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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8: 성의 진화(2)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7-05-26


진핵세포화 과정을 밟고 있었던 수많은 무성생식 세포들이 무슨 이유로 자손을 불리기 쉽고 유리한 방법을 버리고 번거롭고 불리한 방법을 찾아야만 했을까요? 이러한 ‘성의 기원(the origin of sex)’에 대한 질문에 답하려고 많은 학자들이 도전했습니다. 지난 글에서 유성생식이 가지는 이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첫째, 유성생식은 해로운 유전자에 파묻혀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는 유전자를 찾아내어 그의 유용성을 다음 세대에서 점검 받을 수 있게 한다. 둘째, 유익한 유전자가 선택될 때 그에 붙어 있는 유전자들이 함께 선택되고 고정되는 현상, 즉 유전자의 선택몰이(selective sweep)가 일어나는데, 유성생식은 이를 막을 수 있어 집단의 유전적 다양성을 보존할 수 있다. 이러한 유성생식의 이점이 개체에 즉각적으로 반영되어 성이 진화할 수 있으려면 세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돌연변이가 빈번히 발생해야 하며, 둘째는 집단에 가해지는 자연선택 압력이 강해야 합니다. 그 예로 기생충 침입이나 서식지 이동과 같이 앞선 세대에서 유리했던 유전자 조합이 소용이 없어질 정도로 환경이 급변하는 경우입니다. 셋째, 집단 구성원은 그러한 돌연변이와 환경충격을 감내할 정도로 유전적인 다양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1).


과연 진핵세포화 과정에 있었던 세포들이 위의 조건에 해당하는 상황에 있었을까요? 이에 대해 닉 레인(Nick Lane) 박사의 최근 저서 『Vital Question』에 소개된 가설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유성생식은 내부 공생세균이 마이토콘드리아로 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데, 숙주 고균은 자신이 품고 있는 세균이 어느 정도 수를 불릴 수 있게 허용합니다. 그래야만 복잡한 구조물을 갖추는데 필요한 ATP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죠. 공생세균 쪽에서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집니다. 다만 숙주 내 제한된 공간에서 한정된 자원만을 가지고 증식하려면 유전체를 간소화하고 ATP 생산에 집중하는 세균을 많이 품은 숙주가 자연선택됩니다. 이 과정에서 세균 유전체에 있는 이동성 인트론(mobile intron)이 관여했다고 가정합니다. 인트론은 숙주 유전체에 무작위적으로 끼어들어 세포를 유전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불안정은 진화의 동력입니다. 그러한 삽입 돌연변이는 대체로 해롭지만 아주 간혹 진핵세포 진화에 유용한 -- 세포융합, 세포골격, 또는 핵막 생성에 관여하는 -- 돌연변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유전적인 안정성을 찾고자 세포들 사이에서 융합이 일어나고, 유전체 재조합 과정에서 망가진 유전자가 복구됩니다. 또 유용 변이들이 한 곳에 모이게 되면 금상첨화입니다. 진핵세포화 과정 초기에 있었던 인트론 공격은 유성생식이 시작될 수 있는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킵니다. 공격 자체는 돌연변이를 유발합니다. 이동성 인트론은 자신의 DNA를 복제하여 수를 늘리려고만 하는 이기적 기생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세균 유전자를 숙주에 감염시켜 이득을 취합니다. 기생 DNA로 공격 받은 유전자는 세포마다 다르며 손상 정도도 각각입니다. 유전적으로 다양하고 불안정한 세포들은 서로 융합하여 자신의 유전체를 비교해 봅니다. 망가진 유전자를 버리고 유용한 유전자를 재구성하면서 기생 DNA와 공존을 모색했던 수많은 세포들 중에서 오로지 레카(LECA)만이 자연선택의 바늘구멍을 통과합니다(2).


진화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문제점이라는 것은 불안정이 유도되는 상황입니다. 닉 레인 박사의 주장은 내부 공생세균으로부터 무차별적인 인트론 침공 때문에 유전적 불안정성이 조성되고, 이를 해결하고자 성이 진화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초기 인트론 공격에 대한 상황적 증거는 있습니다. 진핵세포는 원형 유전체를 가진 원핵세포와 달리 여러 개의 선형 유전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트론 드나듦 과정에서 실수로 원형 유전체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핵세포 유전자는 그 정보가 불연속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끼어든 인트론이 이동성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연속 유전자에서 단백질을 만들어 내려면 흩어진 정보를 재구성하는 RNA 스플라이싱(splicing) 과정이 필요하였고, 이 과정은 단백질 번역과정으로부터 격리되어야 했기 핵막이 진화하였다고 봅니다. 사실 진핵세포 진화 초기에 집중적인 인트론 공격이 한시적으로, 아마도 핵막이 생길 때까지 있었음을 제시하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3).

진핵세포의 진화에서 중간 상태의 세포는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 과정에 있었던 세포들이 유전적으로 매우 불안정하였음을 말해주는 상황적 증거입니다. 유전적으로 약해진 세포는 죽기 십상이지만 기생 DNA나 마이토콘드리아는 숙주의 융합을 유도해 생존하게 하고 자신의 증식을 도모합니다. 숙주와 마이토콘드리아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세포융합은 하나의 문제를 야기합니다. 두 세포 각각에 공생하던 마이토콘드리아도 한 곳에 섞이면서 각자의 증식을 우선시합니다. 대부분의 복잡 다세포 생명체는 이러한 경쟁을 마이토콘드리아를 전달하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남성을 진화시켜 해졀하지만 왜 두 개의 성이 있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리고 두 성의 융합은 또 다른 차원의 갈등을 야기합니다. 유전체가 두 배로 증가한 이배체(diploid, 2n) 융합세포는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하나는 생식계열세포(germline cell)로 들어가 다시 두 반수체(haploid, n) 성세포를 만들면서 유전자를 대대손손 전달합니다. 다른 하나는 한정된 기간만 살다가 유전자 전달없이 사라지는 체세포(somatic cell)로 됩니다. 어느 누가 소모성 체세포가 되려고 하겠습니까?


성의 진화는 진핵세포의 진화와 궤를 같이합니다. 두 개의 성이 있기에 지구는 단조롭고 눈에 뜨이지 않는 생물상에서 확연히 눈에 뜨이는 현란한 생물상으로 바뀝니다. 온갖 색깔이 있게 되며, 이전투구의 경쟁과 기이한 행동, 협동과 반목, 삶과 죽음 등 희로애락이 있는 세계로 들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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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Otto S.P. and Barton N. (2001) Selection for recombination in small populations. Evolution 55: 1921-1931

(2) Lane N. (2015) The Vital Question: Energy, Evolution, and the Origins of Complex Life. New York: W.W. Norton

(3) Martin W. and Koonin E.V. (2006) Introns and the origin of nucleus-cytosol compartmentalization. Nature 440: 4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