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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7: 성의 진화(1)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7-04-26


원핵세포에서 진핵세포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명은 무성(asex)에서 유성(sex)으로 생식시스템을 바꿉니다. 왜 바꾸었는가? 성은 초기 진핵세포의 생존이나 생식에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싱겁게 답할 수 있습니다. 유성생식의 진화는 생명역사에서 큰 전환점을 가져다 준 사건입니다. 진핵세포화 과정에 있는 생명이 생식시스템을 바꾸어야만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까? 특정 사건이 일어나게 만든 궁극요인(ultimate cause)을 알아내어 그 사건의 발단에 대해 합리적인 가설을 세우는 것은 진화학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성의 기원에 대한 주제를 다루려면 유성생식이 진핵생명에게 어떤 점에서 유리했기에 그 전략이 채택되었을까를 먼저 다루어야 합니다.


무성생식을 하는 개체는 유전자 100%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지만, 유성생식 부모 각각은 자신의 유전자 50%만을 자식에게 전달합니다. 그렇기에 유성생식종은 무성생식종에 비해 두 배로 더 많은 자식을 낳지 않으면 경쟁에 불리합니다. 또, 두 성이 합쳐야만 자식을 낳는 생식전략은 진화의 성공을 가늠하는 자손 수 증가에 있어서 클로닝 전략보다 한참 불리합니다. 그런데 단세포생명이건 다세포복합생명이건 상관없이 현존하는 진핵생명 거의 모두가 유성생식종입니다. 무성생식하는 진핵생명은 손꼽을 정도이며, 이들이 정말 무성생식만으로 종을 유지하느냐에 대해서 요즈음 명쾌하게 답할 수 없습니다. 과거 무성생식종으로 여겼던 많은 원생동물이 아주 가끔은 필요에 따라 유성생식을 한다고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종에 있어서는 유성생식의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성생식종이라고 판단합니다. 분명 자손을 불리는 데는 손해를 보는 유성생식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으며 또 광범위로 유지될 수 있었을까요? 진화학자들은 이를 ‘성의 패러독스’라 합니다.


유성생식이 자식 수로 승부하지 못하면 개체의 생존에 어떤 유리한 국면을 조성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1904년 아우구스트 바이스만(August Weismann)은 '유성생식은 유전자 재조합(genetic recombination) 과정에 근거를 두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다양성을 가진 개체 집단을 구성할 수 있다. 이는 자연선택과정에서 특정 조합을 가진 개체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하여 종을 존속시킨다. 이것이 유성생식의 장점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자연선택의 대상은 개인이 아니고 집단이며, 유성생식이 집단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것입니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이익을 포기할까요? 비록 집단선택(group selection)에 의한 진화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는 진화는 개인선택(individual selection)에 의해 진행된다고 말합니다. 바이스만의 주장은 유성생식이 진화한 결과에 대한 설명이지 유성생식 진화의 원인에 대한 설명은 아닙니다. 유성생식이 진화하려면 집단이 아니라 개체에게 이득을 주어야 합니다. 유성생식 진화의 초기상태, 즉 무성생식 개체가 대부분인 집단에 유성생식 개체가 나타날 때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당장 자손 수를 늘리는데 불리한 유성생식 개체가 집단전체에 퍼질 기회를 잡으려면, 우선 더 오래 살아남아야 합니다. 또 무성생식종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자식을 낳아야 합니다. 유성생식은 분명 개체에 유익했어야 했습니다. 어떻게 한 개체에게 생존력과 함께 번식력을 높여줄 수 있을까요? 20세기 내노라 하는 과학자들이 이 문제에 달려들었습니다.


유성생식이 개체에게 어떤 점에서 유리한가? 유성생식의 핵심은 두 개의 성(sex)과 유전자 재조합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집단 내에 존재하는 유익한 유전자들을 조합하여 한 개체에 몰아 줄 수 있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해로운 유전자를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없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무성생식에는 없는 유성생식만의 장점입니다. 하지만 역으로 좋은 유전자 조합이건 나쁜 유전자 조합이건 그것을 흩어놓는 것도 유성생식입니다. 과학자들은 조합을 모으는 것과 애써 모아진 조합을 흩어놓는 것이 어떤 종에서 어떤 조건 어떤 비중으로 얼마나 자주 일어나느냐 등에 대해 수학적 모델링을 통해 분석하여 유성생식이 개체에 이득을 주어 진화를 야기하는 조건을 찾습니다. 대표적인 두 가설을 소개합니다. 하나는 유전학적인 다른 하나는 생태학적인 접근을 시도한 것입니다.


