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뉴 닫기
 

열린마당

제목
생명의 역사10: 생명의 다세포화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7-06-20


John Marynard Smith와 Eors Szath는 ‘생명진화에서 주요 전이(major transition in evolution, MTE)’라 하여 생명이 복잡해지는 사건을 정리하였습니다(1). 그 중에는 유전 정보물질과 그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생화학 시스템의 진화, 루카의 출현, 레카의 진화, 다세포 형성, 사회적 집단구성이 포함됩니다. 자연선택은 개체의 이득에 초점을 맞춥니다. 개인이 모인 그룹에서 그룹이익이 개인이익을 훼손하지 않은 범위에서만 그룹이 유지됩니다. 이는 매우 취약한 구조입니다. 그룹이익을 훼손하면서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개인이 항상 예외없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자연선택이 그룹에서도 힘을 발휘하려면 개인은 자신의 이익보다는 그룹의 이익을 위해 서로 간의 갈등을 줄이고 협력해야 합니다. 협력은 구성원이 역할을 분담하며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담당 업무에 소홀한 개체는 벌을 받거나 자살을 권유받습니다.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역할 수행에 뒤따르는 노동(비용)이 공평할 수 없기에 계약을 파기하려는 시도가 빈번이 일어납니다. 특히 소프트웨어적으로 쓰여진 협력계약 즉, 유전 프로그램은 쉽게 무시될 수 있기에 하드웨어적인 방법이 동원됩니다. 역할분담을 물리적으로 강제하는 과정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야만 그룹은 개인화되어 자연선택의 단위체로 발돋움합니다. 진화학자들은 이러한 시각으로 단세포가 모여 다세포로 되는 과정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현존하는 모든 생명의 계통을 분석해보면, 진핵생명 진화의 역사에서 다세포 전이는 25번 정도 일어났다고 합니다. 단 한번의 사건이었던 여느 전이와는 다르게, 꽤 많은 성공적인 다세포 전이는 자연선택이 생명의 다세포화를 선호하였음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다세포화는 어렵지 않게 시작되었을 것 같습니다. 독립 생활을 하던 세포들이 여럿이 뭉치면 몸집이 커지기에 먹이 획득, 식세포 방어, 서식지 확장 등 여러 면에서 유리합니다. 사실 많은 연구들은 다세포화는 생태적인 이유에서 일어났고, 기존 유전자의 쓰임새 변경에 따른 것임을 말해줍니다(2). 즉, 다세포로의 유전적 진입 장벽이 크지 않았다고 봅니다. 일단 다세포가 형성되면, 그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생태적 환경 압력이 지속적으로 있어야 했습니다. 이 부분은 성을 진화하게 한 요인과 맥을 같이합니다. 하기야 성의 진화와 다세포의 진화는 같은 진화압력을 받았을 것으로 봅니다. 아무튼 다세포 시작은 쉬웠지만, 다세포가 연합체를 이루고 자연선택의 개별 단위로 되기까지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진핵세포가 다세포 연합을 수도 없이 많이 시도했지만 전체 진핵생명 통틀어 25개 연합체만 개인화에 성공해 눈에 뜨이는 생물로 온 세상을 채웠습니다.


