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뉴 닫기
 
Community

커뮤니티

"우리들의 60년"

제목
제2부 영문과 교육내용의 변천 (2008.03.16)
작성일
2022.12.30
작성자
영어영문학과
게시글 내용

대학교육의 철학도 궁극적으로는 시대의 변천상과 사회적 상황에 무관할 수 없으며, 교육철학의 변화에 따라 교과과정도 그 목표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영문과의 교과과정도 예외일 수 없다. 영문과 교육내용의 변천 과정을 학부와 대학원의 경우로 나누어 서술키로 한다.



1장 학부


1942년에 4년제이던 문과와 이과의 수업연한은 점진적으로 3년으로 단축되고 학과과정도 수정되었다. 일제하의 교육과정이 조선의 민족정기와 사상을 약화시키는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점은 여기에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대학교육에 있어서도 ‘이념’에 관련된 과목이라 할 수 있는 윤리나 철학사 같은 과목은 삭제한 후 일본어를 ‘국어’로 명명하고 일본사를 ‘국사’라는 과목명으로 넣는 한편, 영어, 중국어, 독일어, 불어와 같은 어학과목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학문의 실용성 제고’를 표방하는 책략을 사용하고 있었다. 1945년 해방 후 1년이 지나서야 연희전문학교는 대학으로 승격되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연희대학교가 대학다운 대학 규모의 교과과정을 수립할 수 있었다.

1946년 3월 7일에 미군정청 산하 교육심의회는 미국 교육제도를 모방하는 6-3-3-4제의 학제를 성안하였고, 학기도 종래의 3학기제를 2학기제로 개편하는 동시에 학년 초도 9월로 하였다. 따라서 9∼2월을 1학기, 3∼8월까지를 2학기로 하는 신제도에로의 개편이 이루어졌다. 참고로 당시 미군정청의 대학령에 의거하여 연희대학교가 마련한 학정 단위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4년제, 180 단위 (학점 1단위는 1주 1시간씩 1학기 기준)

(2) 필수과목 30 단위 (국어 8, 문화사 4, 자연과학 4, 체육 8, 종교 6)

(3) 전공과목 60 단위

(4) 선택과목 90 단위


미군정 시대가 지나 1948년에 정부가 수립되었고, 그 후 1년이 지난 1949년 12월 31일에 법률 제86호로 공포된 신교육법에 따라 학년 초 9월 1일이 4월 1일로, 2학기 시작이 10월로 각각 변경되었다. 신교육법에 따라 대학체제는 점차 우리의 실정에 맞게 정비되어 갔고, 교육의 근간인 교과과정도 통합교과에서 학과별 교과로 바뀌기 시작했다.

영문학과도 다른 학과와 마찬가지로 학과가 개설된 지 3년이 지난 1949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독자적인 교과과정을 수립할 수 있었다. 이 기념비적인 결과를 『연세대학교 백년사 1』로부터 그대로 옮겨 본다.


1949년도 영문과 교과목


      學程 號數    名 稱 敎 授 每週    每週     學 點   豫 修 學 程

                    年 限  授業  演習           甲種 乙種 丙種

                                    時數    時數

 英文 101甲 文學槪論 半 3  3

 同 201 英語會話 1 3  6

  同 301 同 1 3  6 英文201

 同 202 英作文 1 3  6

 同 302 同 1 3  6 英文202

  同 401 同 1 3  6 英文302

  同 203 英語發音法 半 3  3

 同 204 英文法 1 3  6

  

