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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역사30: 백악기 말 대멸종(2)
작성일
2020.08.18
작성자
시스템생물학과 관리자
게시글 내용

2018-07-17


한편, 고생물학자들은 K-Pg 대멸종을 지구과학자와 다르게 접근합니다. 현존하는 생명의 방대한 유전체를 기반으로 특정 형태나 행동에 대한 진화계통도를 구성합니다. 화석의 지질 연대를 고려하여 계통도를 보정합니다. 이를 통해 K-Pg 경계에 있는 생명들의 적응을 분석하여 충돌의 효과를 평가합니다. 여기서는 동물의 몸집과 섭식 형태 등에 대한 진화계통도를 구성하여 백악기말 집단멸종에 직면한 동물들의 적응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영국 자연사박물관 연구팀은 최근 새의 부리에 대한 진화계통도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K-Pg 경계를 두고 진화의 동역학이 바뀌는 것을 알게 됩니다(1). 그 결과에 의하면, 공룡의 주둥이가 본격 부리로 되는 수 천만년 동안은 진화속도가 느리지만, 일단 부리가 만들어진 0.8억년전부터 0.66억년전 소행성 충돌까지 진화속도는 엄청 빨라집니다. 이 기간에 부리 형태의 相異性(disparity)이 나타나는 대진화적 적응방산이 일어난 것으로 해석됩니다. 즉, 조류의 새로운 계보가 등장하여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를 확장한 시기입니다. 소행성 충돌 후에도 지금까지 수 천만년 동안 새는 빠른 진화속도를 유지하는데, 새로운 형태가 나타나기 보다 각 계보 내에서 미세조정을 거쳐 다양성(diversity)을 갖춥니다. 즉, 소진화적 적응방산을 통하여 한 계보에 속한 종들이 각자의 생태적 지위를 채워나가 11000 종으로 분화합니다. 대진화 과정에 있었던 조류가 K-Pg를 경계로 소진화로 전환하며 적응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연구입니다.


분자시계 계산에 의하면 새가 나타난 시기는 1.6-0.8억년전으로 잡히지만, 화석 연대측정에 의하면 0.66-0.62억년전으로 잡힙니다. 왜 이러한 시간상 괴리가 생길까요? 코넬대학 박사과정 학생 Berb와 영국 배쓰대학 Field 박사는 몸집 크기에 관련된 진화계통도를 해석하여, 새의 몸집 크기가 K-Pg 경계에서 오리 정도였다가 참새 정도로 작아졌음을 알아냅니다*. 몸집이 작아지면 생식과 대사가 빨라지고, 결과로 유전체 변이도 증가됩니다. 분자시계 계산에서 유전체 중립변이는 일정한 속도로 일어난다고 가정하여 종의 분기점을 정하지만, 집단멸종 환경 스트레스로 인한 생활사 특성(life history traits)을 고려하면, 보다 빠른 유전체 변이율을 상정해야 한다고 가정합니다. 실제로 보정된 분자시계는 새가 진화한 시기를, 화석연대 분석으로 알아낸 시기와 비슷하게 K-Pg 경계 조금 이전으로 맞출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새는 K-Pg 경계에서 유전체를 생각보다 빠르게 변화시키면서 적응했습니다(Systematic Biology, 2018).


Field 박사팀은 새가 K-Pg 경계 전후에서 적응하는 과정도 추적했습니다(2). K-Pg 전후 새의 서식 양상을 기준으로 진화계통도를 재구성해보니, 현존하는 새의 조상은 땅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조류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충돌 이후 산성비, 곧 이은 한파와 가뭄으로 산림이 없어집니다. 결과로 나무에서 생활하는 새는 사라지고, 땅을 터전으로 삼는 새가 살아남아 지금의 다양성을 이룬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멸종과정에는 우연에 의한 유전적 부동(drift)이 작동합니다. 이러한 연구가 있기 전에는 그저 작은 몸집과 강건한 부리를 가진 새들이 재해 현장에 남아 있는 씨앗이나 곡식으로 연명하다 살아남았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Field 박사팀이 구성한 진화계통도에 의하면, 멸종 과정에서 부동(drift)이 작동되는 현장이 생생하게 나타납니다. 그들은 숲의 황폐화 과정도 살펴봤습니다. 집단멸종 직후 양치류가 일시적으로 번성하다가(fern spike)**, 속씨식물로 대치되고 1000년 지나 숲이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숲이 충분한 다양성을 갖출 때까지는140만년이 더 걸립니다. K-Pg 멸종 위기를 넘긴 새가 다양성을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비슷합니다. 새의 다양성은 식물의 다양성과 함께 갑니다. 오늘날 인위적으로 자행되는 산림 훼손은 곧바로 새의 다양성 감소로 이어집니다.


