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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전체각인과 성격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6-07-28


진화심리학에서 성격은 한 개체가 생존과 생식에 직면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유전프로그램의 발로라고 봅니다. 생존을 위해 먹어야 하며, 적이나 위험을 피하거나 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때론 주변 친구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생식을 위해서는 잠재적인 배우자를 선택하거나 선택 당하기 위해서는 잘 보여야 하고, 결혼 생활에 성실히 임하고 자식도 잘 돌볼 것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행동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성격이 나타나며, 다양한 개성만큼이나 진화과정에서 선택된 대립유전자들이 다양한 조합으로 작동할 것입니다. 심리학적으로 성격을 구분하면, 한 개인이 특정 경험에 얼마나 개방적(openness)이냐? 성실(conscientiousness)한가? 외향적(extroversion)인가? 얼마나 긍정적(agreeableness)이냐? 신경성(neuroticism) 즉, 너무 소심하거나 아니면 무디냐? 등이 있습니다. 이를 성격의 5요소, 영어 첫 글자를 따 OCEAN이라 하며, 개인의 행복과 건강, 사회적 관계 형성, 범죄 행동, 정치적 입장 같은 요소들을 꽤 예측한다고 합니다.


한 개인의 성격을 드러나게 하는 유전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신경성을 예로 보면, 용감/침착하거나 두려움/염려 양 극단 사이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데, 여기에 어떤 유전자 또는 유전자들의 조합이 작동할까? 친화력, 포용성, 모험성, 성실성에 관계된 유전자는 무엇일까? 폭력이나 탐닉에 관계된 유전자는? 과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성격장애 또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과 그의 가족력, 특히 일란성 또는 이란성 쌍생아들을 분석하면서 성취향성, 강박증, 우울증, 조현증에 관련된 유전자를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과거 20여년 동안 그러한 유전자들을 찾았다고 하였지만, 초고속 개인별 유전자 확인 및 분석기술이 보편화된 요즈음, 과연 그러한 유전자들이 특정 성격이나 정신장애에 관련되어 있는가에 대해 확신을 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이 20여년 넘게 그토록 애썼던 노력의 결과치고는 약간 허무합니다. 그 이유? 간단합니다. 성격이나 정신활동은 하나의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유전자가 관여하며,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질환 유전자가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과 그 유전자가 발현되어 특정 행동특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후성유전으로 설명되는 부분으로, 유전자 보다는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더 클 수 있습니다.


우울증(major depressive disorder)을 포함한 불안 장애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2003년 Science 에 정신과학 분야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이 발표됩니다(1). 그간 우울증에는 세로토닌 전달체(serotonin transporter)의 S 형 대립인자가 관여할 것이라고 추측은 하였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을 때입니다. Caspi 박사는 뉴질랜드에서 같은 해에 출생한 1037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26세에 이를 때까지 우울증과 S형 대립인자와의 상관관계를 추적하였고, 예측대로 S형 대립인자를 가진 사람이 우울증 발병 빈도가 L형을 가진 사람 보다 높게 나왔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어릴 때의 신체적 정신적 학대, 부모의 죽음이나 이혼, 사춘기 애인과의 헤어짐, 경제적 위기 등 살아가면서 심적 육체적 고통을 얼마나 많이 받았느냐에 따라 우울증 발명 빈도가 S/S형을 가진 사람에게서 정비례 직선을 그리며 높아집니다. 삶에 있어서의 충격이 없으면 S형이건 L형이건 우울증 발병에는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유전자와 환경과의 상호작용(GxE)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연구결과이며, 그것도 정신활동에 관계된 유전자였기에 그 반향이 컸습니다. 이후 유전자 분석과 fMRI를 병행한 연구에서 L형에 비해 S형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시각적 위협에 반응하여 두뇌 변연계(limbic system)의 편도체(amygdala)와 해마(hippocampus)의 활동이 훨씬 증가함이 밝혀지면서 Caspi 박사 결과에 힘을 실어 줍니다. 하지만, 최근 메타분석 연구들은 S형 대립유전자와 우울증 발병과는 상관성이 그리 크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울증과 S형 세로토닌 전달체 유전자와의 상관관계에 있어서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한편, Caspi 박사의 결과는 후성유전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심리적 충격이 과연 세로토닌 전달체 유전자에 후성유전표지를 남길까? 예측대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2014년 Duke 대학에서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세로토닌 전달체 유전자의 프로모터부근에 DNA 메틸화가 증가되면 위협적인 시각자극이 있을 때 편도체 활성이 증가합니다(2). 강박증 등 불안장애군 환자에서 흔히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강조할 점은 이러한 반응을 나타내는 데에 있어서 S형 또는 L형 대립인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립유전자의 차이보다는 미세한 프로모터 메틸화 정도의 차이가 편도체 활성화 정도를 크게 좌우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캐나다 Montreal 대학 그룹은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비슷한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3).


다시 말하면, 우울증 및 기타 불안장애에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던 S형 대립인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며, 도리어 L형을 포함하는 정상 유전자의 후성유전표지 변화 정도가 한 개인의 질환 감수성을 결정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세로토닌 전달체 유전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성격장애에 관련된 뇌신경성장인자(DBNF), 강박증에 관련된 글루코코르티코이드(glucocorticoid) 수용체 유전자, 반사회성 인격장애에 관련된 폭력 유전자(MAOA) 등에도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특정 질환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정상적 정신활동을 지시하는 유전자에 그 개인의 충격적인 경험에 따라 새겨지는 메틸화 정도가 질환 감수성을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지난번 소개한 Badcock와 Crespi의 ‘각인 두뇌(imprinted brain)’ 가설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즉, 자식에 대한 부모 양측의 유전적인 기득권 또는 우선권 주장이 어느 한쪽으로 몰릴 경우, 그 한쪽 유전적 이득으로 편향된 행동을 보이는 두뇌로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선권 주장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유전자를 잠재우는 DNA 메틸화 각인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각인유전자들은 150-200여개 있습니다. 두뇌발달과 정신활동에 영향을 주는 각인유전자들은 100% 잠재우기(monoallelic function)에서부터 0% 잠재우기(biallelic function)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아기 두뇌에 발현될 것입니다. 한 아기의 성격은 엄마쪽 혹은 아빠쪽 우선권을 주장하는 유전자들이 두뇌의 어느 부위에서, 어떤 조합으로, 각각 어느 정도로 잠재워진 상태에서 작동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여기에 한 개인의 고유한 경험에 따른 유전자의 메틸화가 그 개인의 성격 형성에 한 몫을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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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aspi A, et al. (2003) Influence of life stress on depression: moderation by a polymorphism in the 5-HTT gene. Science 301:386-389

(2) Yuliya S, et al. (2014) Beyond genotype: serotonin transporter epigenetic modification predicts human brain function. Nature Neuroscience 17: 1153–1155

(3) Booij L, et al. (2015) DNA Methylation of the Serotonin Transporter Gene in Peripheral Cells and Stress-Related Changes in Hippocampal Volume: A Study in Depressed Patients and Healthy Controls. PLoS ONE 10: e0119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