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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13: 두족류의 진화, 생각하는 문어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7-08-08


캄브리아기부터(5.4억년전) 페름기(Permian)까지(2.5억년전)를 고생대라 하며, 이 사이에는 오르도비스기(Ordovician), 실루리아기(Silurian), 데본기(Devonian), 석탄기(Carboniferous)가 있습니다. 오르도비스기(4.9-4.4억년전)에는 남반부 적도 부근까지 걸쳐있던 초대륙 곤드와나가 남극으로 이동하면서 많은 부분은 바다로 덮입니다. 해안가에 번성하고 있는 산호초가 생기고 녹조류 일부는 육지로 서식지를 넓힙니다. 캄브리아기부터 바다에 있었던 연체동물(molluscs)는 번성하여 복족류(gastropods, 복부에 다리가 달려있는 동물)와 두족류(cephalopods, 머리에 다리가 달려있는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두족류는 방어용 석회질 성분의 딱딱한 겉껍질(exoskeleton)에 점차 부담을 느껴 축소시키다가 고생대 후반에는 껍질이 없어진 문어가 나타납니다. Sydney Brenner 박사(선충 C. elegans를 이용하여 세포의 죽음은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되어 있는 과정임을 밝힘, 2002 노벨 생리의학상)는 문어를 지구에 나타난 최초 지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치 보호용 장치인 껍데기를 걷어 버리고 얻게 된 것이 지능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복족류 중 육지 민달팽이(slug)나 바다민달팽이(sea slug)는 겉껍질이 없어져도 지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두족류 진화에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을까요?

두족류에서 ‘다리’는 ‘팔’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현존하는 두족류에는 앵무조개(nautilus), 오징어, 갑오징어(cuttlefish), 문어가 있습니다. 앵무조개는 거의 4억년 동안이나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기에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합니다. 그의 석회질 껍질은 동그랗게 감긴 나팔관 모양입니다. 관은 칸막이로 나누어져 있고, 다 큰 성체는30개 칸막이 방을 가집니다. 29개는 가스로 채워져 있고, 앞쪽 제일 큰 방에는 부드러운 몸체가 자리하는데 머리를 바깥으로 향합니다. 앵무조개는 구멍눈(pinhole eye)으로 초점을 맞출 수는 있지만, 빛을 많이 들일 수 없어 어둡게 사물을 봅니다. 머리에는 십여 개의 팔(촉수)이 붙어 있으며, 이들을 움직여 먹이를 잡거나 헤엄을 칩니다. 화석증거에 의하면 앵무조개 조상은 긴 고깔 모양이었습니다. 팔로 물장구치며 긴 몸을 후진시키는 동물을 상상하면 됩니다. 나중에 고깔 끝이 안쪽으로 말려진 나선형 관모양으로 되어 산호초 위아래와 앞뒤를 둥둥 떠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멸종한 두족류인 암모나이트는 앵무조개와 비슷한 체형을 가집니다. 이러한 구조 덕분인지는 몰라도 암모나이트는 다양한 크기로 중생대를 풍미했습니다. 고생대를 지배했던 삼엽충 다음으로 성공한 동물종입니다. 갑오징어에서는 겉껍질이 몸 안으로 들어가 뼈가 됩니다. 이 석회질 뼈는 작은 구획으로 나뉘어 있고, 여기에 가스나 물이 수심에 따라 적당히 채워집니다. 이러한 부력 조절장치 덕분에 갑오징어는 산호초나 바닥을 자유롭게 유영하며 먹이를 사냥합니다. 한편 오징어는 내부로 들인 껍데기를 가늘고 길게 변형시켜 몸을 지탱하는 뼈대로 씁니다. 오징어의 빠르고 힘찬 몸놀림을 위한 적응입니다. 문어는 내부 겉껍질을 아예 없앱니다. 이 역시 복부(보통 머리라고 오해함)를 줄이고 상대적으로 팔의 크기를 늘려 바다 밑을 빨리 배회하며 먹이를 사냥하기 위한 적응입니다.