개구리를 가지고 진행한 연구도 흥미롭습니다. 보다 정교한 진화계통도를 구성해보니, K-Pg 경계를 두고 족보가 끊긴 계통이 별로 없이 빠른 적응방산이 일어났고, 그 시점이 기존 알려진 것보다 한참 빨랐습니다. 개구리는 충돌에도 큰 타격없이 포식자가 사라진 틈새를 십분 활용해 번성했습니다. 지구 온난화 결과로 양서류가 사라지고 있는 현 상황에 비추어 보면 다소 의외입니다. 충돌에 이어지는 화산폭발과 온난화가 그 당시 개구리에게 영향을 덜 주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개구리는 육식성 혹은 잡식성이며 각종 부패물도 먹습니다. 황소개구리, 그의 먹성 유명합니다.


포유류는 공룡위세에 눌려 작은 몸집으로 근근이 숨어 살다가 K-Pg 집단멸종 위기를 넘겨 적응방산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수정되어야 할 처지입니다. 시카고 대학 Grosnickle 박사와 영국 사우샘프턴 대학 Newham 박사과정 학생은 그간 새로이 누적된 수백 종류의 초기 포유류 어금니를 분석하여 진화계통도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의외의 두 가지 사실을 알아냅니다(3). 첫째, 포유류의 적응방산은 공룡멸종 후가 아니라 이미 한참 전에 있었다. 둘째, 초기 포유류도 다양한 형태의 이빨을 가졌고, 그 다양성이 K-Pg 경계를 넘어가면서 줄어 들었다. 이는 뜻밖의 결과로 포유류도 K-Pg 생명 집단멸종에 안전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잡식성 이빨 형태를 가진 포유류가 선택적으로 살아 남았습니다. Grosnickle 박사는 멸종 사건 이전에 이미 포유류가 번성한 이유를 꽃식물의 번성과 그에 따른 섭식구조의 다양화 때문이라고 봅니다. 속씨식물은 포유류에게 씨앗과 열매를 제공했습니다. 또 속씨식물과 공진화한 곤충은 육식도 제공했습니다. 다양한 먹잇감에 따른 포유류의 적응방산이 있다가 K-Pg 경계에서 잡식성 동물만 살아 남습니다. 음식에 관한 한 제너럴리스트가 까다로운 식성을 가진 스페셜리스트보다 재난을 잘 견딥니다.


끝으로 공룡은 K-Pg 전후 어떠한 상황에 있었을까요? 많은 과학자들은 공룡이 멸종 직전까지 꽤 번성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방대한 화석 자료를 분석해보니 2.2억년전부터 공룡 다양성이 증가하다가 1.4억년을 정점으로 다양성이 감소되는 것이었습니다(4). 용각류에 속하는 대형 초식공룡의 다양성이 빠르게 줄어들었고, 조금 나중에 수각류 육식공룡이 줄어듭니다. 반면, 조반류 초식공룡인 뿔공룡(Ceratopsidae)은 멸종 전까지 증가합니다. 그 이유를 과학자들은 뿔공룡이 영양가 높은 꽃식물로 식성을 바꾸었기 때문으로 추정합니다. 이들의 턱이나 이빨 형태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것이 꽃식물을 먹기 위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용각류 거대 공룡은 이빨이나 턱을 변화시키지 않고 겉씨식물만 고집해 먹이자원을 고갈시켰습니다. 초식공룡이 줄어드니 육식공룡도 이어서 줄어듭니다. 공룡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백악기 후반 포유동물의 적응방산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공룡의 알을 먹는 포유류도 나타납니다. 백악기 후반부터 공룡은 진화적인 의미에서 약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소행성 충돌이 없었더라도 공룡이 소멸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공룡이 약해진 이유에 대해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연구가 2018년 6월 nature ecology and evolution에 발표됩니다. 그 논문이 전하는 메시지가 흥미롭습니다. ‘공룡은 역설적이게도 너무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소멸할 수 밖에 없었다.’ 화석 기록을 보면 공룡은 빠르게 움직여 지구를 정복하였고, 거기서 숲을 망가뜨리면서 번성하였습니다. 공룡은 식물과 주고받는 관계를 설정하지 않고 오로지 파괴자 역할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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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R. Cooney, et al. Mega-evolutionary dynamics of the adaptive radiation of birds

Nature 542: 344–347. 2017

2. DJ Field, et al. Early Evolution of Modern Birds Structured by Global Forest Collapse at the End-Cretaceous Mass Extinction. Current Biology, 2018; DOI: 10.1016/j.cub.2018.04.062

3. DM Grossnickle and E Newham. Therian mammals experience an ecomorphological radiation during the Late Cretaceous and selective extinction at the K–Pg boundary.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2016 DOI: 10.1098/rspb.2016.0256

4. M Sakamoto, et al. Dinosaurs in decline tens of millions of years before their final extinction. PNAS 113: 5036-5040. 2016

*동물은 멸종 압력에서 몸집을 줄여 적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릴리풋(Lilliput,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소인국 섬) 효과라 합니다.

**양치류는 재난식물(disaster flora)로 간주되며, 요즘에도 화산폭발 지역에 그들이 제일 먼저 자라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