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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학의 부흥과 발전을 위한 준비

1957년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의대가 합병하여 그 이름을 연세대학교로 바꾸었다.

연세대학교 사학과는 식민사관의 잔재와 문헌고증주의의 위력 속에서도 연희전문에서 시작된 민족사학의 명맥을 꾸준히 이어왔다.

또한 196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식민사관의 청산과 민족사학의 부흥에도 그 중심이 되었다.


특히 홍이섭은 문헌고증사학의 실증적 태도가 갖는 한계를 지적하고, 한국사 전체에 대한 주체적 역사인식과 이해를 강조하였다.

1961년에 부임하여 한국중세사를 담당한 이종영과 1964년 부임하여 고려시대사와 발굴활동에 크게 기여한 손보기의 노력도 있었다.

또한 1974년에 별세한 홍이섭 교수의 후임으로 부임한 김용섭은 식민사관을 비판하고 내재적 발전의 시각에서 한국근현대 농업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민족사학과 사회경제사학의 두 흐름을 계승, 발전시켰다.


동양사에서는 고병익 교수를 거쳐 황원구가 부임하면서 민영규와 함께 연세 국학의 시각이 아시아사로 확대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서양사에서는 조의설 교수가 1971년 은퇴하고 김정수ㆍ김동길ㆍ고성환 등이 합류하였다.

이상과 같이 1960년을 전후해서 1970년대 초반에 이르는 동안 사학과의 교수진은 한국사ㆍ동양사ㆍ서양사의 3분야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또한 1977년 동방학연구소가 국학연구원으로 새롭게 개편, 발족되면서 국학연구 요람으로서의 위치를 잡아가기 시작했다.