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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추억 - 검은 양의 변 (53 주장돈) (2008.04.17)
작성일
2023.01.02
작성자
영어영문학과
게시글 내용


검은 양의 변


53 주장돈




내가 연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한 지 어언 반세기가 지났다. 휴전이 되기 몇 달 전인 1953년 봄 부산의 제2송도 가교사에서 입학식을 가진 것이 엊그제 같다. 백낙준(白樂濬) 총장님의 말씀에 “대학생이면 철이 들 나이인데 이제부터는 남의 간섭을 받지 말고 ‘제법’으로 잘 하라”는 대목이 귀에 선하다.


목조건물 가교사에 칸막이를 몇 개 설치하여 교실로도 쓰고 칸막이를 옮겨서 강당으로 쓰기도 했는데 chapel은 거기서 하였다. 한 번은 김동길(金東吉) 선배께서 설교를 하셨는데 몇 마디 하시다가 갑자기 등 뒤에 있는 흑판에다 “Love not pleasure, love God. This is the ever lasting yea”라는 Thomas Carlyle의 글을 쓰셨다. 영웅숭배론을 좋아하는 김 선배는 Abraham Lincoln 전문가로도 많이 알려지셨지만 chapel 시간의 인상은 숭고한 금욕주의자의 화신 같았다.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주영광(朱榮光) 선배도 chapel에 한 번 오셔서 동남아 원정 경험담을 들려주셨는데 해군장교답게 멋있게 말씀하셨다.


부산에서 한 학기를 하고 9월에 신촌 캠퍼스로 올라오니 서울에서 입학한 김우옥(金雨玉, New York 대학교에서 drama 전공)과 표한용(表漢龍, Hawaii대, Columbia 대에 수학. Noam Chomsky의 권위)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김태성(金泰星, Yale대에서 수학), 최상규(崔翔圭, 3학년 때 “포인트”로 문단 데뷔), 장연호(張煉皞, 호남중고교의 교장 역임)를 위시한 25∼6명이 부산에서 입학을 했는데 2학년이 되자 최승규(崔承圭, Heidelberg대와 Pittsburgh 대에서 미술사 전공), 최익환(崔益煥, Indiana대와 Washington 대에서 비교문학 전공. Marcel Proust와 James Joyce 전문가로 송석중(宋錫重) 선배와 같이 민주화운동과 남북화해를 위해 맨발로 뛴 열혈 신사) 등이 편입을 하고 3학년이 되자 부산분교에서 신극범(愼克範, Michigan State대 출신, 전두환 대통령 당시 청와대 교육담당 수석 비서관, 교원대, 광주대, 대전대 총장 역임), 유상남(柳尙南), 김영신(金永侁), 김한수(金漢水) 등이 올라왔다. 2년 동안 우리는 국문과, 사학과 친구들과 고등학교식으로 모든 과목을 들었는데 물론 제2외국어는 독어(Mr. Wallenberg)와 불어(최석규(崔碩圭)선배)로 갈라졌지만.


김윤경(金允經) 선생님의 국어문법(학점에 59.5로 낙제를 주시는 분), 장지영(張志暎) 선생님의 한문, 이봉국(李鳳國) 선배의 영강, 최석규 선배의 고등영문법에다 이광린(李光璘) 선배와 민석홍(閔錫泓) 선생님의 문화사를 공부하던 것이 생각난다. 이봉국 선배는 Charles Lamb의 Tales from Shakespeare, Tennessee Williams의 The Roman Spring of Mr. Stone을 교재로 쓰셨는데 Stone 부인이 바람을 피우는 장면이 X-rated 내용이어서 몇 페이지 건너 뛴 생각이 난다. 나중에는 Robert Louis Stevenson의 Ordered South도 읽었다. 최석규 선배는 Copenhagen 대학 교수인 Otto Jespersen의 Essentials of English Grammar를 교재로 쓰셨는데 중고교에서 팔품사만을 배워 온 우리에게 정말 eye opening하는 참신한 내용이었다. 몇 십 년 후에 Paris의 최 선배 댁에서 옛날 얘기를 한참 하였다. 정석해(鄭錫海) 학장님은 철학개론을 가르치셨는데 Heidelberg 학파의 태두 Wilhelm Windelbandt의 책으로 불어, 독어, 영어, 한국어를 마구 구사하시면서 강의를 하시던 그분은 당신의 생애가 보여주듯이 열정의 덩어리셨다. 이광린 선배는 요조숙녀(窈窕淑女)는 군자호구(君子好逑)라는 말을 가르쳐 주셨고 민석홍 선생님은 Max Weber의 “Protestant 정신과 자본주의 발흥”이라는 내용으로 한 학기를 채우셨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학생한테 성냥을 빌리시던 기억이 난다.