1964년 헤르만 뮐러(Hermann Muller)는 한정된 개체 수를 가진 무성생식종에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돌연변이를 가정합니다. 돌연변이는 대체로 해롭기 때문에 변이를 가진 개체는 적합도(fitness)가 떨어집니다. 이들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와중에 환경 재앙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때 순전히 우연으로 변이를 가진 개체만 살아남는다고 가정하면, 집단은 나중에 모두 돌연변이를 가진 개체로 구성됩니다. 이와 같이 돌연변이가 집단에 고정되는 현상을 유전자 부동(genetic drift)이라고 하는데, 개체수가 적은 집단이 겪게 되는 진화과정입니다. 유전자 부동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계속 일어나면, 집단 구성원 전체에 제2, 제3의 해로운 돌연변이가 누적되어 집단은 붕괴(mutational meltdown)될 운명에 처합니다. 이를 ‘뮐러의 톱니바퀴(Muller’s ratchet)’라 합니다. 마치 한 방향으로만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무성생식종은 적합도가 떨어지는 것을 모면할 방법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유성생식종은 해로운 돌연변이를 한데 모아 제거할 수 있기에 즉, 톱니바퀴를 거꾸로 돌릴 수 있어 멸종을 면할 수 있습니다. 뮐러의 톱니바퀴 가설은 유성생식이 개체에 주는 이득을 설파했다기 보다는 유성생식이 널리 유지될 수 있는 이유를 말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무성생식종은 수천 년이 지나면 사라지는데, 그 이유는 뮐러의 톱니바퀴가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지금도 계속 발표됩니다. 러시아 출신 수리 진화학자 알렉세이 콘드라쇼프(Alexey Kondrashov)는 톱니바퀴 이론이 개체수가 작은 집단에서 유전자 부동이 작동하는 환경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큰 집단에서도 돌연변이가 상당히 빈번히 일어나는 환경에서도 작동된다는 모델을 제시합니다(1). 그는 개체가 돌연변이에 대해 크게 민감하지 않고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다면 그리고 자연선택이 함께 작동한다면, 유성생식이 해로운 돌연변이를 한몫에 모아 집단에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성의 진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두 번째 소개하는 이론은 생태환경을 강조합니다. 1966년 죠지 윌리암스(George Williams)는 성은 다양한 유전자 조합을 집단 내 개체에 분산시킴으로써, 녹록하지 않은 변덕스런 환경에 처한 개체에 직접적인 생존 이득을 준다는 가설을 발표합니다. 그 타당성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환경 보다는 기생충, 포식자, 경쟁자 등과 같은 생물학적 환경이 개체 생존에 더 큰 영향을 주어 성을 진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때마침 1973년 시카고 대학의 리히 반 발렌(Leigh Van Valen) 박사는 해양 화석을 연구하면서 한 과를 이루는 동물 종은 그들이 얼마나 잘 적응하였는지와는 상관없이 무작위적으로 멸종되었음을 눈치채고, 그 이유는 서식 환경을 공유하는 경쟁자에게 방심하였기 때문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루이스 캐롤(Lewis Carroll)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 glass)』의 소설 속 인물 ‘붉은 여왕(red queen)’을 등장시킵니다. 같은 장소에 있기 위해 항상 뛰고 있어야 하는 붉은 여왕은 생존의 제로섬 게임에 몰린 생명을 묘사합니다. 빌 해밀턴(Bill Hamilton)은 기생충에 초점을 맞추어 '붉은 여왕 효과'를 성의 진화에 접목시킵니다. 기생충은 숙주에 잠입하여 증식을 도모하는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 원생동물들입니다. 그냥 DNA나 RNA 조각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생명은 태어날 때부터 기생충의 괴롭힘에 직면합니다. 기생충은 크기가 작고, 빠르게 증식하며, 수명이 짧고, 개체 수 변화가 심합니다. 그렇기에 숙주에 적응하기도 쉽습니다. 숙주가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유전자 재조합뿐입니다. 숙주의 개체군이 유전적으로 다양해야 기생충에 당하는 것을 모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빌 해밀턴은 유성생식은 기생충을 저지하기 위해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유성생식이 한 개체에 당장의 생존 이익을 제공할 수 있기에 성의 진화를 유도하였다고 주장합니다. 유성생식이 진화하는 초기 상태, 즉 무성생식이 지배적인 환경에서 어느 정도로 기생충의 위협이 있어야만 유성생식종이 집단에 퍼질 수 있을까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성의 진화에 관한 한 가장 설득력이 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집니다. 1994년 커티스 라이블리(Curtis Lively)는 수학적 모델을 통해서 기생충의 감염확률이 70% 정도로 높을 때 그리고 숙주가 기생충의 위협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그의 적응도가 80% 정도로 떨어지는 때, 이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될 때 유성생식이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2). 대부분의 기생충의 감염은 유성생식을 진화시킬 정도로 강력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붉은 여왕 가설’도 만족스러운 답을 주지는 못합니다.


생명은 복잡성이나 크기, 개체 수, 번식속도, 수명, 생태환경 등 모두 각각입니다. 어떤 이론이건 범용으로 적용될 수 없습니다. 수학적 시뮬레이션을 통해 성의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을 예측하지만 실험적 증거가 뒷받침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여러 이론들을 조합하여 특정 생태계에 적용해 보려고 합니다. 최근 보다 실제 상황을 반영하는 유성생식이 개체에 이득을 주는 모형이 등장합니다(3). 첫째, 시간과 장소에 따른 선택의 압력이 달라지는 모형입니다. 예를 들면 기생충으로 인한 진화압력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하게 되면 과거의 조합은 더 이상 유효하기 않기에 생명은 유성생식을 통해서만 기존 조합을 깨고 새로운 조합을 만들면서 변하는 선택압력에 대처합니다. 둘째, 개체가 성을 바꾸는 -- 한 개체가 좋은 건강 상태에 있을 때는 무성생식을 상태가 다소 나빠질 때 유성생식을 하는-- 모형에서 유성생식은 개체에 생존력과 번식력에 이득을 준다고 합니다. 셋째, 한정된 변화하는 집단을 가정하여 돌연변이가 빈번히 일어나는 조건에서 모델링하면 유성생식은 해로운 유전자에 파묻혀 빛을 못 보는 좋은 유전자를 끄집어 낼 수 있으며, 동시에 개체 각각에 숨어있는 유전적 다양성을 보존하여 미래를 대비할 수 있기에 유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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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ondrashov, A.S. Deleterious mutations and the evolution of sexual reproduction. Nature 336: 435-440 (1988)

(2) Howard R. S., Lively C. V. Parasitism, mutation accumulation and the maintenance of sex. Nature 367: 554–547 (1994).

(3) Otto S. P. The evolutionary enigma of sex. Am. Nat. 174: S1-S14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