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뉴 닫기
 
 

아카이브

제목
2022/02/06 [법률신문뉴스] [지금은 청년시대] 악성 민원인 K
작성일
2023.02.06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지금은 청년시대] 악성 민원인 K

피고인 K는, 내가 자신의 항소심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곧바로 나의 사무실로 전화하였다. 피고인 K는 전화 통화를 하는 동안 연거푸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김 선생’을 찾아뵙고 싶다고 말씀하셨다(그는 나를 항상 김 선생으로 불렀다). 47년생의 피고인은 자신이 직접 작성한 투박한 항소이유서와 각종 서류를 내게 건네며 자신의 원통함을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그 내용인즉슨, 자신이 거주하는 30년 된 아파트의 장기수선 보수공사에서 부실 공사로 의심되는 정황을 포착하였고, 이를 알아본 결과 그 부실 공사의 원인은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및 관리소장의 무능과 잘못된 집행 감독 그리고 해당 보수공사 업체와의 유착관계가 의심되어, 해당 내용의 진실을 입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유인물로 작성하여 아파트 전 250세대 우편함에 배부하였던 것이었다. 피고인 K는 위와 같은 행위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기소되어 1심에서 1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나는 피고인 K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피고인 K에 대한 기록을 꼼꼼하게 읽었는데, 이 사건 아파트의 보수공사에서 부실 공사로 의심할 만한 정황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부실 공사 정황을 기초로 ① 피고인 K가 이 사건 장기수선 보수공사에서 부실 공사 여부에 따른 이해당사자로서 해당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는 점, ② 피고인 K가 판시 유인물을 배부하기 이전에 입주자대표회의 업무담당자로부터 피고인이 입고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공사 자재에 대해 설명받는 과정에서 거래명세표 일부가 누락되어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판시 유인물을 배포하였던 점, ③ 실제로 이 사건 아파트의 보수공사를 진행했던 해당 건설사의 부실 공사 여부가 명백히 밝혀져서, 이 사건 아파트 관리소장이 부실 공사 여부를 인정하고 사과한 점, ④ 피고인 K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위 부실 공사가 공론화되었고, 결과적으로 해당 보수공사의 전체 금액 중 20%가 지급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었던 점 등을 근거로 피고인 K의 판시 유인물 내용의 허위성 인식 여부(진실한 것이라고 믿는 데 상당한 이유) 및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조각사유를 각 주장하였고 피고인 K에 대한 원심판결이 파기되어 무죄가 선고되었다.


피고인 K는 선고기일에 내게 전화를 걸어 울먹이며 “처음 면담 때부터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들어줘서 고맙다. 살면서 많은 법조인과 공무원을 만났는데 상당수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고 자신의 말을 자르며 악성 민원인으로 취급하였다. 그런데 ‘김 선생’은 달랐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사건 결과에 대해 안심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동안 나 역시 다른 사건 담당자(변호사나 공무원 등)와 마찬가지로 사연이 많은(?) 의뢰인을 업무량이 많다는 등의 이유로 형식적으로 대응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개개의 사건들을 뭉뚱그려 전형적인 케이스에 적용하기보다는, 각자의 서사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