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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우리에게도 꿈이 있었다 (79 강현숙) (2008.07.22)
작성일
2023.01.02
작성자
영어영문학과
게시글 내용


우리에게도 꿈이 있었다


79 강현숙


꿈을 꾸었던 시기


중학교 3학년 때가 아니었나 싶다. 연대 교정에 처음 들어섰던 때가. 중학교 담임선생님이 대학 내 채플에서 결혼하셨기에 친구들과 무작정 이곳으로 왔었다. 어린 눈에 비친, 너무 크고 아름다웠던 대학, 너무 넓어서 채플을 어떻게 찾나 나를 막막하게 만들었던 대학, 너무나 멋지게 보였던 오빠, 언니들. 그 따뜻했던 봄날의 눈부셨던 연대 교정. 그때 나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지켜내기가 그다지 쉽지는 않았지만, 백양로와 그 따뜻하던 봄날의 기억은 나를 연대로 이끌고 말았다.




꿈을 키우던 그때


그곳에서 만난, 말과 마음이 통하던 친구들. 눈부신 백양로에 서서, 백양로 노래를 듣던, 그리고 저 멀리서 나를 부르던 친구들. 자랑스럽게 다닌 학교였고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었던 학교였다. 막연히 먼 날에 대한 꿈을 꾸었고 세상에 대해 아파하던 친구들을 보며 또 그렇게 마음이 아파오기도 했었다.


학교 다니며 범생이를 벗어나지 못했던 나는 언제나 멋진 사회인이 되고 싶었다. 나의 두려움 중 하나는 정말 범생이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는 거였다(가르쳐 주신 선생님들, 그리고 교직에 있는 친구 여러분 죄송합니다). 그 길만은 피하고 싶었다. 대학 들어오기 전까지의 범생이 시절로 충분하다 싶었고, 앞으로의 인생은 뭔가 흥미로운 일들이 가득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무얼 어떻게 해야, 막연한 나의 꿈을 실현하는 것인 줄 그때는 알지 못했다.


호텔홍보부에 취직하려는 나에게 호텔이 뭐냐고 구박하던 집안의 반대로, 차라리 잠시 가보고 싶은 미국이나 갔다가, 그리고는 돌아와 멋진 곳에 취직을 하겠다는 나의 꿈은 그러나 유학시절 또 너무 멋진 지도교수를 만나 바뀌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은 주저앉아 아직도 범생이의 길을 가고 있기는 하다. 즐겁게 직장 생활하는 친구들을 보면, 따스한 봄 그들은 이렇게 나처럼 조용히, 또 조금은 따분하게 사무실에서 머리를 싸매고 인상지으며 논문을 쓰지는 않을 것 같아 부럽기 짝이 없다.




꿈 많던 시절은 지나고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은 듯하지만 친구들도 많이 변했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친구, 아직도 교통사고에 힘들어하는 친구, 크고 작은 일들로 가득 찬 날들을 살아오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절감하게 된 것이 우리의 가장 큰 깨달음이자 상처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세월에, 세상에 겸손해지는 나를 본다. 그러면서 나의, 우리의 봄은 가고 있는 거겠지 하면서 슬프기도 하고. 그러나 아직은, 아니 가능하면 언제까지라도 앞을 내다보며 봄을 꿈꾸며 살고 싶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가면 과거가 그립다고 하던가? 봄이 되어 꽃이 피어날 때면 어디를 놀러갈까 고민할 때마다, 연세 캠퍼스보다 더 예쁜 곳이 있나 싶었고, 백양로와 청송대 길을 20년 후 어느 날 그때의 친구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걷게 되었을 때, 그 예전에 그곳을 걷던 기억과 그때의 친구들이 동시에 나와 함께 걷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어서 놀랐을 때도 있었다. 그곳엔 그렇게 옛날의 기억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의 꿈은 이제 우리 후배의 몫으로


이글을 쓰면서, 우리가 느꼈던 그 찬란했던 봄을 우리의 후배들이 얼마나 느끼고 있는 건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얼마나 찬란한 봄을 가슴에 담고 사는지 궁금해진다. 기회가 날 때마다 우리 학교 졸업생들에게 하는 말, 꿈을 잃으면 그땐 모든 걸 잃는다, 바로 이 말을 나의 후배에게도 해주고 싶다. 너무 막막하다거나, 앞이 보이지 않아도 정말 인생에서 기회는 두서너 번 나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앞에서 인생을 살았던 선배들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믿으며 기다리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리고 또 중요한 사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될 그 시간이 오기까지 자신에게 무한히 투자하며 발전시키고 있으라고. 우리 연대 영문과의 앞날은 오로지 우리 후배에게 달려있다는 걸 깊게 마음에 새겨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여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우리 연세대를, 우리의 영문과를, 더욱 사랑받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주기만을.


몇 년 후면 우리 기의 재상봉행사다. 그때 다시 보게 될 연세 캠퍼스 내의 우리의 과거, 그 과거를 현재로 살고 있을 우리의 후배들. 그대들에게 행운이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