A 기업(열연·냉연 조업지원)은 2022년 7월 결론난 '근로자지위확인(직접고용) 소송'으로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소송에서 승소한 약 40명의 근로자들이 퇴사 의사를 밝혔는데, 이와 함께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던 근로자들의 대거 이탈 가능성도 커졌기 때문이다. 퇴사 의사를 밝힌 근로자들은 기업의 핵심 인력. 회사 운영에 중요한 인적 자원들이 나가면서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사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A 기업의 대표는 법률신문에 "우리 기업의 이미지는 대법 판결로 불법 파견 업체가 됐다. 그동안의 경영까지 부정당한 것 같아 억울한 부분이 있지만 법원의 판결이니 결과는 받아들였다"면서 "'시한부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임직원 모두 회사가 내일 어떻게 되더라도 오늘을 안정적으로 운영하자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심경을 전했다.



그는 "승소한 37명의 직원은 포스코로 옮겨가고 나머지 직원들만 남아서 업무를 하고 있다. 다만 소송 이후 직원들은 포스코가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를 해줄 것이라고 기대를 했다가 안되다 보니 추가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앞으로가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지만 일단 안정시켜서 업무는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 협력업체 대부분이 A 기업과 사정이 다르지 않다. 2011년, 2016년 근로자들의 집단 소송 이후 2022년 3월까지 포스코의 사내 협력업체 19곳, 1148명이 근로자지위확인 또는 고용 의사표시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다른 근로자들의 소송 및 퇴사 가능성도 높아져 직원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위기에 처했다.



대법원 판결의 '나비효과'다. 대법원 판결 이후 중견 기업의 지위는 불안정해졌다. 위기를 타개할 해결책에는 지분을 팔거나 대기업의 자회사로 편입하는 등의 방법이 있지만 기업간의 합의와 논의가 필요한 문제기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11년 소송의 끝, 한쪽의 마음은 가벼워졌지만 어느 한쪽은 덜어낸 무게만큼의 현실을 지게 됐다. 대법원이 포스코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포스코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직접고용) 소송'에서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중간에 있던 협력업체가 모든 부담을 안게 된 것. 불법파견 논란을 종결하고자 했던 판단은 중견 기업을 도산 위기로 내몰고 있다. 불확실한 상황의 결말은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대법원, 협력업체 직원 정직원으로

2022년 7월 대법원 민사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근무하던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포스코 정직원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011년 첫 소송이 제기된 지 11년 만의 결론. 포스코가 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작업 지시를 한 만큼 사실상 '근로자 파견'에 해당된다는 이유에서였다.



2006년 개정된 파견법에 따르면 "2년을 초과해 계속해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대법원은 포스코가 2년 이상 파견근로자를 사용했으니 "고용 계약이 체결되거나 원청사의 고용 의무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포스코 직원과 크레인 운전 업무를 하는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동일한 생산관리시스템(MES)을 사용한 것도 이유가 됐다. 근로자들은 포스코가 MES로 업무지시를 했기 때문에 불법파견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포스코가 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구속력 있는 업무상 지시를 내려 사실상 근로자 파견계약을 맺었음을 인정했다. 또 근로자들의 코일 운반 업무는 압연공정에서 필수적인 부분이고, 포스코 정규직들의 업무와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근로자들 사이에 업무지휘명령 관계가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2016다40439, 2021다221638)





산업 현장엔 또 다른 위기

재계에선 불법 파견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로 근로자의 자리는 보장받았지만, 산업 현장은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고 보고 있다. 파견 이슈와 관련해 법원 판결의 기준이 일관되지 않은 데 따른 우려가 커진 것.



법원은 명백하게 도급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아니면 파견 관계로 평가해 파견법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세부적으로 정립된 기준이 없어 같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임에도 1심과 2심의 결론이 다른 경우가 있다. 동종 업무에 종사한 근로자들이어도 일의 성격과 원청의 지휘 여부에 따라 결정도 바뀌었다.



포스코 소송의 경우도 크레인 운전, 제품창고 지원, 포장 업무 등을 담당하던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1심에서 근로자 파견 관계가 부정됐으나, 2심 재판부는 이들의 근로자 파견 관계를 인정했었다. 포스코 소송 외에도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서비스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낸 소송에서 1심과 2심의 판결이 엇갈렸다.



적법 도급과 불법 파견 여부가 재계에 미치는 파급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원청의 직고용으로 협력사의 입지가 줄어들면, 규모가 작은 회사부터 연쇄적으로 파산하고 종국에는 협력업체들의 줄도산으로 이어지지 않겠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우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