 同 303 英語學槪論 1 3  6 英文203

                    204

  同 402 英語學史 1 3  6 英文303

  同 205 英文學史

   (近世以後) 1 3  6

  同 304 英文學史

   (中世以前) 1 3  6 英文205

  同 501- 英語英文

  508 特殊講義 各半 各3  各3

 同 509- 英語英文學

  517 講演習 各半 各2  各2

  同 403 言語學槪論 1 3  6

  同 102 甲 外國語第一 1 3  6

       乙

  同 206 甲 同 1 3  6

       乙

  同 305 甲 外國語第二 1 3   6

       乙

  同 404 甲 同 1 3  6

       乙  

    61 106


앞서 말했듯이 이때부터 교과과정은 통합교과를 지양하고 학과 단위의 교과로 전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연희전문학교 시절의 고등학교 교과과정과 같은 틀을 완전히 탈피하여 대학 규모의 교과로 전환한 셈이다. 일례로, 일반 교양과목들은 따로 설정하고 그 대신 학교가 정한 60개 단위의 전공과목들 가운데 영어학개론, 영어학사, 영문학사, 영문학 강독과 같은 영문과의 기본과목들이 포함되기 시작하였다.

몇 년간 위의 학정표에 따라 동일한 교육을 실시하다가 6·25 전쟁을 겪고 환도한 이후 학교 체제가 정비되면서 교과과정도 개편되었다. 그 정비된 교과목에 입각한 수업이 시작된 것은 1955년경부터지만, 사실상 1953년 환도 직후인 10월부터 교과목의 개편에 착수하였다.

종전의 전공 선택과목 편중은 자연히 특수 전공강좌의 개설을 증가시켰는데, 이는 학생들의 일반적인 기초 소양의 부족과 지식의 편향성으로 이어져 학문적 발전과 성숙에 한계를 가져왔다. 많은 특수 전공강좌의 개설은 또한 다수의 시간강사 채용을 불가피하게 하였으며 이에 따라 당시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막대한 인건비 지출이 생기게 되었다. 인건비의 문제를 떠나, 외래강사는 당시의 상황에서 결강이 빈번했고 이로 인한 수업상의 지장은 물론 교수와 학생 간의 긴밀한 관계도 이루어지지 않아 학구적 분위기가 흐려지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전공 선택 과목이 각자의 학문적 향상과 충실을 위해서라기보다 학점 취득의 편의한 방편으로 오용되는 경향이 농후하였다.

1955년경의 교과목 개편은 이와 같은 여러 가지 폐단의 시정도 아울러 고려한 조치였다. 그리하여 “특수강의과목을 줄이고 기초과목을 증설한다”는 원칙(『연세대학교 백년사 1』, 469쪽 참조)하에 교과목의 개편작업이 진행되었으며, 1954년 11월 교육법시행령 개정안의 확정 통고로 졸업학점이 180학점에서 160학점으로 인하됨에 따라, 교과목의 개편뿐 아니라 교과과정 전면에 걸친 개편이 필요하게 되었다. 1955년 1월 학과목의 개편 내용이 공표되고 그 해 신학년부터 시행에 옮겨지게 되었다.

당시에 대한 회고로 교과목 일람표를 입수하려 했으나 현재 입수 가능한 것은 1958년도의 것이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기본 틀은 1955년의 것과 거의 동일한 것으로 사료된다.


 1958년 영문과 교과목


     학정번호         과목명          학점       학년      담당교수

 201 문학개론 1 3 2 이봉국

 202 문학개론 ll 3 2 :

 203 언어학개론 l 3 2 한교석

 204 언어학개론 ll 3 2 :

 205 현대비평강독 l 3 2 이봉국

 206 현대수필강독 ll 3 2 :

 207 고등영문법 3 2 고병려

 

 208 영어음성학 3 2 :

 301 영문학사 l 3 3 최재서

 302 영문학사 ll 3 3 :

 304 영어학개론 3 3 한교석

 305 19C영소설강독 3 3 권명수

 306 셰익스피어강독 3 3 오화섭

 307 영시개론 3 3 이혜구

 308 현대소설강독 3 3 권명수

 401 영국문예비평사 l 3 4 최재서

 402 영국문예비평사 ll 3 4 :

 403 17C영시강독 3 4 고병려

 405 영어발달사 3 4 전형국

 406 18세기영시강독 3 4 고병려

 407 현대희곡강독 3 4 오화섭

 408 희곡론 3 4 :

