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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어느 싸움 이야기 (67 황명희) (2008.06.08)
작성일
2023.01.02
작성자
영어영문학과
게시글 내용


어느 싸움 이야기―홍콩에서


67 황명희




“영어로 싸워서 이겼다.”


사실은 항의를 하러 가서 조목조목 따진 것뿐이었고 상대방의 인정을 받아낸 것뿐이었는데, 이렇게 과장스럽게 허풍을 떨고 있다. 허풍은 콤플렉스 환자들의 한 증세이고, 증세란 노출시키지 않고 감추면 병을 더욱 깊게 하는 법이니까.


주재원으로 일하는 남편을 따라 홍콩에서 생활하던 중, international school 10 학년에 재학 중이던 둘째 딸로 인한 일이었다. 생물시간에 흰 쥐를 이용해 실험을 해오고 있던 실험실에서 학생들이 꽤나 질서 없이 행동한 모양이고, 그로 인해 선생님이 화가 단단히 나신 것까지가 이해되는 부분이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영 이상했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실험할 자격이 없으니 쥐를 다 죽이라고, 그것도 바닥에 패대기를 쳐서 죽이라고 (‘패대기’라는 말을 그분이 영어로 어떻게 말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아이는 좌우간 ‘패대기’란 표현으로 번역하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지시하고는 실험실을 박차고 나가셨단다. 아이들은 차마 그런 식으로 쥐를 죽일 수 없어 와글거리다가, 누군가의 제안으로 쥐를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방법으로 결정을 보았고. 쥐가 죽은 후에 돌아오신 선생님은 이번에는 누가 그렇게 쥐를 잔인하게 죽이라 했느냐고 더욱 더 화를 내셨단다. 한 순간에 죽는 고통이 짧은 죽음이어야지, 물에 빠져서 오랜 시간을 끌면서 죽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잔인한 행위라고 강조하면서. 선생님은 누가 그런 제안을 했느냐고 추궁을 하셨고, 아이들이 대답을 안 하자 유독 우리 아이를 따로 데리고 누가 그랬느냐고 집요하게 물으셨다는데, 아이가 ‘모른다’고 하자 ‘모른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로 이번엔 ‘부정직’의 ‘부도덕’함까지 나무라시며, 그러므로 “I will flunk you. You will fail.”이라는 최종선언으로 사제간의 험악한 대화는 끝났단다.


아이는 거의 통곡 속에서 집에 들어서고 있었고, 가방 집어 던지기보다 더 빨리 온 친구들의 위로와 격려(?)의 전화의 홍수 속에 빠져들었다. 아이가 선생님과 trouble을 일으켰을 때의 한국 엄마들의 전형적인 ‘네가 그래도 뭔가 잘못했겠지, 선생님께 사과 드려라’라는 논조는 오래 지탱되지 못했다. 엄마가 사과하라 한다는 딸의 말에 ‘너희 엄마 이상하다’는 전화 저 쪽 끝의 외국 아이들의 반응이 들리기도 했지만, 내 마음 속에서도 몇 가지가 명확하게 비틀려서 올라 왔다. 선생님의 처사가 전체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이를 낙제 시키겠다고 선생님이 분명한 엄포를 놓은 건데, 혹시라도 정말 낙제를 한 후 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보다는 지금 나서야 하는 것 아닐까 싶었고 그보다 더욱 더, 흥분하는 아이를 진정시키느라 침착한 체 하면서도 나 역시 어금니가 깨물어지는 것은, “왜 하필이면 우리 아이를 데리고…?” 가장 만만했을 거다. 학급 구성원의 국적 분포를 볼 때, 그 중 가장 쉬운 상대를 고르라면, 추리고 추려 한 명뿐인 한국 여자 아이가 남게 된다. 참고로, 이름이 Mr. Chan인 그 선생님은 Chinese였다. 그가 어느 PTA 모임에서 “자기 성격에 문제가 있으니 기도해 달라.”고 했다는 말을 어느 엄마에게서 전해 듣고 의아스러우면서도, 사실이라면 솔직하고 진실한 분이 아니겠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했던 터였다.


