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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전체각인과 정신건강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6-07-20


엄마나 아빠 유전자 하나만이 태아발달에 필요한 각인유전자에서, 한쪽 부모의 기여가 없게 되거나 또는 두 배로 늘어날 경우 문제가 생깁니다. 이는 각인유전자의 잠재우기를 조절하는 부위의 유전적 결손 또는 중복 때문에 생기며, 그 구조적 오류가 엄마쪽에서 온 것이냐 아빠쪽에서 온 것이냐에 따라 나타나는 증세가 확연히 다릅니다. 프래더-윌리 증후군(Prader-Willi Syndrome, PWS)과 엔젤만 증후군(Angelman Syndrome, AS)이 대표적인 예로 각인유전자의 구조적인 오류는 태아의 성장은 물론 두뇌발달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을 지난번 이야기했습니다.


이러한 두뇌발달과 관련하여 1996년 발표된 생식생물학 분야의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소개합니다(1). 편의상 반수체인 난자와 정자는 n(♀)과 n(♂)으로, 정상적인 수정으로 만들어진 배아는 2n(♀♂)으로 표시합니다. 생쥐를 이용한 실험으로, 무수정 난자 n(♀) 핵을 인위적으로 분열하게 하고 융합시키면 엄마 유전자세트로만 구성된 2n(♀♀) 배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를 처녀배아(parthenogenetic, PG embryo)라고 합니다. 그리고 난자의 n(♀) 핵을 정자 n(♂) 핵으로 치환한 난자를 가지고 처녀배아 만들기와 비슷하지만 좀 복잡한 과정을 거쳐 2n(♂♂)의 총각배아(androgenetic, AG embryo)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들 배아를 대리모에 이식하면 그들은 발생과정을 어느 정도 따르다가 죽습니다. 각인유전자 중 어떤 것은 한쪽 부모의 기여가 없어지고 다른 것은 두 배로 늘어나는 등 양측 각인유전자의 발현에 혼란이 생기기 때문이죠. 이때 과학자들은 트릭을 씁니다. 처녀 또는 총각 배아발달 초기(포배기)에 있는 세포를 꺼내 정상적으로 수정된 포배기 배아에 넣어 혼성배아인 PG-키메라 또는 AG-키메라를 만듭니다. 이들은 대리모 자궁에서 발달을 마치고 바깥세상으로 나와 어느 정도까지는 잘 살아갑니다.


PG-키메라는 AG-키메라에 비해 저체중으로 태어납니다. 엄마쪽은 ‘성장제어’ 아빠쪽은 ‘성장도모’ 즉, IGF2R/IGF2 파라다임이 적용되는 것이죠. 두뇌발달과 관련하여서는 정말 흥미롭게 나타납니다. 엄마쪽 각인유전자들이 집중된 PG세포들은 사람으로 본다면 전두엽에 주로 자리잡게 되며, 아빠쪽 각인유전자가 집중된 AG세포는 시상하부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즉, 엄마의 입장을 대변하는 유전자들의 활동이 우세할 경우에는 생각하고 감정을 자제하는 전두엽이 발달하고, 아빠쪽 입장을 대변하는 유전자가 우세할 경우 감정반응과 관련된 시상하부 발달이 촉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빠의 유전자는 태아의 성장과 생존에 필수적인 식욕 성욕 공포감 공격성 등에 관여합니다. 한편 엄마의 유전자는 상황을 비교 분석하고, 예측하여 당장의 욕망을 자제할 수 있게 하는 두뇌영역의 발달에 관여합니다. 누가 여자는 감성적이고 남자는 이성적이라고 했나요? 그 반대 같지 않나요? 생쥐를 이용한 실험 결과를 확대 해석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람에서도 그럴까요?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는 몇몇 유전적 질환이 있으며, 지난번 소개한 PWS 와 AS가 그 중 하나입니다. DNA 메틸화 조절 부위의 유전자 결손이나 중복으로 아빠쪽 각인유전자가 역할을 수행할 수 없거나 엄마쪽 기여가 두 배로 늘어났을 때 PWS로 나타나고, 엄마쪽 유전자 기여가 없거나 아빠쪽이 두 배로 늘어났을 때 AS로 나타납니다. 엄마쪽 각인유전자의 활동이 지배적인 PWS 아기는 엄마 젖을 잘 먹지 않지만 나중에 폭풍 흡입을 하고, 보채지 않고 참을성이 있습니다. 반면 아빠쪽 각인유전자의 기세가 강한 AS 아기는 엄마 젖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참을성이 없으며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PWS 는 조현증(schizophrenia)을 포함한 여러 정신질환(psychosis)으로, AS는 자폐증(autism)으로 진행될 확률이 높습니다. 이러한 연관성을 일찍이 파악한 Badcock 박사와 Crespi 박사는 2008년 ‘각인 두뇌(the imprinted brain)’ 가설을 내놓습니다(2).


이들은 상기한 내용을 포함 여러 역학자료를 근거로 과감히 태아발달에 대한 부모 양측의 유전적 이해관계에서의 다툼이 자식의 행동이나 정신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i) 한 개인의 정서적 안정은 엄마쪽 혹은 아빠쪽 각인유전자들의 활동 균형에 달려있다. (ii) 유전자 각인상태 조절에서의 오류로 부모의 유전적 기여에 균형이 깨지면 자식에게 여러 정신질환이 나타나는데, 한 극단은 자폐증으로 또 다른 극단은 조현증이나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으로 나타난다. (iii) 사람의 표정이나 행동으로부터 그의 의도, 생각, 욕구, 감정을 파악하는 정신활동의 결핍은 자폐증으로 대표되며 아빠쪽 유전자의 독점에서 비롯된다. 반대로 그러한 정신활동의 과잉은 망상과 환청이 오는 조현증, 감정의 기복이 심한 조울증(bipolar disorder), 극심한 우울증(major depressive disorder) 등으로 나타나며 엄마쪽 유전자의 독점에서 기인된다. 이 가설은 여러 측면에서 검증되고 있습니다. 덴마크에서 1978년부터 2009년까지 태어난 사람 500만명의 출생 및 건강기록을 분석한 최근 역학연구에 의하면, 평균보다 큰 몸무게를 가지고 태어난 아기들은 아빠쪽으로 치우친 프레더-윌리 증후군를 비롯하여 자폐증 또는 그의 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s, ASD)에 많이 걸렸으며, 저체중으로 태어난 아기는 엔젤만 증후군, 조현증, 조현증스펙트럼장애(schizophrenia spectrum disorders, SSD)에 취약했습니다(3). 네덜란드기근으로 인하여 저체중으로 태어난 아기도 조현증 발병 빈도가 높았음을 이야기한 적이 있으며, 최근 ASD 어린이의 급격한 증가는 영양과잉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친족선택(kin selection) 이론을 도입한 진화적 해석에 따르면 정신질환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유전적 투자균형이 깨지면서 생기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줍니다. 한 개인의 성격도 그렇게 형성되는 것 아닐까요? 다음은 유전체각인과 성격형성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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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B Keverne et al. (1996) Genomic imprinting and the differential roles of parental genomes in brain development. Develop. Brain Res. 92: 91-100

(2) B Crespi B and C Badcock. (2008) Psychosis and autism as diametrical disorders of the social brain. Behav. Brain Sci. 31: 241-261

(3) SG Byars et al. (2014) Opposite risk patterns for autism and schizophrenia are associated with normal variation in birth size: phenotypic support for hypothesized diametric gene-dosage effects. Proc. R. Soc. B 281: 2014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