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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인병의 태아유래 가설: 후성유전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6-07-07 


지난번 네덜란드 기근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비만, 당뇨, 심장병, 정신질환 등이 태아 발달과정에서의 영양결핍 때문일 수도 있다는 성인병 태아유래(fetal origins of adult disease, FOAD) 가설을 소개했습니다. 태아 발달과정에서 절약비축형으로의 생리적 적응이 주변상황이 좋아진 후에도 정상으로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고착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생리적응이 수천 수만 년 정도로 지속되면 유전자 풀의 변화가 생겨 진화로 반영되지만, 그 적응의 효과가 한 개체가 살아있는 동안에 나타나는 정도라면 유전자 정보의 변화가 아닌 쓰임새의 변화에 따른 것입니다. 즉, 동세대에서 되돌리기 어려운 생리적 적응에는 후성유전(epigenetics)이 관여할 것임이 분명합니다.


또한 엄마의 자궁 환경은 태아유전체만이 아니라 태아의 차세대 유전체 쓰임새도 결정할 수 있습니다. 태아는 바깥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정자나 난자로 분화될 생식세포를 미리 만들기에 엄마가 임신 중에 경험하는 바깥세상 정보를 손자의 유전체에 써놓을 수 있다는 이야기죠. 이를 ‘후성유전효과의 세대간 영향(intergenerational epigenetic effect)’이라 하며, 지난 5, 6번 글에서 소개한적이 있는 생식세포 정자를 통하여 아빠의 삶의 흔적이 다음세대로 전달되는 ‘후성유전표지의 세대간 전달(transgenerational epigenetic inheritance)’과는 구별됩니다. 많은 동물실험을 통하여 엄마가 임신 중에 처했던 환경, 예를 들면 영양결핍 혹은 과잉, 병원균 감염, 환경독소에의 노출, 심리적 스트레스 등이 자식은 물론 손자세대의 유전체에 후성유전표지를 남길 수 있다는 증거는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대상으로는 한정적인 증거만이 있을 뿐입니다.


네덜란드 기근을 기점으로 60년 후에 그 대상자를 조사한 2008년 발표된 역학연구 결과에 의하면, 임신초기 3개월 이내에 엄마 뱃속에서 기근을 경험하고 태어난 자식들은 임신후기에 혹은 기근을 경험하지 않고 태어난 자식들과 비교하여 인슐린유사성장인자2(insulin-like growth factor 2, IGF2) 유전자의 프로모터 부근에 DNA 메틸화가 줄어있다고 합니다.* 기근을 태아 초기적부터 경험한 사람은 IGF2 유전자의 쓰임새가 늘어나 그 양이 증가되어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러한 결과는 임신초기가 후성유전적 변화에 특히 민감한 시기이며, 그러한 변화는 거의 영구적으로 그들이 60이 되어서도 유지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성인병 태아유래가설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결과입니다(proof of principle study). 중요한 부분은 태아초기 때부터 IGF2 유전자의 쓰임새가 증가된 것이 태아의 에너지대사 생리가 절약비축 모드로 바뀌고, 더 나아가 비만을 비롯 여러 합병증에 취약해지게 된 것을 설명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난 글의 내용을 상기해 봅니다. 『임신 중에 엄마는 태아와 포도당을 가지고 다툼을 벌입니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뱃속에 있는 태아가 전부는 아닙니다.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다음 임신도 고려하면 현재의 태아에만 올인할 수는 없습니다. 반면, 태아는 자신이 전부이며, 엄마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엄마와 태아 사이의 에너지 획득에 대한 갈등의 이면에는 엄마와 아빠가 태아를 놓고 벌이는 경쟁이 있습니다. 엄마든 아빠든 자신의 유전자를 태아에게 반반씩 주며 각각의 유전적 투자에 대한 성과를 기대합니다. 아빠는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잘 성장하여 건강한 아기로 태어나게 되면 그 투자의 성과를 챙긴 것입니다. 아빠의 성공적인 투자를 담보하는 유전자가 바로 성장인자 IGF2입니다. 그러나 엄마의 경우는 다음 임신도 고려하기 때문에 입장이 다릅니다. 엄마에게는 현재의 뱃속 아기나 미래의 아기나 모두 자신의 유전자의 반을 준 것이기에 현재의 태아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태아가 IGF2 활성으로 성장욕심을 낼 경우 이를 제어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유전체 각인(genomic imprinting)이라고 알려진 독특한 후성유전적 유전자쓰임새 과정을 소개하면서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궁핍한 환경에서 태아는 IGF2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만들어 성장을 도모합니다. 생리적으로는 에너지원을 엄마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끌어 당겨 자신을 채웁니다. 나중에 정상적으로 영양이 공급된다 하더라도 IGF2 유전자에 새겨진 성장 제일주의 전략이 계속 작동하기에 비만이 되기 십상입니다. 태아시절 영양결핍에의 생리적 적응의 밑바닥에는 여러 관련 유전자의 후성유전적 적응이 있습니다. IGF2는 한 예입니다. 최근 태아 초기에 네덜란드 기근을 경험한 24인과 그렇지 않은 24인의 유전체 전체에서 메틸화 차이를 보이는 영역을 찾아내었고, 분석결과 그 영역 중 일부는 한 개체의 성장과 에너지 대사(체중과 혈중 콜레스테롤 대사)에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새로 밝혀진 후성표지변화와 태아 때 기근 경험으로 앓게 되는 성인질환과 구체적인 연관성은 추후 밝혀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성인병 태아유래가설(FOAD)은 한 개인의 건강에까지 그 범위를 넓혀 ‘건강과 질환의 배아발생기원 가설(developmenal origins of health and diseases, DOHaD)’로 발전되었고, 후성유전학 연구의 핵심 주제로 떠오릅니다. 발표되는 연구 결과들은 일반인의 관심을 끌기 충분합니다. ‘엄마의 식습관이나 스트레스가 아기의 유전자 쓰임새를 바꾼다’ ‘할머니의 생활 경험이 나의 유전자에 흔적으로 남아있다’ 등등. 여기서 우려되는 부분은 임신 엄마에게 태어날 아기에의 건강에 대한 부담과 책임이 주어진다는 점입니다. 아빠의 식습관 스트레스 역시 정자 유전체에 표지를 남겨 비만, 심장질환, 조현증 발병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태아 때의 후성유전적 변화가 중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태어난 이후 유아기 사춘기에 고칼로리 저영양 즉석 식품에의 노출은 사회적으로 방관하면서 유독 임신 중 엄마의 식습관에 아기의 건강에 책임을 지우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시점에서 모자보건에 대한 적극적인 사회적 제도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후손을 위해서 내가 먹는 음식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잡곡밥에 김치, 계절 채소와 나물, 두부나 생선 또는 육류도 좀 곁들인 한국인의 밥상,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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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ijmans, B. T. et al. Persistent epigenetic differences associated with prenatal exposure to famine in humans. Proc. Natl Acad. Sci. USA 105, 17046 (2008)

** Tobi, E. W. et al. DNA methylation signatures link prenatal famine exposure to growth and metabolism. Nat. Commun. 26, 5592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