3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최재서(崔載瑞), 오화섭(吳華燮), 전형국(全炯國), 이혜구(李惠求), 권명수(權明秀) 선생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최재서 교수의 영문학사와 영국문예 비평사는 가히 명강의였는데 다른 사람들이 쓴 영문학사는 절대로 안 되고 Louis Cazamian이나 Emile Legouis의 것만을 참고로 하라던 그분의 학문적 고집이 이색적이었다. 이혜구 선생님은 Julius Caesar와 Milton의 시, Metaphysical poets 중에서 John Donne의 작품을 읽도록 하셨다. 오화섭 선생님은 Othello, Hamlet, George Bernard Show의 Man and Superman과 희곡론을 강의하셨다. 지극한 romantist이셨던 그분을 나는 무척 흠모했다. 4학년 때 연희대와 이화여대가 Handel의 Messiah의 발췌곡을 연주했을 때 오 선생님이 first clarinet를 하시고 나는 second clarinet를 불었다. 그분은 해방 직후 고려교향악단의 창단 멤버로 clarinet의 대가셨다.


나는 영문과 학생으로는 일종의 black sheep이었는데 공부보다는 합창 운동하러 다니느라 정열을 쏟았다. 박태준(朴泰俊), 곽상수(郭商洙) 두 분을 비롯하여 어떤 때는 한 주일에 4명의 음악가로부터 합창의 묘미를 배웠다. 종교음악과가 생기기 전 신과대학에 가서 화성학을 두 학기 들었는데 박태준 선생님이 Walter Piston (Harvard 교수)의 『화성악』을 교재로 쓰셨다. 김하태(金夏泰) 선생님의 현대 신학, 철학적 신학(Paul Tillich의 Protestant Era를 사용)을 공부하고 지동식(池東植) 목사님의 신약사도 들었다. 3학년 때 문과대학에서 고병려(高秉呂) 선생님의 초보 희랍어 강의가 있다고 해서 수강신청을 했더니 학생이 6명 미달이어서 취소가 되었다. 할 수 없이 도서관에서 New Testament Greek for Beginners를 대출해서 혼자서 배웠다. 의외로 까다롭지 않았다. 70년대 초에 미국에서 신학교에 다닐 때 많이 도움이 되었다. 역시 3학년 때 일인데 안종호(安鐘昊, 영문 52) 선배가 오페라 Carmen의 합창할 사람을 뽑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한 달을 꼬박 연습을 하고 공연 때는 학교를 거의 일주일이나 빠졌다. 대학 시절에 음악을 한답시고 동분서주하던 보람이 있어 미국에서는 작은 도시에서 합창단 지휘자, Maine 주립대학 음악회의 독창자 등을 해서 음악으로 인한 부수입이 수천 불이나 되었다.


졸업 후 나는 육군 사병을 거쳐 중고교의 영어, 음악(자격증이 없는)교사를 몇 년 하고 모교의 한국어학당에 봉직하다가 내 나이 40이 다 되어서 미국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 미국인 교회에서 20여 년 목회를 하였다. My Antonia로 유명한 Willa Cather를 배출한 Nebraska에서 목회를 시작하여 6년을 지내고 딸아이 교육 때문에 New England로 옮겨 Maine에서 9년간 교회 일을 보았다. Maine은 Henry Wordsworth Longfellow가 창작을 많이 한 곳이고, Edna St. Vincent Millay의 고향이기도 하다. 50년대말 동창 최익환 군이 10여 년 연하의 여고생과 사귈 때 Millay의 시를 무척 좋아했었다. Massachusetts로 내려와서 작은 마을에서 2년 있다가 Boston 근교로 발령을 받아 Harvard의 동양학 세미나에 가끔 나가 panel discussion에서 바른 소리를 좀 하곤 하였다. 결국 Massachusetts에서 은퇴를 했다. United Methodist Church 소속인데 신학적으로는 left에 속한다. 신학교 시절 liberation theology가 휩쓸 때여서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1988년의 대통령 후보 예비선거에서는 아프리카계 목사 Jesse Jackson 측의 대의원으로 민주당 Maine주 당 대회에 참석했다가 내친 김에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에 가입하여 신학적 이론을 실생활에 반영시키려고 내 나름대로 그쪽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내가 동양인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미국 농촌에서 배척을 당하지 않고 설교 못 알아듣겠다는 불평 없이 목회를 마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나를 가르쳐주신 영문과 선생님과 선배, 동기 여러분께 지상을 통해서나마 사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