학교 office에 전화를 걸어 Mr. Chan과의 약속을 잡아 달라 했고, 별 시간적 여유 없이 바로 학교를 향하게 되었다. 이렇게 설명하면 내가 아주 노련하고 여유 있는 사람 같지만, 이 와중의 내 마음 속은 오만 가지 걱정들로 태풍 속이었다. 선생님과의 사이가 더 악화되어 아이에게 불편한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전형적 한국식 걱정도 컸지만, 따지러 간 사람이 혹시라도 그 선생님의 말이 빨라서 알아듣기 어려우면 어쩌나, 무엇보다도 영어가 제대로 풀려나오지 않아 그야말로 버걱대다가, 한국 엄마 그럴 줄 알았다 소리나 듣고 오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이 가장 큰 것이었다. 전화를 내일쯤 하고, 미리 원고라도 써보고 연습 좀 하고 나올 걸 그랬다 싶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 영어능력은 그날의 형편에 따라 왔다 갔다 한다는 표현이 정확한 얘기다.


그런데 이겼다.


쥐가 물 속에서 오래 시간을 끌고 죽는 일이 얼마나 잔인한 일이냐고 과장스레 설명하는 선생님에게, 아이들에게 사전에 설명을 하시지 그랬느냐, 어쨌든 조용히 죽어가니까 바닥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덜 잔인한 것으로, 어른인 우리들에게도 confusing한 일인데, 실험을 지도해온 선생님으로서 쥐가 왜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설명하시고, 쥐를 죽이는 장면에도 함께 계셨어야 하는 것 아니었겠느냐했고. 누가 그랬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 아이가 “I can’t tell you” 대신에 “I don’t know”라고 답한 것은 분명한 거짓말이고, 거짓말은 도덕적인 문제로 자기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하는 선생님에게, “I am proud of my daughter there. Please count it as a language problem. We Korean parents teach our children never to betray their friends in any situation, under any pressure. ‘I don’t know’ is what we say when we cannot give an answer. My daughter So-Young was just giving you the literal translation of her own language. Please understand that So-young acted just as she had been taught, and I am very proud of So-young”으로 그의 point는 끝났고, 아이에게 낙제를 시키겠다고 하셨다는데 내가 보기엔 아이에게 협박을 하신 행위로 생각되어 유감스럽다는 말도 내입에서 용케도 잘 풀려나오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소영이가 이제까지 선생님을 참 따랐으니 다시 좋은 관계로 회복되기를 바란다며 정치적(?)인 악수까지 하고 office를 나섰다.


후에 소영이가 받아온 성적표는 물론 제대로 된 성적이었고, 옆 란에 담당교사의 comment를 적는 곳에는 자기가 만난 best student라는 아무래도 flattering하게 느껴지는 문구까지 있어 우스웠다.


요만한 일을 가지고 이겼느니 어쩌니 호들갑떨며 지금까지 외워대고 있는 건 내가 대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도 오늘까지 별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도 남은 게 없으니 그거나 남기자고, 영어교사직을 퇴직할 때, 예쁜 그릇을 퇴직 선물로 사주겠다는 동료교사들에게 그러지 말고 기념패 하나 해 달라 했더니 별 사람 다 봤다고 깔깔들거리며 아주 과장된 내용으로 작성해 준 문구의 기념패를 남모르는 구석에 간직하고 있다.


‘영문 모르는 영문과 나와서 외계인같이 지껄이고 있는 ET(English Teacher)들’이라고 자조하는 영어 선생들 속에서 웬만한 한 평생을 보내면서도, 그러나 마음속에 항상 서 있는 축이 하나 있었다. 연세대 영문과를 다니며 학교가 준 하나의 중대한 책임감―내가 학교 다닐 때는 교수님들도 영어 하나도 못하셨다는 말은, 그 분들의 어려웠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제 그만 접어두고, 사설학원에 가서 영문과 안 나온 척하고 끼어 있기도 하고, 영어 선생이라는 건 절대 비밀로 하고 외국인을 불러서 회화 연습을 하기도 하고, 전화로 일대일 영어회화 연습에 적잖은 돈을 투자하기도 하고, 영자 신문 사설을 베껴 써보기도 하고, 그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옆 집 아줌마보다는 영어를 잘해야 하고, 지리 선생님보다 영어를 못하면 안 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대 영문과를 나온 사람이 영어를 못해서 싸움에 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그 자랑스러운 책임감이―그것이었다. That’s what I owe to Yonsei, and I cannot appreciate it en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