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뉴 닫기
 

열린마당

제목
생명의 역사28: 새, 공룡의 후예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8-07-11


2007년 과학자들은 티라노사우루스 뼈에서 화석화되지 않은 조직을 찾았고, 그 안의 단백질을 분석해보니 콜라겐으로 닭의 것과 무척 가까웠습니다. “공룡 고기는 치킨 맛”이라며 언론이 크게 보도함으로써 일반인들도 우리 가까이 살아 있는 공룡을 흔히 볼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 공룡을 조류 공룡(avian dinosaurs)과 비조류 공룡(non-avian dinosaurs) 둘로 크게 나눕니다. 여기서 이족보행을 했던 수각류(therpods) 육식공룡 한 무리가 앞다리를 날개로, 비늘을 깃털로, 주둥이를 부리로 바꾸어 공룡새(dino-birds, 날개 짓만 하는 새)를 거쳐 새(modern birds)로 진화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각 기관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 조절네트워크의 조그마한 변화, 즉 특정 전사조절자가 어느 시점에 어느 정도로 어디에 얼마 동안 작동하는지 차이로 생깁니다. 물론 그 네트워크에 신규로 편입되는 유전자도 있겠지요. 관련 유전자 조절네트워크 디테일은 과거 20여년간의 이보-디보(Evo-Devo) 연구로 많은 부분 밝혀진 상태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공룡이 날 수 있게 될 때까지 과정에 관한 비교적 최근 연구결과를 소개합니다.


새의 진화에서 날개를 갖게 되는 과정이 핵심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몸집 축소가 더 중요한 변수입니다. 남호주 박물관의 Mike Lee 박사 팀은 세계 도처에 보관된 120 종 수각류 공룡 화석 1549개 뼈의 특징으로부터 진화계통도를 구성하고, 어슬렁거리며 사냥감을 찾던 몸집 큰 육식공룡이 빨리 움직이며 날 수 있는 공룡새로 되기까지 5천만년 동안 지속적으로 몸집을 줄였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1). 우리에게 익숙한 티라노사우루스의 할아버지뻘 되는 육식공룡은 2.3억년전에는 250kg 정도 나갔다가, 1.5억년전 0.8kg 정도 나가는 시조새(archaeopteryx)로 진화합니다. 이러한 축소화는 좀 이상한 일입니다. 같은 기간 대부분의 비조류 공룡은 몸집을 키우면서 진화한 반면, 오로지 새로 가지치기하는 공룡만이 작아진 것이죠. 연구팀의 비교해부학적인 추론에 의하면, 축소화는 이족보행 육식공룡의 넙적다리뼈가 골반에서 각을 가지고 좀더 비스듬하게 놓이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공룡은 몸 중심이 앞으로 쏠리기에 발을 빨리 내디뎌야 했으며, 대부분의 두발걷기 공룡에게 사용처가 불분명해 퇴화한 앞다리를 길게 늘려 날개 짓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몸집을 작게 했고, 결과로 따라오는 체온 손실은 깃털을 발달시켜 막습니다. 몸집 축소화는 12번에 걸쳐 아주 빠르게 일어났습니다. 각 과정마다 아주 강한 자연선택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서식지 확보나 작아진 생리와 성장에 따른 생활방식 변화 등이 유리하게 작용했겠지요. 조류의 진화는 뜻밖의 혁신이 아니라 점진적인 적응과정임을 확실히 보여주는 연구결과입니다.


몸집의 축소는 배아 발달을 조절하는 유전자 네트워크의 변화에 의해 유도될 수 있습니다. 대체로 배아 발달 시 머리가 사지보다 빠르게, 태어난 후에는 사지가 더 빠르게 성장합니다. 한 개체에서 기관 발달의 시기와 속도 차이를 보이는 현상을 이시성(異時性, heterochrony)이라 합니다. 진화과정에서도 개체간 혹은 종간에서도 특정 기관 발달이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이시성을 볼 수 있으며, 종분화의 주요 원인으로 간주됩니다. 대표적인 이시성으로, 배아 발달과정에서 신체발달이 지연되거나(neoteny) 생식기관발달이 신체발달보다 가속되는(progenesis)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유형(幼形, paedomorphosis)이라 하며, 두 경우 다 어른이 되어도 어린아이 신체를 가집니다. 최근 幼形이 새의 진화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증거가 2012년 nature에 발표됩니다(2). 미국 하버드대 Abzhanov 박사팀은 공룡의 먼 사촌 조룡류(archosaurs)에 속하는 앨리게이터의 머리골격이 배아일 때는 닭의 머리골격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예사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들은 배아상태로 보존된 공룡 화석을 포함 다양한 화석에서, 두개골 변화 양상을 여러 척도로 정량화합니다. 그리고 경향을 알아냅니다. 『비조류 육식공룡 역시 앨리게이터와 마찬가지로 배아일 때만 두개골 모양이 새를 닮았다. 공룡새에 이르러서는 배아뿐만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도 두개골이 새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두개골에 관한 한 공룡은 새로 진화하면서 어른모습을 가지지 않고 배아적 아기모습을 유지한다고 판단합니다. 얼굴을 아기모습으로 유지하니 눈이 크고, 상대적인 뇌의 크기도 커져있습니다. 새는 성적으로 조숙한 아기 공룡입니다.


