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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5 [노컷뉴스] 용인경전철 '주민손해' 인정한 法…무책임 행정에 '철퇴'
작성일
2024.02.15
작성자
공익법률지원센터
게시글 내용

용인경전철. 연합뉴스용인경전철. 연합뉴스

경기 용인경전철 사업의 파행으로 불거졌던 1조원대 혈세 낭비 논란과 관련해 주민 손해를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절차적 위법만 없으면 법적 책임을 묻기 힘들었던 행정적 과오에 대해 처음으로 법원이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유사 사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거듭 '주민 손' 들어준 法…유사사례 파장 전망

 

14일 서울고법 행정10부(성수제 양진수 하태한 부장판사)는 '용인경전철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주민소송단'이 낸 손해배상 청구 주민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업을 시작했던 이정문(현재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 전 용인시장과 수요예측을 맡았던 한국교통연구원을 상대로 용인시가 214억여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에 이어 파기환송심에서도 용인경전철 사업으로 발생한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주민소송의 타당성을 인정하며 피해금액을 구체화한 판결이다.

 

이미 대법원이 해당 사안은 주민소송의 대상이라고 인정한 데다, 재차 고등법원이 금전적 손해금액까지 특정함으로써 주민소송의 '의미와 당위성'을 재확립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주민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액과는 차이가 크지만, 지자체들의 무책임한 세금 낭비 행정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판례가 될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다른 지역 경전철과 모노레일 등을 비롯한 사업성 부족 문제가 제기돼온 유사 사업 등에 관한 주민소송 추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세금이 투입된 정책사업에 대해 지자체장과 공무원에게 행정적 징계에 그치지 않고, 물리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함으로써 행정 책임의 무게를 더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사회적 파장이 크다는 점을 감안해 재판부도 고심을 거듭해 왔다. 애초 파기환송심 선고는 2022년 9월 예정됐으나, 4차례 추가 변론기일과 9차례 선고기일 변경을 거쳐 대법원 판결 이후 3년 7개월 만에 내려졌다.



1·2심은 주민소송 불인정, 이유는?

 연합뉴스연합뉴스

용인경전철은 이 전 시장과 서정석(한나라당)·김학규(민주당) 전 시장 임기를 거쳐 2010년 6월 완공됐다. 그러나 외국계 시행사와 최소수입보장비율 등을 놓고 국제소송전을 치르느라 2013년 4월에야 개통됐다.


당시 용인시와 한국교통연구원은 하루 예상 수요 승객수를 13만9천명으로 산정했다. 하지만 개통이후 현실은 예측 수요를 완전히 벗어났다. 하루 평균 승객수는 1만명 안팎에 그쳤고, 곧바로 적자에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전체 공사비와 소송비(사업자 보상액 포함) 등으로 혈세 부담은 1조원에 달했다.

 

이에 개통 6개월 만에 용인시민들로 구성된 소송단은 "평균 탑승인원이 예상인원의 5%에 불과해 운영비만 매년 473억 원 이상 적자가 날 것"이라며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주민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현 용인시장은 사업 책임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라"는 취지였으며, 사업에 관여한 전직 용인시장들과 관련자 등을 상대로 용인시가 손해배상 청구를 하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앞선 1·2심 재판부는 일부 내용만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리적 이유를 들어 대부분의 청구사항을 기각했다.

 

주민소송은 '주민들이 직접 감사를 청구한 내용과 밀접·동일한 사안의 위법·부당 행위로만 한정된다'는 게 상고 이전의 원심의 판단이었다. 감사를 청구한 사항이 아니므로 주민소송 대상이 아니고, 감사가 있었더라도 소송 범위가 방대해 청구 전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당시 재판부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해 관계자들의 중대한 과실이나, 고의성을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봤다.

 

다만 원심 재판부는 김 전 시장의 정책보좌관이 경전철 소송에서 특정 로펌에게 과도한 입찰금액을 지출해 시에 손해를 입힌 사항(5억~10억 원 규모)만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했다.

 

그간 손해배상 청구 수행을 요청받은 용인시 역시 "고의 또는 이에 준하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피고가 손해를 입은 경우에만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할 여지가 있다"며 "이 사건 사업 관련자들에게 일반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현저히 위반해 거의 고의에 가까운 정도의 주의를 결여한 중과실이 인정되지 않는 한, 원고의 청구는 기각되는 게 맞다"고 변론해 왔다.

 

주민소송 폭넓게 해석한 대법…"직접민주주의 진일보"

 

하지만 판단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2020년 7월 대법원은 손해배상 책임을 판결문에 직접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원고가 패소했던 원심 판결 일부를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용인경전철 사업이 잘못된 수요예측조사로 실시됐다면 주민들은 이로 인해 입은 손해를 청구하는 소송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주민감사청구와 반드시 동일할 필요가 없고, 감사 청구 관련 내용이면 주민소송의 요건이 될 수 있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었다. 소송 대상의 기준을 낮춰 주민들 손을 들어준 셈이다.

 

더욱이 세금이 투입되는 사업의 계약과 이행, 회계처리 등에 관해 지자체장과 담당 공무원, 관계 기관의 책임을 묻기 위해 이들을 주민소송의 대상자로 인정하기도 했다.

 

이같은 대법원 판결은 법조계 안팎에서 2005년 주민소송제도 도입 이후 지방자치단체 민간투자사업과 관련해 주민소송 권한을 인정한 첫 사례로 주목받았다.

 

주민소송은 지자체의 불법 재무회계 등의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주민들이 제기할 수 있는 법적 절차로, 당사자뿐만 아니라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해당 지역 전체 주민에 대해서도 효력이 있다.

 

금창호 한국정책분석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타당성이나 수요분석이 지자체 사업추진의 근거가 됐는데, 이에 대한 잘못이 인정된 것"이라며 "지자체든 관여 기관, 사업자든 공적 재원이 투입된 사업에 대해 무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민들이 직접 시정을 감시하고 책임을 따져 물으면서 민주주의가 한층 성숙하는 기회가 됐다"면서도 "다만 이번 판결이 재상고를 거쳐 최종 확정될 경우, 일부 시급한 대규모 사업을 추진할 때 행정이 다소 위축될 우려도 상존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