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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60년"

제목
A Swinger of Birches (90 이지민) (2009.02.07)
작성일
2023.03.06
작성자
영문과수업관리조교
게시글 내용


A Swinger of Birches


90 이지민




프롤로그


2004년 말이었나 보다. 2005년을 준비하기 위해 Diary Shopping에 나섰다. 온라인 검색 엔진으로 어떤 Diary가 좋을까 열심히 찾던 중 마크 트웨인을 컨셉으로 한 반즈앤노블의 데스크 다이어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온라인 쇼핑이라 속지까진 볼 수 없었지만 망설임 없이 주문을 했고 주문한 지 2개월 만에 받을 수 있었다.


다이어리를 펼치자 Huck Finn의 삽화가 나를 반기는 듯했다. 회사 동료들한테 설명을 곁들여 자랑을 하였지만 그들은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 회의 스케줄과 할 일들을 빼곡히 채워가는 동안 간간이 펼쳐지는 삽화와 인용 글들은 남들은 모르는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잊고 있었던 친구와 함께? 2005년을 보낼 수 있었다.




강의 시간에 논했었던 인간과 삶, 이제 현실에서 그 의미를 더 깊게 알아가고 있다. 회사 생활도 벌써 10년이 넘어간다. 그동안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간에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과 그로 인한 얽히고설키는 사건들. 그때마다 셰익스피어 강의 때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곤 한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가라고 일컬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셰익스피어 작품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절대 선인도 절대 악인도 없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 같다. 선인일 때도 있고 악인일 때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비판하고 손가락질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때로 입장의 차이로 인한 일들은 그나마 선과 악을 구별하기도 힘들다. 알고 보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므로. 대학에서 어떤 한 작품을 놓고 논할 때는 참 편했던 것 같다. 소신껏 내 의견을 피력하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였고 나는 적어도 그 작품 속의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속한 삶이 소설 같고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 속의 한 등장인물인 듯 느껴질 때도 있다. 옛날에 내가 세상을 너무 얕보고 대충 글로만 읽은 것만으로 비판을 가해서 억울하게 된 등장인물들이 없을까 생각하면 좀 걱정이 된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주인공 윌리나 <위대한 개츠비>에서의 데이지가 바로 그런 걱정이 들게 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록이 남아있을 리 없다. 참 다행이다.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두고두고 생각나는 작품들이 있다. 영문학이라는 전공과 크게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어떤 의미 있는 일들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생각나는 작품이 있고 인물이 있다는 것은 영문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정신적 향유가 아닌가 한다.


영문학과가 맺어준 선배님과 친구들 그리고 후배들이 있어 행복하다. 몇 년 전에 영문과 노래패 YELL의 모임에 갔었다. 평일 저녁 모임이었는데 한 밤 11시쯤에 헤어졌다. 솔직히 그때 당시 나의 회사 생활에 비하면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었다. 내가 집까지 가는 길 중간쯤에 집이 있었던 선배 오빠가 택시를 함께 탔다. 선배 오빠는 당연히 후배를 먼저 내려주어야만 한다며 기필코 우리 집까지 가서 나를 내려주고 되짚어 갔던 일이 있었다. 그때 택시를 내리면서 학교 다닐 때가 문득 생각났었다. 그래 맞아 이랬었지 내가 후배일 때가 있었었지 하는 생각으로 무척 훈훈했었다. 그 정겨움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나도 후배들에게 이런 선배이고 싶다.


회사에서는 공식적으로 동문회를 하지 말라고 하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출신학교를 물어보진 않지만 공공연히 모임을 갖기도 한다. 특히 뭉치는 면에서 보면 어딜 가도 고대는 고대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 층별 담당자를 두고 그 사람이 그 층에 있는 고대 출신들의 모임 참석 독려나 회비 거두는 것을 책임진다. 그래서 모든 고대 졸업생들은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도 회비는 꼭 내야만 한다. 액수를 여기서 밝히진 않겠지만 정말 만만치 않다. 연대 동문회도 하기는 한다. 연말에 송년회 겸해서 하는데 이메일로 초청이 온다.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비밀 조직 같이 움직인다. 다는 모르지만 내가 아는 범위에서 우리 회사에 영문과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 영문 90, 92, 94, 96. 회사에서 다시 만나 학교 다닐 때보다 더 친해진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다 회사에서 새롭게 알게 되는 후배들이다. 이 중 몇 후배들과 작년에는 연세의 가을도 볼 겸 오랜만에 학교를 찾았다. 저녁엔 노천극장에서 하는 공연도 보았다. 새로운 노천극장, 오랜만에 걸어보는 백양로 그리고 그 주위로 적지 않은 변화들. 그 변화의 모습이 참 좋았다. 새롭게 거듭나려는 모교의 모습에 힘을 얻는다.


최근에 교수님으로부터 글 요청을 받았다. 그 날도 하루 중 딱 30분만 빼고 회의가 연달아 있었는데 그 30분 동안에 전화가 온 것이다. 그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10여 년 만에 걸려온 교수님 전화. 전화의 내용도 별로 글재주도 없는 나에게 뜻밖의 요청이었다. 이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나 내가 더 망설임 없이 교수님 요청을 따랐던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글 제출 기한에 대해 교수님께서는 그냥 3월말까지 글을 보내주면 된다고 하시는 것이다. 회사에서 늘 시간에 쫓기고 업무 기한에 열중하다 보니 그냥 ‘3월말’이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회사에선 몇 월 며칠, 심지어는 몇 시까지로 정하기도 하고, 발송한 이메일에 찍힌 시간을 증거로 더러 논쟁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 ‘3월말’의 범위는 회사원 입장에서 너무 넓고 모호했다. 교수님께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순간 느껴지는 그 포용의 범위라고 할까, 마음의 넉넉함이라고 할까, 생활의 여유라고 할까 아무튼 그런 느낌에 혼자 빙그레 웃으며 나도 한 순간 그 먼 나라의 세계에 머무를 수 있었다.


어떤 순간에도 기다림을 가지고 희망을 기억한다. 나에게만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가끔 일어난다. 그것도 순간으로 끝나는 일이라면 어떻게 넘기겠는데 이런 일일수록 파장이 길어 몇 년을 견뎌야 한다. 더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은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인내해 내고 나면 정말 이전의 행복한 시절이 다시 오는 걸까. <고도를 기다리며>를 생각했다. 끝없는 기다림 속에 결국 피폐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생각의 끝이 결국 닿는 곳은 희망이었고 나는 그 마음을 오랫동안 사랑하고 기억하는 시 Robert Frost의 Birches의 한 부분으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So was I once myself a swinger of birches.


And so I dream of going back to be.


It’s when I’m weary of considerations,


And life is too much like a pathless wood


Where your face burns and tickles with the cobwebs


Broken across it, and one eye is weeping


From a twig’s having lashed across it open.


I’d like to get away from earth awhile


And then come back to it and begin over.


May no fate willfully misunderstand me


And half grant what I wish and snatch me away


Not to return. Earth’s the right place for love:


I don’t know where it’s likely to go be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