부리의 진화 역시 두개골의 幼形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2). 幼形의 여파로 머리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주둥이가 들어설 자리에 부리가 들어서는 것이죠. 부리는 새가 음식을 찾을 때, 몸을 깨끗이 할 때, 둥지를 틀 때, 그리고 새끼를 돌 볼 때 쓰입니다. 사람의 손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것이죠. 새의 진화적 성공은 부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면 새의 부리가 어떻게 나왔는가? 이 역시 Abzhanov 박사 연구팀이 해냈습니다. 공룡, 공룡새, 앨리게이터, 그리고 대부분의 포유류는 입천장과 코 사이에 두 개의 뼈(premaxillary bones)가 주둥이 모양을 받쳐주는데, 새에서는 이들 뼈가 하나로 합쳐져 부리로 돌출되었음을 각종 화석의 비교해부학 분석을 통해 밝힙니다(3). 또한 얼굴모양에 관련된 유전자 조절네트워크를 흩뜨리면 새의 얼굴에서 공룡 모습이 나타나게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배아 발달과정에서 어떤 우연한 분자적인 변화가 대진화를 유도한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보-디보 연구의 묘미입니다.


새의 진화과정에서 깃털,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길쭉한 모양의 단순 털에서부터 거위 가슴의 보송보송한 솜털, 깃가지가 대칭인 깃털, 그리고 공기 부력을 줄 수 있는 비대칭 깃털로 진화하는 과정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해 왔습니다. 최근 연구는 파충류의 비늘, 조류의 깃털, 그리고 포유류의 털 모두는 갓 육지로 올라온 파충류-유사 공통조상의 비늘로부터 진화한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납니다. 이는 과학자들이 유전적으로 조작하면 악어나 앨리게이터에 털이 나오게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깃털의 용도와 관련하여, 1990년대 후반 깃털을 가지고 있지만 날지 못하는 깃털공룡(feathered dinosaur) 화석이 다수 발견되었고, 최근 과학자들은 화석화된 깃털 내부에 무지개색을 띠는, 동물에만 존재하는, 멜라노솜 흔적을 확인합니다(4). 색깔을 띤 깃털이 날기보다는 위장이나 상호인식 용도였음을 분명하게 합니다. 그간 멜라노솜 존재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기에 대칭형 깃털의 용도는 추정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깃털이 비행에 쓰인 것은 덤으로 얻은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exaptation). 한편, 최근 연구는 수각류 육식공룡 모두 부분적으로나마 털이나 깃털을 가지고 있었고, 조반류(ornithischia) 일부 초식공룡도 그랬음을 말해줍니다. 이제는 티라노사우루스는 가슴에 털이 수북하고 갈기를 가진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수각류 육식공룡 모두가 털이나 깃털을 가졌다면 그들 중 누가 새로 진화하는 행운을 얻었을 까요? 답은 몸집을 계속 줄인 공룡입니다. 1.5억년전 까마귀 정도로 몸집을 줄인 공룡새는 본격 새로 진화합니다. 그 기간은 길지 않았습니다(1). 무엇엔가 쫓겨 날개를 퍼덕이며 도망가다가 새로 됐다는 가설과 높은 나무에서 활강을 반복하다가 그리 됐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호용 대칭 깃털에서 비행용 비대칭깃털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행동가소성 때문일 수 있습니다(생명의 역사 17). 아무튼, 어떤 공룡은 몸집을 부단히 줄이면서 비행용 깃털을 가지는 횡재 덕분에 백악기 말에 있었던 대멸종 사건을 넘기고, 이후 진화적 성공을 이루어 현재 1만 여종으로 분화해 살고 있습니다.

----------------------------------------------------------

1. Michael S. Y. Lee, et al. Sustained miniaturization and anatomical innovation in the dinosaurian ancestors of birds. Science 235: 562–566, 2014

2. Bhart-Anjan S. Bhullar, et al. Birds have paedomorphic dinosaur skulls. Nature 487: 223–226, 2012

3. Bhart‐Anjan S. Bhullar, et al. A molecular mechanism for the origin of a key evolutionary innovation, the bird beak and palate, revealed by an integrative approach to major transitions in vertebrate history. Evolution 69-7: 1665–1677, 2015

4. Dongyu Hu, et al. A bony-crested Jurassic dinosaur with evidence of iridescent plumage highlights complexity in early paravian evolution. Nature Communications 9, Article number: 217,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