다세포 연합체에서 각 세포들이 어떤 위치에 자리잡느냐에 따라 산소, 영양분, 기타 신호물질 접근에 차이가 나고, 이러한 차이가 세포를 다르게 분화시켜 다른 기능과 역할을 하게 합니다. 다세포 형성 초기에는 구성원이 유전적으로 거의 같았기 때문에 별다른 갈등이 없이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포가 분화함에 따라 연합체 협력의 틀을 깨는, 자신의 유전적 이득에 몰두하는 개체가 나타납니다. 다세포 복잡생명은 다양한 전략을 동원하여 이기적인 얌체족을 제압했습니다. 대표적인 두 가지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하나는 협력을 거부하는 유전자가 다음세대로 전달되는 것을 봉쇄하는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다세포 복잡생명은 생활사에서 단일세포 상태를 거칩니다. 즉, 한 개체에서 만들어지는 수 많은 정자나 난자 중 오직 하나씩으로만 수정된 접합자가 다음 대를 이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정자 혹은 난자에 협력을 거부하는 얌체유전자가 있다면, 이들로 수정된 배아는 발달과정에서 죽게 됩니다. 얌체돌연변이가 세대를 넘어가는 과정에서 제거되는 현상을 단일세포 (접합자에 의한) 병목(unicellular bottleneck)이라 하며, 이 때문에 다세포 연합체가 유지됩니다. 또 다른 방법은 역할분담을 통하여 서로에게 의존하게 하거나 서로를 구속하는 방법입니다. 지구 산소화의 주역인 광합성 남세균 일부가 광합성을 포기하고 대기에 있는 질소를 고정하여 동료에게 공급하는 업무를 담당합니다. 이들의 희생적 결단이 있었기에 광합성 남세균은 안정적인 연합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또 지난 글에서 성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체세포계열과 생식세포계열 사이에 역할분담이 있었기에 운동성 복잡생명이 진화했다고 했습니다. 생식세포가 배아발달 초기에 가급적 돌연변이 발생이 제한된 장소에 격리되면, 체세포는 유전자를 온전하게 전달해야 하는 부담에서 자유스러워집니다. 이들은 연합체가 생존기계로서의 성능을 뽐내게끔 마구 분화합니다. 체세포 모두는 한평생이면 사라질 운명, 어떤 애들은 더 이상의 증식을 포기하고 갈 때까지 가겠다고 작정합니다. 뇌와 근육세포가 그렇고, 먹이를 찾고 잘 다룰 눈, 이빨, 턱, 촉수 등, 그리고 공격이나 방어를 위한 가시, 뿔, 갑옷 외피가 그렇습니다. 생명은 몸집이 커지고 더욱 복잡해집니다. 여기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암과 같은 얌체족이 나타났다고 뭐 대수입니까? 그저 부담스런 암과 더불어 살다가 죽으면 그만입니다. 생식세포는 안전한 장소에 격리되어 있기에 암이 다음세대에 나타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단일세포 병목은 다세포화 진화 과정에서 협동을 방해하는 유전자를 걸러 내는 중요한 메커니즘이지만 그의 기원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최근 조지아텍(George Institute of Technology)의 William C. Ratcliff 박사는 다세포 형성 초기를 모방한 진화실험에서 구성원의 유전적 갈등이 없는 상태에서도 연합체는 단일세포 생활사 단계를 가지며, 그 결과로 연합체의 번식력(fecundity)이 증가됨을 보여줍니다(3). 즉, 유전자 갈등이 없더라도 단일세포 병목이 진화할 수 있고, 그의 진화로 협동을 거부하는 유전자가 제거할 수 있는 것이죠. 구성원 사이의 역할분담 역시 연합체의 생존 및 생식 적합도를 증가시키기에 진화한 것이고, 그 결과로 유전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역할분담은 성의 진화와 함께 생식세포 격리로 나타나 구성원에게 물리적으로 강제됩니다. 여기서 생식세포 혹은 체세포, 둘 중 어느 쪽에 속하느냐는 그저 수정란의 복제 타이밍과 위치에 따를 뿐입니다. 그리고 체세포는 특별한 장소에 있는 특별한 소수를 위해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합니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는 없습니다. 자신의 형제인 생식세포가 유전체를 오롯이 간직하여 다음세대로 전달하는 데에서 대리 만족할 뿐입니다(친족선택, kin selection). 생식세포 격리는 이후 생명역사의 장에 파노라마를 연출시킵니다. 이 극장에는 어떤 의도나 목표가 없었던 개체로부터 시작하여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식을 가지고 합목적적으로 행동하는 개체까지 눈에 뜨이는 모두가 등장합니다. 진화의 본질은 운이며 또 불평등입니다. 불평등이 심하면 더욱 극적입니다.

--------------------------------------------------------

(1) Maynard Smith, J. & Szathmáry, E. The Major Transitions in Evolution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2) Suga, H. et al. The Capsaspora genome reveals a complex unicellular prehistory of animals. Nat. Commun. 4, 2325–2333 (2013)

(3) Ratcliff, W. C. et al. Experimental evolution of an alternating uni- and multicellular life cycle in Chlamydomonas reinhardtii. Nat. Commun. 4, 2742–2748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