   66 65


이는 1958년 3월 15일과 8월 11일자 『연세춘추』에 실린 1958년도 제1학기 및 제2학기 시간표를 옮겨 실은 것이다. 이 일람표를 61년도 9월 4일자 『연세춘추』에 실려 있는 1961년도 일람표와 대조해 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문학 분야는 18세기 영시가 제외되고 그 대신 밀턴 과목과 20세기 영시가 첨가되었다. 밀턴 과목은 심인곤 교수가, 그리고 20세기 영시 과목은 문상득 교수가 담당하였다(문상득 교수는 후일 서울대학교로 옮겨 가르치다가 아주대학교에서 정년퇴직하였다). 또한 미국문학개설과 미문학강독 과목도 첨가되었는데 그 과목은 미국인 Solberg 교수가 가르쳤다. Solberg 교수는 영작문 과목도 가르쳤다. Rainer 교수 담당의 17세기 영시도 개설되었다. 그 외에도 1958년 교과목표에는 들어 있지 않은 과목들이 많이 첨가되었는데 대부분 영어학 계통이었다. 영어음운론은 이맹성 교수, 영어구조론은 이혜숙 교수, 영어교수방법론은 전형국 교수가 각각 가르쳤다. 영어학 과목의 증설은 이 분야를 전공한 교수와 강사들이 다수 채용됨으로써 가능해진 변화였다. 이런 변화의 추세는 1960년 최재서 교수가 학교를 떠나고 전형국 교수가 학과장(1961∼62)을 맡으면서 더욱 급격하게 나타났다. 한국 제1호 프랑스 국가 박사학위(Doctorat d’Etat) 취득자인 최석규 교수의 언어학개론이 눈에 띈다. 최석규 교수는 곧 라틴어 강좌도 담당하기 시작했다. 시사영어도 영문과 과목으로 개설되어 박봉남 교수가 가르쳤다. 이후 외국인 교수와 미국에서 영어학을 전공한 교수들이 대거 부임하면서 교과목이 많이 달라졌다.

1958년 이후 10년이 지난 1967∼69년도 영문학과 학정표에는 또 다른 의미에서 변화가 있었다. 예컨대 전공필수과목은 학년 당 한 개 내지 두 개 과목이고 나머지는 전부가 전공선택 과목으로 되어 있다. 선택과목을 많이 개설하다 보니까 자연히 학점수와 시간수가 줄어 기본 과목 이외의 과목은 거의 모두 2학점으로 제한되게 되었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어학과목은 계속 증설되어, 이 당시 2, 3, 4학년에 개설된 전체 과목 30개 중에서 11개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시론, 영어평론, 영소설론, 희곡론 같은 이론 과목이 증가된 점이 눈에 띈다. 이 시기의 라틴어 강좌는 고병려 교수가 담당하고 있었다.

그 이후 1970년부터 1977년까지는 교과과정에 큰 변화가 없었다. 과목명의 변경 내지 한두 개 과목의 첨가 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학정표는 거듭 정리되어, ‘입문’과 ‘개관’ 과정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비되기 시작했으며, 기초과목과 상급과목들이 분야별·세기별로 골고루 배치되었고, 또한 ‘실용영어’의 차원에서 영어말하기와 쓰기에 역점을 둔 과목들도 새로이 편성되었다. 그리하여 점차 영어영문학 입문이 전공 기초과목으로, 스피치와 라이팅 및 영문학개관이 전공 필수과목으로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영어영문학 전공의 기초와 보편성을 다져주겠다는 교육 이념이 들어 있다.

이처럼 영문과 교과과정은 설립초기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서 변화되고 수정·발전되어 왔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시대 변화와 사회의 인력요청 등에 따라 교과목은 변경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중에서도 교양과목과 일반전공과목보다는 ‘심화 전공과목’이 가장 많이 변화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사고와 능력을 요하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이중전공’이 강조되기에 이르렀고, 교양이나 보편적인 학문보다는 전문화된 기술영역이나 실용적인 학문들을 가르치는 교과로 전공과목들이 세분화되고 확산되었다. 그 결과 현재는 다음과 같은 교과목들이 편성되기에 이르렀다.




