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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물의 불평등 혐오, 공정성, 협동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7-07-06


‘불평등이 심하면 진화는 더욱 극적이다’라는 말로 지난 글을 맺었습니다. 체세포계열에 주어진 심한 불평등, 그들의 유전적 희생과 전문화된 재능기부로 다세포 진핵생명은 맘껏 나래를 펼쳐 다양한 복잡동물로, 더 나아가 협동하며 사회를 구성하는 동물로까지 진화합니다. 세포 사이의 협동은 유전적 동일성에 기반을 둔 친족선택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유전적으로 각각인 동물 집단에서 협동은 의식적인 인식에 기반을 둔 상호성(reciprocity)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에는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것 이외에 손해가 있으면 앙갚음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진화학자들은 상호성에 기반을 둔 협동이 학습된 것인지 아니면 타고난 것인지를 알아보고자 사람이 아닌 여러 동물, 포유동물은 물론 물고기까지 이용하면서 연구를 거듭하였습니다. 동물의 입장에서 동물의 언어로 동물의 행동을 파악하는 동물행동학(ethology)의 핵심주제는 협동입니다.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의 핵심주제 역시 협동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협동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협동은 구성원의 노동기여에 따른 결실(payoffs)이나 보상(rewards)이 적절히 분배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보상을 다른 구성원의 것과 비교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감정이 상하는 것은 인간 모두의 특성입니다. 2003년 Brosnan 박사와 de Waal 박사는 우리와 같이 동물도 공평하지 않은 분배를 감지할 수 있고 또 성을 내며 훈련(협조)를 거부하는 등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1). 그들은 카푸친(capuchin) 원숭이에게 물건 맞바꾸기 훈련을 시킵니다. 토큰을 건네주는 원숭이에게 상으로 오이조각이나 포도알을 주는 것이죠. 원숭이는 포도알을 더 좋아합니다. 포도알과 오이를 동시에 보여주고 난 후에 토큰 교환의 상으로 원숭이에게 오이를 줍니다. 그러려니 감지덕지 오이를 받아먹습니다. 하지만 그가 보는 앞에서 똑 같은 토큰을 교환하는 동료 원숭이에게 포도알을 주면 황당해 합니다. 곧 이은 그의 차례에 내심 기대했던 포도알 대신에 오이가 또 건네지면 화를 내며 받아서 집어 던집니다. 그리고 더 이상 훈련에 응하기 않습니다. 카푸친 원숭이는 그가 좋아하는 포도알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같은 일을 수행한 다른 원숭이가 자기보다 더 좋은 보상을 받았다는 데에서 심술이 난 것이죠. Brosnan 박사는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는 이러한 동물의 ‘불평등 혐오(inequity aversion)’ 행동은 현재의 협동에 대한 경고로 작동하여 그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기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상대편 보다 못할 때 그 보상을 포기하는 행동은 진화상 꽤 오래 전 동물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 이후의 연구에서 개와 까마귀도 불평등에 민감하게 반응함이 밝혀집니다. 요즘 과학자들은 불평등 혐오가 사회적 학습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요인에 뿌리를 둔 것이며, 짝 결속이나 친족 협동을 제외한 모든 협동 사회에서 그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동력임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지난달 늑대도 불평등 혐오행동을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2). 이는 여러 모로 동물의 협동에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우선, 늑대는 개보다 훨씬 불평등을 못 참고, 그 정도의 차이까지 감지하고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리고 협동을 거부한 이후 기존 관계로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더 걸립니다. 또한 지위가 높은 녀석이 삐치는 정도가 더 심합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개에서 나타나는 불평등 혐오가 가축화 과정에서 배양된 것이 아니고 조상 늑대로부터 물려받은 선천적인 특징임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불평등 혐오는 가축화 과정에서 완화됩니다.


