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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12: 캄브리아기 생명폭발, 이보-디보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7-07-28


현존하는 동물은 35개의 문(phyrum)으로 나누며 2백만 여종이 있습니다. 이들이 지구에 나타난 순서로 정리하면, 다세포 연합체에서 조금 진전되어 고착생활을 하는 해면동물문(porifera)이 처음 나옵니다. 다음은 근육과 신경조직을 갖춘 유즐동물문(Ctenophora; 빗해파리)과 자포동물문(Cnideria; 해파리, 히드라, 말미잘)이 나오죠. 이들은 방사대칭형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 나타나는 것들은 모두 좌우대칭형 동물(bilaterian)입니다. 이들은 발생과정상 입이 먼저 나타나는 선구동물(protostomes)과 항문이 먼저 나타나는 후구동물(deuterostome)로 나뉩니다. 선구동물에는 연체동물문(Mollusca; 달팽이, 조개, 오징어), 환형동물문(Annelida; 지렁이), 그리고 절지동물문(Arthropod; 가재, 새우, 거미, 곤충류 등)이 있습니다. 후구동물에는 극피동물문(Echinodermata; 성게, 불가사리)과 척삭동물문(Chordata) 등이 있습니다. 창고기(lancelets)와 피낭류(tunicates, 바다물총 또는 멍게)는 척삭동물에 속하고, 나머지 90%는 척추동물(vertebrates)입니다. 척추동물은 먹장어(hagfishes)와 칠성장어(lampreys)로 시작하여 경골어류,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 모두 크게는 척삭동물문에 속합니다.


캄브리아기 이전 에디아카라기에는 해면동물, 드물게 자포동물과 연체동물이 있었습니다. 5.4억년전 캄브리아기로 들어서면서 좌우대칭형 동물 모두가 나타납니다. 불과 1-2천만년 사이 지질학적 시간에서 볼 때 아주 짧은 순간에 현존하는 동물문 60%가 나타난 것이죠. 어찌 그리 짧은 기간에 그리 많은 동물문이 진화할 수 있었을까? 19세기 다윈 시대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고생물학자, 발생학자, 분자생물학자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입니다. 지난 글에서는 캄브리아기 생명폭발을 견인한 외적 요인을 다루었지만, 오늘은 생명의 내적 요인, 즉 발생과정을 조절하는 유전체가 어떻게 변화했기에 2천년만에 새롭고 다양한 신체구조가 나타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72년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는 닐스 엘드리지(Niles Eldredge)와 함께 진화의 속도에 관한 단속평형이론(punctuated equilibrium)을 내놓습니다. 진화는 불연속적인 것으로, 생명은 아주 긴 기간 동안 안정상태에 있다가 비교적 짧은 기간의 환경압력으로 급격하게 변한다는 주장입니다. 당시 지배적인 점진론(gradualism)과는 대치되기에 학자들 사이에 열띤 논쟁이 있었습니다. 점진론자가 단속평형론자에게 던지는 질문이 뼈아픕니다. ‘당신들이 제시하는 단속적인 진화에 대한 화석증거는 받아들이겠다. 그런데 그렇게 급속한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분자생물학적 기작이 무엇이냐?’ 즉, ‘특정 유전자의 변이는 그 단백질 하나의 기능변화로 나타나는데, 그러한 돌연변이가 장구한 세월에 걸친 누적없이 짧은 기간 내에 커다란 형태적인 변화를 어떻게 가져다 주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단속평형론자들은 1980년 후반 유전자 발현에 대한 분자생물학적 기작이 밝혀지고 난 후에 답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유전자에는 계급이 있습니다. 특정 형질을 지시하는 구조 유전자가 있으면, 그 유전자가 알맞은 시간에 알맞은 장소에서 발현되도록, 즉 전사(transcription)를 개시하도록 명령하는 유전자가 있습니다. 