2006년도 영어영문학 전공 교과목


 학년 학기 과목종별 교과목명 학점 강의 단위구분

 1 1, 2 전공탐색 영어학입문 3 3 2000

   전공탐색 영문학입문 3 3 2000

 2 1 학부기초 채플(3) 0 1

   전공기초 영어글쓰기(1) 3 3 2000

   전공기초 영어학개론 3 3 2000

   전공기초 영국문학개관(1) 3 3 2000

   전공기초 영어어법연구 3 3 2000

   전공선택 서정시의 기본 3 3 3000

   전공선택 영문학과 신화 3 3 3000

   전공선택 스피치 3 3 2000

  2 학부기초 채플(4) 0 1

   전공기초 영어글쓰기(2) 3 3 2000

   전공기초 미국문학개관 3 3 2000

   전공기초 영국문학개관(2) 3 3 2000

   전공선택 영국문화 3 3 2000

 3 1 전공선택 영어음성학 3 3 3000

   전공선택 영어낱말분석 3 3 3000

   전공선택 영어화용론 3 3 3000

   전공선택 낭만주의문학 3 3 3000

   전공선택 현대영국소설 3 3 3000

  2 전공선택 19세기 영국소설(2) 3 3 3000

   전공선택 영문법사 3 3 3000

   전공선택 20세기 미국소설 3 3 3000

   전공선택 셰익스피어(1) 3 3 3000

   전공선택 서양고전강독 3 3 3000

   전공선택 중세영문학 3 3 3000

   전공선택 영미비평 3 3 3000

 4 1 전공선택 영어교육론 3 3 3000

   전공선택 응용언어학의 이해 3 3 3000

   전공선택 20세기 영미시 3 3 3000


   전공선택 18세기 영국소설 3 3 3000

   전공선택 19세기 미국소설 3 3 3000

   전공선택 셰익스피어(2) 3 3 3000

   전공선택 한국문학의 영어번역 3 3 4000

   전공선택 페미니즘 문학비평 3 3 4000

   전공선택 언어학과 문학 3 3 4000    전공선택 문체론 3 3 4000

   전공선택 낭만주의와 고딕문학 3 3 4000

  2 전공선택 영어문법론 3 3 3000

   전공선택 역사속의 언어연구 3 3 3000

   전공선택 현대영국희곡 3 3 3000

   전공선택 영국소설과 영화 3 3 3000

   전공선택 19세기 영국소설(1) 3 3 3000

   전공선택 최근영국소설 3 3 3000

   전공선택 영어연극 3 3 3000

   전공선택 현대희곡 3 3 3000

   전공선택 영국르네상스문학 3 3 3000

   전공선택 영어구조론 3 3 3000

   전공선택 영어담화분석 3 3 3000

   전공선택 17세기 영국시 3 3 3000

   전공선택 영미공상과학문학 3 3 4000

   전공선택 영어변천사 3 3 3000

   전공선택 19세기 미국시 3 3 3000

   전공선택 빅토리아조 영시 3 3 3000

   전공선택 세계희곡 3 3 3000

   전공선택 영국근대희곡 3 3 3000

   전공선택 중세유럽문학 3 3 3000

   전공선택 빅토리아 문학과 문화 3 3 3000

   전공선택 영어학특강 3 3 4000

   전공선택 현대비평이론 3 3 4000

   전공선택 근대성과 오리엔탈리즘 3 3 4000

   교직 영어교재연구및 지도법 3 3 3000

   전공선택 미국소설특강 3 3 4000

2장 대학원


1946년 연희대학교 설립이 문교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으나, 대학원은 그때부터 바로 개설되지 않고 4년 뒤인 1950년에 개설되었다. 보다 충실한 내용을 갖추기 전에 형식적인 기구부터 두는 일은 질적 향상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영문과에서는 1955년 최초로 한 명의 석사 학위자(배동호)가 배출되었지만, 교과과정에 대한 기록은 현재 입수되지 않은 상태이다. 다만 1958년도 3월초에 나온 『연세춘추』에 “빅토리아시대 문학연구”(최재서)와 “소설론연구”(최재서)가 1958년 제1학기 대학원 영문학과 석사과정 과목으로 개설된다는 발표를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1958년 이후 『연세춘추』를 면밀하게 살펴봐도 대학원 개설과목에 대한 발표는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건대, 아마 1966년까지는 매년 학기 초마다 각 학과 게시판에 그 학기의 개설과목을 게시해온 것이 아닌가 한다. 대학원 요람이 정식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67년부터의 일이라 사료된다. 따라서 현재 보관되어 있는 1967년도 이후의 대학원 요람들에 근거해 66년도까지의 교과과정을 추측해 볼 수밖에 없다.