보호 껍데기를 없애면서 얻는 이득은 빠른 몸놀림과 몸집 키우기에 있습니다. 껍질 대신에 두터운 살의 외투(mantle)를 입고 물을 분사하면서 추진력을 얻습니다. 번식 주기가 빨라지고 빠른 성장을 담보합니다. 무엇이 이러한 적응을 유도하였을까요? 우선 지구 환경의 변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오르도비스기 끝 무렵 남반구 빙하기에 들어가고 2/3의 해양생물이 멸종됩니다. 살아남은 행운아들은 실루리아기를 채웁니다. 이 때 곤드와나 남반구 대륙이 가라앉고 흩어져 있던 대륙이 초대륙 판게아(Pangea)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판게아는 고생대 후기 3.5억년 전에 완성되어 중생대 초기 1.8억년 전까지 유지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후변화, 해안선 축소, 생명을 먹여 살리던 강어귀와 습지가 줄어듭니다. 또 빠른 몸놀림이 가능한 척추동물 경골어류(bony fishes)와 경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특히 영양분이 풍족한 얕은 바닷가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앵무조개는 바닥으로 내려 갔고, 오징어는 몸집을 키우고 운동성을 확보하여 경쟁에 임합니다. 문어의 경우에는 해저 바닥을 파고들거나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변장하면서 살아갑니다.


환경 스트레스는 연체동물 중 유독 두족류에서만 척추동물과 같은 행동적인 적응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는 감각신경계를 복잡하게 배치하면서 시작됩니다. 오징어나 문어는 구멍눈의 앵무조개에 비해 훨씬 우월한 카메라형 눈을 가집니다. 갑작스런 시각정보의 증가는 그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발달로 자동적으로 연결됩니다. 뇌는 근본적으로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기관인 만큼 뇌의 발달은 보다 세세하고 정교한 근육 움직임을 가능하게 합니다. 색깔을 변환시키는 세포(chromatopore)의 움직임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문어는 변장술과 위장술에 뛰어납니다. 이는 신경계가 복잡해지면서 생긴 목적지향적인 섬세한 운동 덕분입니다. 또 신경계의 복잡성 증가는 지능의 발달을 가져와, 문어는 자기가 자기인 줄 알뿐만 아니라(theory of mind), 집중력 기억력 문제해결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능력을 갖추는 과정에 어떠한 유전적인 변화가 필요했을까요? 2015년 시카고 대학과 오키나와 과학기술연구소 포함 다학제 연구팀에 의해 발표된 문어 유전체 정보가 어느 정도 답을 줍니다(1). 한 참여연구자는 문어는 다른 동물에는 찾아 볼 수 없는 유전자들이 너무 많아 외계생명체라고 농담할 정도입니다. 33000개의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사람은 22000개)가 있으며, 그 중 수백 개는 문어에만 있는 유전자입니다. 대부분의 유전자는 계통을 따르며 진화하는데, 이들은 그냥 새로이 만들어 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자연선택이 있었기에 신규 유전자가 돌연 만들어졌는가? 신다윈주의 진화이론으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리고 근거리 신경세포 연접에 관여하는 프로토캐드헤린 유전자(protocadherin)는 168개나 증폭되어 있어 문어의 신경계 발달을 추측할 수 있게 합니다. 척추동물에도 이 유전자가 있는데, 문어에는 두 배나 더 많이 있습니다. 또 증폭된 유전자 구성도 척추동물과는 현저하게 다릅니다. 또 C2H2 징크핑거(zinc finger) 계열 전사조절인자 유전자 증폭도 두드러집니다. 1800개 유전자가 있는데, 코끼리의 냄새수용체 유전자 수 2000개 다음으로 큰 유전자군입니다. 이 유전자 역시 척추동물보다 훨씬 많이 있으며, 일부는 신경망 형성에도 관여할 것으로 추측합니다. 이러한 증거들은 문어에는 척추동물과는 별개의 신경망이 있음을 말합니다. 사실 문어는 5억개의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는데, 1/3은 뇌에 있고 2/3는 팔에 분포합니다. 문어 팔신경은 뇌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팔신경계는 2.3억년 전 오징어와 문어로 진화계통이 갈릴 때 뇌신경계로부터 독립합니다. 프로토카드헤린 유전자 증폭은 문어계통으로 들어선 후 1.4억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문어 유전체 반 정도가 이동성 전이인자로 구성되어 있고 주로 신경조직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C2H2 유전자의 증폭은 전이인자의 활발한 활동결과입니다.