이러한 유전자는 전사조절인자(TF, transcription factor)라는 단백질을 만듭니다. 그 TF 유전자의 발현은 그보다 한 계급 위에 있는 TF 유전자에 조절을 받습니다. 이렇게 되면 유전자 발현 조절은 계속 상위 TF 유전자의 존재를 상정하게 됩니다. 특정 신체구조의 발달을 결정하는 제일 높은 계급의 TF 유전자를 마스터 유전자(master gene)라고 합니다. 뇌, 근육, 또는 장 발달을 조절하는 각기 다른 마스터 유전자가 있습니다. 좌우대칭동물의 앞뒤, 위아래, 양 옆 신체구조를 결정하는 마스터 유전자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마스터 유전자 여럿이 위원회를 구성하여 일합니다. 그러면 마스터 유전자의 발현은 누가 조절하느냐? 마스터의 발현은 마스터가 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생명 발달 프로그램에서 최종 꼭대기 마스터는 단백질 자체로 혹은 mRNA 상태로 엄마가 난자에 넣어줍니다. 난자가 수정되면 마스터가 활동을 개시하여, 배아발생에 필요한 마스터 유전자를 순서를 지켜가며 활성화시킵니다. 이를 유전자 발현조절 네트워크(GRN, genetic regulatory network)라 합니다. GRN은 발생개시GRN, 사지발달 GRN, 눈발달GRN, 뇌발달 GRN 등으로 모듈화되어 있습니다. 또한, GRN은 몇몇 TF 가문이 카르텔을 형성하여 운영합니다. TF 가문의 TF들은 구조적으로 비슷하다는 이야기죠. 예를 들면, 머리(anterior)-꼬리(posterior) 축(A-P axis)을 결정하는 혹스(Hox) 유전자는 호메오 도메인(homeobox domain)을 가진 TF 입니다. 그 유전자는 조금씩만 다를 뿐 동물은 물론 식물과 곰팡이를 망라하여 거대한 계보에 속합니다(multigene families).


극피동물문에 속하는 성게와 불가사리는 아주 모습이 다릅니다. 이들은 5.4억년전 같은 종이였으나 생활 환경이나 방식 차이 때문에 다른 종으로 분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배아발달 초기에는 좌우대칭형 비슷한 모습을 가집니다. 배아발달에 관한 한 공통의 GRN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죠. 여기에는 대략 6개의 TF가 작용합니다. 그러나 발생과정이 진행되면서 이들 각각의 GRN에 다른 TF, 신호물질, 또는 구조 단백질이 더해지면서 성게와 불가사리는 결국 다른 모습으로 됩니다. 따라서 같은 동물문에 속하는 종들의 차이는 발생 후기 GRN 변화에 따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동물문을 규정하는 발생초기 핵심(kernel) GRN은 5.4억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았습니다. 강력한 정화선택(purifying selection)이 있었다는 것이죠. 핵심 GRN 구성원의 돌연변이는 발생 참사로 귀결됩니다. 이와 같이 동물은 발생과정에서 심한 제한(developmental constraint)을 받기 때문에 종분화(speciation)는 있지만 문(phyrum)을 넘어서는 진화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힘든 동물문의 분화가 캄브리아기에 활발히 일어났으며, 핵심 GRN의 다양화가 일어났던 시기라고 보면 됩니다. 분자계통분류에 의하면 좌우대칭동물은 6.3억-5.4억년전 사이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좌우대칭형 핵심 GRN이 캄브리아기 이전에 완성되었고, 캠브리아기로 들어서면서 종분화가 일어나듯이 좌우대칭동물 발생초기 핵심 GRN에 조그마한 변화가 가미되어 다양한 동물문이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핵심 GRN의 정체는 모르지만, 모든 좌우대칭 동물문 공통일 것입니다. 현존하는 좌우대칭동물의 유전체 정보와 발생학 정보가 누적되면 그 핵심 GRN의 정체가 밝혀질 것입니다. 