1967년도 영문과 대학원 교과과정표는 몇 년 전 최재서 주임교수가 일본식 대학원 영문학과의 교과과정을 본떠서 만들었던 교과과정과 대동소이 할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다만 교수진의 교체가 있었으므로 교체된 교수들의 전공에 맞게 과목들이 조정되고, 교수들이 자신의 전공과 전문 지식에 맞는 자유로운 강의를 할 수 있도록 “특강” 내지 “연습”이라는 이름의 과목이 많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한다.

특기할 만한 것은 1967년도 교과과정표에 따르면 1학기와 2학기에 개설되는 총 25개 과목 중에서 영어학전공 과목이 11개 과목이라는 사실이다. 1967년 이전에는 문학이 강조되었지만 1967년 이후부터는 문학과 어학이 과목상으로 거의 비슷하게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놀라운 변화라 아니 할 수 없다. 최재서 교수가 주임교수로 있을 때는 영어학 과목은 단지 몇 과목에 불과하고 거의 모두 영문학 과목이었으며, 영어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없었다. 1967년도 교과과정에 영어학 과목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는 것은 위에도 언급했듯이 영어학 전공의 교수와 강사들이 다수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언어학 담당 전임으로서는 전형국, 최석규, 김선재 교수가 있었고, 강사로서는 이혜숙, 조성식, 허 웅 교수 등이 출강하였다. “언어학 특강”, “어법원론”, “영어구조론연구”, “형태론연구”, “음운론연구”, “비교어법론”, “어법사”, “고대영어”, “중세영어” 등이 대표적인 개설 과목이다.

그 후 1973년 미국 에모리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를 받고 돌아온 이상섭 교수는 대학원 교학과장으로 임명되어 각 학과와 긴밀한 유대를 취하면서 학제를 미국식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대학원 교과과정의 경우 종전의 2시간 2학점이던 과목들이 대부분 3시간 3학점으로 통일되었는데, 이는 통합적이고 ‘광역화된’ 교육의 효율성을 목표로 한 시도였다. 미국문학 강좌 등이 새로 개설되었는데 이것도 학문의 시대적 흐름에 맞춘 편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76년∼1977년 교과과정에는 “문학의 이론”, “초서시대의 문학”, “20세기 극작가 연구”, “신고전주의 시대의 영문학”, “시학이론”, “소설의 이론”, “언어학 연습” 등, 박사학위 과정의 학생을 위한 이론 과목들이 대거 첨가되었다. 이는 1974년 정규과정을 마친 박사 1호가 탄생하면서 박사과정 과목을 정비할 필요에 응한 조치였을 것이다.

교과과정의 기본 과목들이 I과 II로 세분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80년도에 이르러서부터다. 이때부터 학과내규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정리되고 또 세분되었다. 영어학 분야에서 박사학위자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84년부터라 할 수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신진 교수들이 문학과 어학 분야에 대거 채용되면서 영문과 대학원 교과과정은 또 한 번의 변화를 시도하게 되었다.

