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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행사

구 미디어아트연구소 세미나

제목
미디어아트 세미나 47
작성일
2021.07.26
작성자
매체와예술연구소 관리자
게시글 내용

제목 : 컴퓨터 게임과 인문학

발표자 : 여명숙

사 회 : 김혜련(본 연구소 전문연구원)

일 시 : 2007년 7월 28일 토요일 오전 10시

장 소 : 위당관 301호

내 용 :

사이버공간이 이미 우리 생활공간의 일부로 편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가상현실의 실재성을 쉽게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사이버문화의 이중규범과 사회적 모순이 생겨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게임이라고 불리는 가상세계의 본성에 대해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가능한 개념적 정지작업을 시도하는 일은 철학의 매우 중요한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온라인 게임, 그중에서도 MMORPG이다. 몰입성이 강할수록 성공한 게임인 동시에 신종사회병리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MMORPG 헤비 유저와의 인터뷰는 게임공간에서 가상인격을 통한 다양한 체험이 자아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아의 확장이나 하나의 인격체로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는 생각에 이르도록 한다.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구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구분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을 ‘가상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점에서 중독과 몰입간의 구분이 요구된다. 모니터 앞에 않아있는 개인을 편협한 세계관에 기대어 비판하기 보다는, 온 종일 굶으면서 관절의 통증을 참아가며 몰두해 있을 수 밖에 없는 정신 활동과 그러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세계의 본성에 대해 더 폭넓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실공간의 행위와 사이버 행위들 간의 유기적 연관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사례는 온라인 게임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이버 경제활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저는 게임 속에서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 몬스터를 때려잡아 아이템을 획득하거나 사이버 머니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그리고 이러한 게임상의 아이템 등을 실제의 돈으로 거래하는 행위를 아이템 현금거래라고 부르는데, 온라인 게임에서 현금 거래가 가능한 게임 구성물에는 사용자 계정, 캐릭터와 아바타, 게임 아이템, 사이버 머니등이 있다. 대부분의 게임사의 약관은 게임상에서 임의로 게임 아이템과 사이버 머니를 교환하는 것은 허용하나, 현물로써 현실에서 거래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게임 아이템이 실제로 현금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이를 이용한 조직적 범죄가 성행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분쟁의 핵심은 아이템의 소유권을 누구에게 귀속시킬 것인가에 있다. 게임사들은 게임 아이템이 자신들의 지적 재산권이라는 이유로 약관에서 아이템의 현금거래와 계정 양도를 금지하는 반면, 유저들은 아이템의 가치란 자신들의 밤샘 노가다 끝에 얻어진 산물이므로 고레벨 캐릭이든 수퍼 창이든 그 사유가치는 유저들에게 귀속된다고 주장한다. 현금거래 반대자들은 일견 ‘사행심 조장 근절’이라는 취지에서 일치하는 듯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논거에 천착하고 있다. 게임사의 논거는 경제논리에 입각해 있는 반면, 학부모 정보 감시단의 반대 사유는 게임사가 제공하는 가상현실의 가치에 대한 거부감에 기인한다.

아이템 현금거래 찬성자에 ‘가상현실과 현실을 구별 못하는 처사’라는 반박보다 더 부적절한 비평은 없다. 그것은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 공간이 되어 버린 가상 공간이 현실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 비 효율적인 물리 공간은 모두 가상 공간의 사건들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여기서 검토해야 할 것은 게임 공간을 가상현실이라고 할 때 어떤 의미의 ‘가상’이냐는 것이다. 가상성의 분류에 따라 가상공간 운영에 관한 ‘약속’에 대한 이해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놀이의 룰인지 사회계약인지를 판별해야 약속의 이행과 불이행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게임아이템이라는 신종 객체를 둘러싼 복잡한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가상성의 본질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가상현실’ 의미를 면밀히 검토하면 우정, 자유, 숭고와 같은 현실세계의 인간적 가치가 ‘게임’과 양립 가능한 것임이 드러난다. 가상현실, 즉 가상공간 내에 존재하는 행위자, 사건, 사물의 본성에 비추어 볼 때 게임 아이템 현금거래양성화를 가로막을 수 있는 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다만 중도성 규제의 근거는 가상세계와 현실 세계의 완정한 대체 불가능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세계의 완전한 보존이나 가상과 현실으 적절한 조합이 완전한 가상세계보다 더 가치있는 세계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 한, 현실세계와 충실해야 한다는 규범은 여전히 유효하다. 중요한 것은 가상화 가능한 것, 가상화 불가능 한 것, 가상화 해서는 안되는 것에 대한 구분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제 게임이 국가가 지원하는 전략 사업일 수 있는 이유에 대해 한마디로 답한다면, ‘게임은 더 이상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거대 이념보다는 작은 주변 이야기가, 합리적 이성 보다는 솔직한 감성이, 전체보다는 개인이 모든 담론의 중심을 차지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일상성 위에, 디지털 기술을 더해 표현과 체험의 극대화, 즐겁게 살기, 재미있음이 일상을 지배하는 보편적 가치가 된 바로 이 시점에서 게임 산업이야말로 “ IT혁명을 완성시킬 핵심 산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우리는 어떤 게임 속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 숙고하는 일이다. 가상공간의 행위자 범주에 인간뿐만 아니라 장차 지능형 소프트웨어나 로봇까지 포함될 경우, 그들을 상대로 한 게임 아닌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장치는 무엇인가? 새로운 게임 세계의 가치론을 구성할 때마다 현실의 세계관과 인간관에 대한 면밀한 반성이 필요한 이유는 게임자체가 우리의 생활양식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