발생과정이 어떻게 진화했고, 그에 관한 유전 프로그램이 어떻게 변경되었으며, 그 결과 어떻게 생물 다양성이 형성되는가를 연구하는 이보-디보(Evo-Devo) 연구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한편, 머리-꼬리 체형설계에 관계된 혹스 유전자는 척추동물에는 40여개가 있습니다. 척삭동물인 멍게에는 10개가 있습니다(멍게는 유생기에 좌우대칭형 모습을 나타냄). 7개 정도만 있으면 머리에서 꼬리의 기본 몸설계를 가집니다(유전자 공구세트, genetic toolkit). 따라서 캄브리아기 좌우대칭 동물에는 혹스 유전자가 7개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신기하게도 혹스 유전자 7-10개는 염색체 한 곳에 몰려 있는데(클러스터), 머리-가슴-배-꼬리 발달을 지시하는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척추동물에서는 그 유전자 클러스터가 두 번이나 중복되는 돌연변이가 일어나 4개의 공구세트를 가지게 됩니다. 머리-꼬리 구별이 없는 방사형 해면동물이나 해파리에는 혹스 유전자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각기 한 개와 두 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혹스 유전자는 10억년전에 생겼다고 봅니다. 좌우대칭동물로 진화하는데 사용된 유전자 공구세트의 구성품목은 이미 4-5억년전에 마련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혁신은 새로운 유전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있던 것을 새로운 조합으로 새로운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에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의 중복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해면동물에 있는 혹스 유전자가 둘로 늘어나면 여분의 하나는 자연선택의 감시망을 벗어나 맘껏 변할 수 있습니다. 돌연변이 혹스 유전자는 새 일을 찾습니다. 신경과 장을 갖출 수 있어 해파리로 됩니다. 이러한 두 개의 혹스에서 중복돌연변이가 일어나면 4개로, 이들에서 또 일어나면 8개로 되어 머리-가슴-배-꼬리를 갖춘 좌우대칭형 동물로 됩니다. 이러한 유전자 공구세트는 에디아카란기에서 캄브리아기로 넘어갈 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변이입니다. 그러니 캄브리아기 생명폭발은 유전적인 견지에서 그리 큰 일은 아닙니다.


중복돌연변이가 캄브리아기 전후 짧은 2천만년사이에 빈번하게 일어나고, 이들이 양성 선택되어야 했습니다. 이때는 산소의 증가와 함께 바다 영양분이 충분한 조건에서 그리고 생태적 압력이 강한 상태에서 생명은 번식과 죽음의 사이클을 유래없이 빨리 돌렸던 시기입니다. 복제 사이클이 빨라지면 중복 돌연변이 발생이 많아지고 생태적 자연선택 압력이 강하게 작동하기에 좌우대칭형 동물로의 진화와 다양한 동물문의 진화가 가능했습니다. 진화가 빨랐다는 의미는 많은 유사종이 멸종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캄브리아기 생명폭발은 겉보기입니다. 훨씬 많은 종, 문이 사라졌습니다. 그 당시 누가 살아남았는가가 지금을 결정했습니다. 아까 소개한 굴드 박사도 캄브리아기 생명폭발에 꽂혔었습니다. 그의 저서 ‘경의로운 생명(Wonderful life, 1989)’에서 버제스 이판암 화석이 보여주는 다양성 이외에 그때의 생명이 현재의 생명과는 너무나도 다른 점(상이성, disparity)을 이야기하며, 진화의 태엽을 꺼꾸로 감아 캄브리아기로 되돌려 다시 풀었을 때 과연 우리가 나타날 수 있을까를 질문합니다. 답은 ‘아니다’라고 하며 진화에서의 우연성(contingency)을 강조합니다. 우연한 돌연변이와 우연에 의해 조성되는 불안정이 진화의 동력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자연선택은 이차적인 것입니다. 신다윈주의적 진화 개념에서는 자연선택이 진화의 동력이고 돌연변이는 진화의 재료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