사회성 동물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불공평한 보상을 포기하는 소위 ‘1차 불평등 혐오’ 메커니즘이 있었기에 협동이 진화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한 단계 승화된 불평등 혐오가 있습니다. ‘2차 불평등 혐오’라 하여, 터무니 없이 더 많은 보상을 받았을 때 낮은 보상을 받은 상대방의 저항을 예측하여 자신의 보상을 낮추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는 상대의 마음속에 들어가 자신의 것을 삼가는 고도의 두뇌 활동인 감정이입(empathy)과 전략적인 절제를 요구합니다. 인간의 공정성을 가늠하는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을 소개합니다. 이 게임에서는 전혀 낯선 두 사람이 참가합니다. 이들은 앞으로 만날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얼마든지 이기적 행동을 해도 문제가 없는 상황입니다. 둘 중 하나를 제비뽑아 제안자로 정하고 그에게 10만원을 줍니다. 제안자는 공짜로 받은 10만원에서 일정액을 상대방에게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얼마의 비율로 줄 것인가는 제안자 마음대로입니다. 응답자는 제안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둘 중 하나 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받아들이면 두 사람은 비율대로 나누어 가집니다. 그러나 거부하면 두 사람 다 한 푼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게임은 단 한 번에 끝납니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또 합리적입니다. 그렇다면 제안자는 가능한 한 최소한의 금액을 상대에게 제안할 것이고, 응답자는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없는 것보다 나으니 받아들일 것입니다. 과연 현실의 우리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사회적 환경과 문화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겠지만, 평균 40-50%을 제안한 경우가 가장 많았습니다. 심지어 50% 이상을 제안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20-30% 이하의 제안은 거부되었습니다. 제안자 측에서 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관대하든지 혹은 전략적이든지 자신의 이익을 줄이면서 공평하게 나누려고 합니다. 응답자 측에서의 우리는 심한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보복하려 합니다. 진화학자를 포함 많은 경제학자 사회학자들은 이와 같은 ‘2차 불평등 혐오’가 우리에게 공정(fairness)이라는 개념을 싹트게 했을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동물에게도 불평등 혐오를 넘어선 공정이라는 개념이 있을까요? 두 연구그룹에서 침팬지를 대상으로 최후통첩 게임을 시도하였습니다. 막스 프랑크 연구소 Jensen 박사 그룹은 침팬지들이 인간에 비해 공정함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결과를 발표했고(3), Brosnan 박사가 이끄는 연구그룹은 침팬지도 인간과 같이 공평하게 보상을 나눈다는 결과를 발표합니다(4). 후자는 2013년 PNAS에 발표되었는데 공정성 개념이 인간 이외 동물에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최초의 연구결과입니다. 서로 상반된 연구 결과를 내놓고, 어떻게 침팬지에게 최후통첩 게임규칙을 이해하도록 실험설계를 하였느냐를 가지고 논쟁합니다. 여기서는 논쟁거리인 실험방법의 독창성과 효용성을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동물은 불공평(inequality)에 대한 혐오 감정을 표출합니다. 공정성 개념은 추상적이지만 자원의 불평등(inequity) 배분에 대한 감정조절과 그렇게 함으로써 얻어지는 간접 이익을 계산하는 능력에 기반을 둡니다. 우리와 같은 조상을 둔 침팬지가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 것 아닐까요?


우리는 동물의 생각과 의사표현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기에, 인간에게 적용하는 최후통첩 게임으로 동물의 공정성 개념 여부를 제대로 파악하기는 힘듭니다. 카푸친 원숭이는 불공평에 대응하여 자신의 보상을 포기합니다. 그런데 일반 최후통첩 게임에서와는 다르게 그 포기가 상대방에게 보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의 행동은 불평등을 심화시킬 뿐입니다. 카푸친 원숭이는 왜 그러한 무리수를 둘까요?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한 무보복 게임(impunity game) 결과로부터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은 최후통첩 게임에서 조금 변형을 주어, 응답자가 제안한 금액을 거절하더라도 제안자는 할당된 금액을 가집니다. 제안자는 최후통첩 게임에서 보다 제안 금액을 줄입니다. 응답자는 자신의 거부가 보복 수단으로 쓰일 수 없기에 적은 금액이라도 받으려고 합니다. 따라서 불공평 제안에 대해 거부하는 빈도는 최후통첩 게임에서 보다 반 정도로 줄어듭니다. 이 게임에서 거부 이유는 무엇일까요? 괘씸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어서 아니면 상대방에게 나의 격한 성질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를 구분하기 위해 게임 규칙을 변경합니다. 제안자가 응답자의 거부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 이를 비밀 무보복 게임(private impunity game)이라고 합니다. 이 게임에서 응답자는 자신의 거부 사실을 제안자에게 알릴 방법이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보복 게임에서와 같은 빈도로 거부를 선택합니다.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는 거부 행동은 제안자에게 나의 감정을 알리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롯한 감정상태 표출입니다(5). 침팬지, 카푸친 원숭이, 개, 늑대, 까마귀도 아마 어떤 의도가 없이 그저 감정이 상해서 불공평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순전히 생물학적 동기입니다.


요약하면 ‘불평등(불공평) 혐오 à 공정성 à 협동’ 순으로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욕심이 많고 성질이 사나운 놈이 있기에 불평등이 생기며 그에 대한 대응으로 협동 사회가 구성될 수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입니다. 협동 사회에서 심리적 문화적 요인들이 구성원의 불평등 혐오를 완화시킵니다. 늑대는 가축화되면서 양순하게 변했습니다. 우리는 침팬지와 600-700만년 전에 갈라진 이후 가축화 과정을 밟은 것처럼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양순화되어 여기까지 왔다고 말합니다. 미시간 대학의 Nesse 박사의 말입니다. 그렇지만 양순화 압력에 저항하는 격한 성격의 소유자가 자원 획득에 유리합니다. 마땅한 보복 수단이 차단되었을 때 더욱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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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 F. Brosnan, F. B. M. De Waal, Monkeys reject unequal pay. Nature 425, 297–299 (2003).

(2) J. L. Essler, S. Marshall-Pescini, F. Range, Domestication Does Not Explain the Presence of Inequity Aversion in Dogs. Current Biology 27, 1861–1865 (2017)

(3) K. Jensen, J. Call, M. Tomasello, Chimpanzees are rational maximizers in an ultimatum game. Science. 318, 107-109 (2007)

(4) D. Proctor, R. A. Williamson, F. B. M. de Waal, S. F. Brosnan, Chimpanzees play the ultimatum game. Proc. Natl. Acad. Sci. U.S.A. 110, 2070–2075 (2013).

(5) T. Yamagishi, Y. Horita, H. Takagishi, M. Shinada, S. Tanida, K. S. Cook, The private rejection of unfair offers and emotional commitment. Proc. Natl. Acad. Sci. U.S.A. 106, 11520–11523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