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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인병의 태아유래 가설: 유전체각인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6-07-14

수정란으로부터 시작되는 배아발달과정에 부모 양측에서 유래된 두 대립 유전자는 거의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합니다(biallelic expression). 그러나 그것이 엄마에서 온 것이냐 아빠에서 온 것이냐를 따져 하나만이 사용되는 유전자들이 꽤 있습니다(monoallelic expression). 아빠에서 온 유전자만 쓰일 경우 엄마에서 온 대립유전자를 메틸화시켜 잠재우고, 엄마쪽 대립유전자만 쓸 경우 아빠쪽 유전자를 잠재웁니다. 이들을 각인유전자(imprinted gene)라고 하며, 지금까지 150-200개 정도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소개했던 성장인자 IGF2는 아빠쪽 유전자만 쓰이고 엄마쪽 유전자는 메틸화로 잠재워진(parternally expressed, maternally imprinted) 대표적인 각인유전자입니다. 이에 반하여IGF2의 작용을 방해하는 IGF2수용체(IGF2R)는 엄마에서 온 것만 쓰이고 아빠쪽은 잠재워진(maternally expressed, parternally imprinted) 각인유전자입니다.


태아를 놓고 벌이는 엄마와 아빠 사이의 갈등을 고려하면, IGF2는 아빠의 입장을 대변하는 유전자이고 IGF2R은 엄마의 입장을 대변하는 유전자입니다. 자식에의 유전적 투자의 성공을 보장받으려는 데에 있어서 부모 양측의 전략적 차이가 있습니다. 일부다처제(polygamy) 동물의 경우 수컷은 될 수 있으면 많은 암컷을 임신시키고 그 새끼들이 튼실하게 태어나는 것을 바랍니다. 그 이후 양육 등 뒷수습은 엄마 몫입니다. 그러니 엄마는 임신에 신중해 질 수 밖에 없지요. 지금 임신하는 것이 유리하냐? 미룰까? 임신했다 하더라도 그 와중에 우두머리 수컷이 바뀌면 태어난 새끼는 의붓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뻔한 사실, 엄마는 현재의 태아에 모든 것을 걸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차리리 지금 유산시키고 다음을 대비할까? 등등. 그렇기에 아빠 유전자의 사주로 성장을 추구하는 태아는 부담이며 제재를 가합니다. 이와 같이 아빠의 입장과 엄마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나타난 것이 유전체각인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Harvard 대학교 진화생물학자 David Haig의 유전체각인의 ‘부모갈등이론(parent conflict theory)’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부모 양쪽은 그들의 유전적 투자에 대한 확실한 성공을 바라지만, 감수해야 할 몫에는 민감합니다. 각자의 투자에 현격한 차이가 나는 태반동물에서는 엄마 아빠의 셈법이 다르기에 갈등이 있게 되며,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유전체각인이 진화하게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일부다처제를 이루는 동물의 경우 수컷은 어떤 암컷의 자궁이건 자기 유전자의 1/2을 가진 태아가 ‘엄마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잘 자라 건강하게 태어나다오’라는 프로그램을 태아에 심어 놉니다. 암컷의 다음 임신이 자신의 아기일 것이라는 확신도 없기에 현재의 태아의 성공에 집중합니다. 일처다부제(polyandry) 동물에게는 더욱 그러하겠죠. 한편,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아빠가 누구이건 태아는 자신과 항상 1/2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상황에 따라 지금의 투자가 헛되이 될 수도 있고, 또 태어나도 앞으로 들어가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에 현재의 임신을 어떻게 이끌까에 대한 결정에 신중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엄마는 태아의 성장 욕심을 제한합니다. IGF2와 IGF2R 이외 몇몇 각인유전자들도 아빠는 ‘성장도모’ 엄마는 ‘성장제한’이라는 등식을 따릅니다. 부모갈등이론이 유전자각인 현상을 설명하는 여러 가설 중 가장 설득력이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각인유전자들은 태아발달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에서 많이 발현됩니다. 그 중 한 곳이 에너지원을 가지고 태아와 엄마가 다툼을 벌이는 태반(placenta)입니다. 또 다른 한 곳은 태아의 두뇌 특히 시상하부(hypothalamus)입니다. 시상하부는 동물의 생존에 가장 기본인 배고픔 포만감 성욕 공포감 및 공격성을 다루는 장소로, 변연계(limbic system)와 함께 감정반응을 일으키지만 전두엽(frontal lobe)의 통제를 받습니다. 시상하부는 사랑 감정은 물론 의식에도 영향을 줍니다. 이성의 영역으로만 생각했던 학습과 판단 기능에 감정과 직관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개인의 성격이나 기질이 시상하부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각인유전자는 태아기 성장뿐 아니라 생후 영유아기 정서적 발달이나 행동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젖빨기 보채기 잠자기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죠.


흥미로운 두 증후군을 살펴봅시다. 프래더-윌리 증후군(Prader- Willi Syndrome, PWS)과 엔젤만 증후군(Angelman Syndrome, AS)인데, 둘 다 염색체 15번에 위치한 각인유전자의 오류로 발생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두 증후군의 유전적 오류는 동일하지만, 그것을 아빠로부터 받았다면 PWS로, 엄마로부터 받았다면 AS로 나타납니다. 1960 전후 이 두 증후군이 발견된 이래 확연히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었지만, 요즘에야 어느 정도 설명이 됩니다. PWS는 아빠쪽 각인유전자의 오류 때문에 엄마쪽 유전적 기여도가 정상보다 높아져있습니다. 따라서 엄마의 이익을 대변하는 아기의 정서나 행동패턴이 나타납니다. 저체중으로 태어나며, 수유기에 젖을 열심히 빨지 않습니다. 그러나 젖을 땔 무렵부터 식욕이 증가되어 마구 먹어 비만이 됩니다. 아기는 보채지 않고 잠도 잘 잡니다. 한편 AS는 엄마쪽 각인유전자의 오류로 아빠 쪽 이익이 과도하게 표출된 증상이 나타납니다. 젖을 좀더 오래 빨려 하고, 젖 땔 무렵에도 이유식을 거부하고 엄마 젖에 집착합니다. 또한 잠을 덜 자고 보채며 무엇인가를 계속 요구합니다.


PWS 아기는 나중에 비만에 따른 합병증, 시상하부의 기능부전으로 인하여 성선자극 호르몬의 분비 이상, 성을 잘 내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감정을 분출하는 행동을 보입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어른이 되었을 때 조현증(schizophrenea) 등 정신질환으로 진행률이 30-70%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편 AS는 과다행동과 함께 주의집중력에 결함이 있어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거나, 사회적 교류신호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자폐증(autism)으로 진행되는 비율이 40-80%에 이릅니다.**

유전체각인과 정신건강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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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ni S. et al. The course and outcome of psychiatric illness in people with Prader-Willi syndrome: implications for management and treatment. J Intellect Disabil Res. 51:32-42. 2007

** Sahoo T. et al. Microarray based comparative genomic hybridization testing in deletion bearing patients with Angelman syndrome: genotype-phenotype correlations. J Med Genet. 43(6):512-516.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