최근 2017년 4월 문어의 신경조직에서 RNA 염기서열 정보가 매우 활발하게 변한다는(RNA editing) 사실이 발표됩니다(2). RNA 편집의 가장 일반적인 유형은 A염기가 I염기로 변하는 것입니다. mRNA에 있는 I염기는 G염기로 해석되어 단백질의 아미노산 변경을 유발합니다. 따라서 RNA 편집은 세포 전체 단백질체 다양성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대부분의 동물에서 RNA 편집은 상당히 제한되어 일어납니다. 사람과 초파리의 경우 전체 RNA 중 1-3% 정도에서 편집이 일어나며, 대체로 단백질 기능에는 변화가 없거나 미미합니다. 그러나 오징어, 갑오징어, 문어에서는 전체 RNA 전사물 60%에서 편집이 일어납니다. 반편, 이들의 형제인 앵무조개에서는 편집이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RNA 편집은 오징어와 문어가 껍질을 버리고 운동성과 변장하는 능력을 갖추면서 채택한 전략입니다.


문어 지능의 특징을 살펴보면 RNA 편집이 자연선택될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문어의 수명은 6개월에서 2년 정도로 짧습니다. 주변 환경은 복잡 다난합니다. 먹이를 찾는 행동이 다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먹이를 눈으로 감지하는 순간 팔이 나가야 합니다. 뇌의 어떤 조율이 필요 없습니다. 새끼를 많아 낳아 방목하기에 부모로부터 학습이 없습니다. 스스로 즉각적으로 생존기술을 터득하니 개인차가 당연히 있습니다. 서로 잡아먹는 것으로 보아 기억에 근거한 동료의식도 없습니다. 이러한 지능을 나타내는 데에는 RNA 편집을 통한 개인적인 임시변통의, 그렇지만 빠르고 정확한, 행동을 유발하는 신경계 작동기작을 진화시켰습니다. 이 과정이 채택된 이후 유전자 돌연변이를 통한 적응 진화는 더 이상 요구되지 않습니다. 사실 RNA 편집은 유전자의 진화를 제한합니다. RNA 편집을 매개하는 효소는 특정 결합부위에 붙은 후에 반응을 매개합니다. 그 RNA결합부위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RNA는 편집되지 않습니다. 이 부위는 수백 개 염기 길이에 해당합니다. RNA 편집이 활발히 일어난다는 것은 편집효소 결합부위가 광범위로 펼쳐 있고, 이들의 염기서열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유전자 변이가 제한되면 유전자 진화가 제한되고 종의 진화도 제한됩니다. 문어가 3억년이나 되도록 그러한 정도의 지성으로 남아 있는 이유입니다. 영화 에일리언에서 문어를 모델로 한 지성적인 괴물을 보여줍니다. 문어는 임시변통에 능한 지능이지만 우리를 능가할 지성으로 진화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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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 B. Albertin, et al. The octopus genome and the evolution of cephalopod neural and morphological novelties. Nature 524, 220–224 (2015)

(2) N. Liscovitch-Brauer, et al. Trade-off between Transcriptome Plasticity and Genome Evolution in Cephalopods. Cell 169, I191–202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