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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현병 유전자들: 진화적 해석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6-08-11


조현병은 4000명 중에 1명 꼴로 청소년기에 나타나며(발병률, incident rate), 그 이후 환자의 삶을 처참하게 황폐화시킵니다. 18세 이상 성인 가운데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비율은 어느 인종, 문화권을 막론하고 0.4-1% 정도라 합니다(유병률, prevalence rate). 유전성(heritability)은 대략 70% 정도, 즉 각 개인마다 조현병 발병 원인이나 증상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그러한 변이 가운데 유전적인 요인이 70% 정도라는 의미입니다. 나머지 30% 정도는 환경 때문이겠죠. 다른 정신질환 우울증, 자폐, 조울증 등과 같이, 소소하게 영향을 주는 백여 개의 유전자가 관여하는 다유전자 복합질환(complex polygenic disease)입니다. 지난번 소개한 MHC라고 일컫는 유전자 영역에 있는 C4-A 위험유전자는 조현병 발병에 그나마 큰 영향을 주는 유전자이기에 과학자들의 탐색 그물망에 걸린 것입니다. C4-A 유전자 이외에 조현병 발병에 영향이 제법 클 것으로 여겨지는 여러 후보들이 있는데, 이들은 대체로 신경전달물질 신호처리 등 두뇌 활성과 발달에 관계합니다. 조현병은 한 개인의 생존과 생식에 분명 불리하게 즉, 한 개인의 삶에 상대적인 적합도(relative fitness)를 떨어뜨리는데 어떻게 그러한 위험유전자들이 인류집단 유전자 풀에서 제거되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0.4-1% 라는 높은 유병률을 보이고 있느냐? 조현병 진화의 수수께끼입니다. 당연히 수수께끼에 답을 하기 위한 여러 가설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가설은 조현병 발병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몇몇 핵심 돌연변이 유전자들이 있다는 가정 하에, 이들은 특정 조건이나 특정 조합에서 한 개체의 생존·생식에 유리한 점을 제공하기 때문에 자연선택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겸상적혈구질환(sickle cell disease)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말라리아에, 낭세포섬유증(cystic fibrosis)의 원인 변이 유전자가 콜레라에 저항성을 주어 여전히 일정 부분 유전자 풀에 남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현병 발병 유전자도 보유자에게 주는 어떤 이점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실제로 조현병 환자는 결핵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밝혀지면서 이 가설이 아주 틀리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조현병 발병에 관계된 것으로 추측되는 여러 유전자들이 속속 드러나게 되고, 그러한 유전자들은 한 개체의 생존·생식 보다는 뉴런과 뉴런 사이 시냅스에서의 신호처리에 관련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감추어진 혜택(hidden benefit)’ 가설은 한 곁으로 밀려납니다.


두 번째 가설은 인류의 진화과정 어느 즈음,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인간혁명(human revolution)과정에서 두뇌발달에 관련된 많은 유전자들이 자연선택되었고, 이러한 유전자 활성의 반대 급부로 조현병을 앓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이 가설은 조현병은 자연선택의 부산물(by-product)로서 나타나는, 특히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질환임에 주목합니다. 6백만년 전 침팬지와 우리의 아주 먼 조상이 갈라진 이래, 많은 중간 조상들을 거쳐 20만년전 현생인류(homo sapience)가 아프리카에 등장합니다. 이후 이들은 ‘총균쇠’ 저자 Jared Diamond 박사가 인류 대약진(great leap forward)이라고 표현한 두뇌혁명을 거칩니다. 사람이 갑자기 똑똑해져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게 하는 언어의 발달이 이루어지고, 결과로 사회적 관계 맺기가 훨씬 복잡·다양해집니다. 이러한 두뇌혁명 과정에 다양한 유전자가 집중적으로 양성선택(positive selection)되었으며, 과학자들은 우리 유전체에 남겨진 그러한 흔적을 추적합니다. 독특한 염기변이를 가진 사람의 Foxp2유전자가 한 예입니다. 이 유전자의 집중적인 양성선택의 결과로 사람은 소리를 정교하고 복잡하게 낼 수 있어 다른 동물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획기적인 언어 발달을 이루었다고 추정합니다. 최근 비교 유전체 분석연구를 통하여 인간화 과정에서 양성선택된 영역들을 찾아 내었고 이들을 인간화 가속영역(human accelerated regions)이라 명명합니다. 2015년 뉴욕 Mount Sinai 의대 연구팀은 그간 GWAS로 파악된 조현병 관련 유전자 중 가장 핵심이 될 것으로 판단되는 유전자들이 그 가속영역에는 몰려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1). 다시 말하면, 여러 조현병 관련 유전자 중에서 핵심이 될 것으로 판단되는 유전자들이 인간화 과정에서 양성선택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이 유전자들은 언어 표현, 지적 능력, 창조성 등에 관여할 것으로 추정되며, 0.4-1%에 해당하는 인류 집단에서 그러한 유전자의 과잉 활성 등 기타 오작동으로 조현병이 나타난다고 가정합니다. 실제로 뛰어난 상상력과 창조성을 보여주는 조현병 환자가 있음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로는 지적 능력이나 창조성을 지시하는 유전자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정황적인 증거만 있을 뿐입니다.


또 다른 가설은 조현병에 관련되는 유전자 풀은 동적 평형상태에 있고, 그러한 동적 평형 때문에 어느 인종이건 어느 문화권이건 변치 않는 0.4-1%의 유병률을 보인다고 주장합니다. 조현병은 100개 이상의 다수의 유전자가 관여하기 때문에 어떤 위험인자는 진화과정에서 사라지지만 산발적(sporadic)으로 다시 나타나는 새로운 버전의 위험인자가 줄어든 만큼을 메꿀 수 있다고 가정합니다. 예로서, 남자는 사춘기부터 시작하여 70세 정도까지 정자를 만들어 내고, 보통 일생 내내 초당 1500개의 정자를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정자 생산에는 당연히 DNA 복제 에러가 발생하고, 에러를 가진 유전자가 우리의 유전자 풀에 유입됩니다. 실제로 나이든 아빠의 정자가 조현병이나 자폐증 발병에 일정 책임이 있다는 역학연구 증거가 2012년 nature에 발표되었습니다(2). 과연 산발적인 정자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조현증이나 자폐증 증가를 견인할 것인가? 이에 대한 인과관계를 따져야겠지만, 최근 연구 증거에 의하면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돌연변이가 조현병 발병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합니다(3). 이와 같이 산발적으로 우연히 나타나는 위험유전자가 있다고 하면, 과학자들이 애써 찾은 조현병 위험유전자가 발명 원인이 되는지를 확인하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하지만 빅데이터 시대인 요즘 과학자들은 집요하게 인과관계를 밝혀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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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 Xu et al., Genomic and Network Patterns of Schizophrenia Genetic Variation in Human Evolutionary Accelerated Regions (2015) Mol Biol Evol 32: 1148-1160

(2) A Kong et al., Rate of de novo mutations and the importance of father’s age to disease risk (2012) Nature 488: 471–475

(3) J Yang, et al. Sporadic cases are the norm for complex disease (2010) Eur J Hum Genet 18:1039-1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