영문과 대학원의 변천과정에 관한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초창기에는 일본식 교육을 받은 대부분 교수들을 중심으로 해서 교육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교과과정의 틀 자체가 일본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1973년 이후부터 미국에서 서양식 교육을 받은 학자들이 들어오면서 교과과정은 세분된 과목들을 통합하여 재편하는 방향으로 점차 변경되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이런 교과과정에 따라서 영어영문학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교육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 젊은 박사학위자들이 대거 학과에 채용되면서 다시 과목 세분화의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는 가르치는 교수들의 학문적 취향과 전문성을 반영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현대영소설과 전쟁”, “아시아 미국문학”, “탈식민주의와 비평”, “영소설과 탈식민주의”, “미국 흑인작가 연구”,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소설” 등의 출현은 보편성보다는 특수 가치를 목표로 하는 교과편성을 예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대학원 영문과의 교과과정은 종래의 보편적 가치 위에 세워졌던 교과 편성과 특수 가치를 추구하는 전문적인 편성이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합리적인 편성이 아닌가 한다.



3장 학위수여 상황


1. 학사


영문과 첫 졸업생 중 한 분인 황규식(46입/50졸) 부산대학교 명예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최초의(즉 연희대학교 설립 당시인 1946년 9월) 입학생은 총 30명이었는데, 단 9명(강성일, 김영길, 김창선, 김태진, 이규섭, 이봉국, 장익하, 홍종락, 황규식)만이 졸업문빙(졸업장)을 받았다 한다. 이들이 곧 영문과 제1회 졸업생인데, 현재는 그 중 3명(강일성, 홍종락, 황규식)만이 생존한다. 이처럼 연희대학교 문학원 영문과로 시작하여 1950년 5월 10일 최초의 졸업생 9명을 배출한 이래, 본 학과는 2005년까지 4,537명(남 1,676명, 여 2,86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 통계는 순수하게 영어영문학 과정을 마친 3,562명(남자 1,524명, 여자 2,038명)과 문과대학과 인문학부 내지 유럽어문학부에 소속된 학생들로서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영어영문학 과목을 이수한 ‘2중 전공자’ 975명(남 152명, 여 823명)을 합친 숫자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후자의 경우를 ‘영어영문학과 졸업생’으로 정의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영어영문학 계통의 과목들을 이수하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인문학부 내지 유럽어문학부 소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사규정에 명시된 영어영문학 전공과목 이수 조건을 충족시킨 경우이므로 ‘영어영문학 전공’ 졸업생 통계에 포함시킨 것이다. 단, 영어영문학 과목을 ‘제2전공’으로 이수한 183명(남 34명, 여 149명)은 포함시키지 않았다(‘2중 전공자’니 ‘제2전공’이니 하는 용어들이 혼란스럽게 들리리라 생각되지만, 여기에 그 내력을 설명해 놓는다면 더욱 복잡하게 들릴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여학생 졸업생 수가 남학생보다 대략 두 배에 가깝다. 이는 1980년도를 전후로 하여 영문과에 여학생들이 급증하게 되었고 특히 학부제 이후 ‘영어영문학 전공’이라는 범주를 택하는 여학생의 수가 남학생보다 월등하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는 영문과에서 남학생 수가 여학생 수보다 많았으며, 세월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욱 그러했다. 다음 통계표가 이러한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2중 전공자’와 ‘제2 전공자’의 경우는 생략하기로 한다).


영문과 연도별 졸업생 통계표(1950∼2005)


 1950. 5 9  (남  9, 여  0)      

 1951. 8 2  (남  2, 여  0) 1951. 12 9  (남  8, 여 1)

 1952. 4 6  (남  5, 여  1) 1952. 10 6  (남  5, 여 1)

 1953. 3 8  (남  7, 여  1) 1953. 10 3  (남  1, 여 2)

 1954. 3 5  (남  5, 여  0) 1954. 9 1  (남  1, 여 0)

 1955. 3 11 (남  9, 여  2) 1955. 9 4  (남  1, 여 3)

 1956. 3 16 (남 11, 여  5) 1956. 9 10 (남  9, 여 1)

 1957. 3 29 (남 27, 여  2) 1957. 9 3  (남  3, 여 0)

 1958. 3 38 (남 29, 여  9) 1958. 9 2  (남  1, 여 1)

 1959. 3 26 (남 20, 여  6) 1959. 9 8  (남  8, 여 0)

 1960. 3 41 (남 25, 여 16) 1960. 9 14 (남 14, 여 0)

 1961. 2 33 (남 25, 여  8)      

 1962. 1 45 (남 32, 여 13) 1962. 8 15 (남 15, 여 0)

 1963. 2 46 (남 34, 여 12) 1963. 8 4  (남  3, 여 1)

 1964. 2 44 (남 29, 여 15) 1964. 9 6  (남  5, 여 1)

 1965. 2 51 (남 43, 여  8)      

 1966. 2 29 (남 28, 여  1) 1966. 9 2  (남 2, 여 0)

 1967. 2 28 (남 21, 여  7) 1967. 9 5  (남 4, 여 1)

 1968. 2 56 (남 36, 여 20) 1968. 9 6  (남 5, 여 1)

 1969. 2 38 (남 24, 여 14) 1969. 9 4  (남 4, 여 0)

 1970. 2 40 (남 29, 여 11) 1970. 9 6  (남 6, 여 0)

 1971. 2 55 (남 38, 여 17) 1971. 9 4  (남 4, 여 0)

 1972. 2 45 (남 36, 여  9) 1972. 9 7  (남 7, 여 0)

 1973. 2 36 (남 23, 여 13) 1973. 9 3  (남 2, 여 1)

 1974. 2 35 (남 16, 여 19) 1974. 9 4  (남 4, 여 0)

 1975. 2 34 (남 23, 여 11) 1975. 9 4  (남 4, 여 0)

 1976. 2 36 (남 22, 여 14) 1976. 8 5  (남 5, 여 0)

 

 1977. 2 38 (남 22, 여 16) 1977. 8 3  (남 2, 여 1)

 1978. 2 37 (남 16, 여 21) 1978. 8 4  (남 4, 여 0)

 1979. 2 27 (남 11, 여 16) 1979. 8  6  (남 4, 여 2)

 1980. 2 32 (남 13, 여 19) 1980. 10 4  (남 4, 여 0)

 1981. 2 35  (남 16, 여  19) 1981. 8 5  (남  4, 여  1)

 1982. 2 41  (남 20, 여  21) 1982. 8 9  (남  8, 여  1)

 1983. 2 60  (남 28, 여  32) 1983. 8 4  (남  3, 여  1)

 1984. 2 69  (남 26, 여  43) 1984. 8 10 (남 10, 여  0)

 1985. 2 107 (남 36, 여  71) 1985. 8 16 (남 13, 여  3)

 1986. 2 135 (남 41, 여  94) 1986. 8 5  (남  4, 여  1)

 1987. 2 159 (남 22, 여 137) 1987. 8  1  (남  1, 여  0)

 1988. 2 148 (남 38, 여 110) 1988. 8 5  (남  1, 여  4)

 1989. 2 126 (남 28, 여  98) 1989. 8 4  (남  3, 여  1)

 1990. 2 123 (남 19, 여 104) 1990. 8 11 (남  6, 여  5)

 1991. 2 139 (남 39, 여 100) 1991. 8 26 (남 11, 여 15)

 1992. 2 131 (남 30, 여 101) 1992. 8 21 (남  7, 여 14)

 1993. 2 113 (남 32, 여  81) 1993. 8  28 (남 13, 여 15)

 1994. 2 102 (남 27, 여  75) 1994. 8 22 (남  8, 여 14)

 1995. 2 99  (남 22, 여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